명작 소설에는 사랑에 관한 모든 심리가 담겨져 있다!
명작소설에 나타난 기묘한 연애심리를 읽어낸 『서가의 연인들』. 사랑을 소재로 한 열두 편의 명작소설을 통해 사랑의 달콤함 뒤에 숨겨진 고독, 질투, 불안, 의심, 결핍 등 다소 병리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마음의 문제들을 속속들이 다룬 책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놀이》, 미겔 데 우나무노의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 속에 라캉, 바디우, 지라르 등 유수한 인문학자들의 사유를 펼쳐놓았다.
이 책은 ‘프레시안’에 ‘박수현의 연애상담소’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된 글에 다양한 내용을 추가하고 다듬어 엮어낸 것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명작소설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읽어준다. 그 혹은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이런 내 행동과 마음은 진짜 사랑인지, 이 피곤한 사랑은 또 왜 하는 것인지 등 사랑의 비극적 양상에 주목하여,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겪고 있는 혼란과 시련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박수현
저자 : 박수현
저자 박수현은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박사 논문으로 「1970년대 한국 소설과 망탈리테」가, 번역 해설서로 『모범 소설』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과 한국항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프롤로그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애물단지, 사랑 그리고 소설
그 피곤한 사랑, 도대체 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네가 사랑했던 그녀는 나의 이상형
-밀란 쿤데라, 「히치하이킹 놀이」
당신, 나를 망치고 죽음에 이르게 할 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정말 날 사랑해? 나의 무엇을? 얼마나?
-미겔 데 우나무노,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
수인(囚人)의 사랑법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광신도이며 과학자인 그대 홀로, 상상 숲길을 방랑하네
-미겔 데 세르반떼스, 『돈 끼호떼』
결핍을 등에 지고 결핍 사이를 걷기
-윤대녕, 「달에서 나눈 얘기」
참을 수 없는 연애의 쓸쓸함, 포기할 수 없는 기적의 엄연함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님은 먼 곳에
-한강, 『채식주의자』
나의 애물단지이자 보물단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잠자는 미녀』
사랑, 피투성이며 또한 기적인
-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 | 윤영수, 「귀가도 3-아직은 밤」
에필로그지식과 소설: 풍요로운 문학을 꿈꾸는 단조로운 말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애물단지 사랑, 그리고 소설
좋은 소설은 마음의 백과사전,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이 책이 사랑의 비극적 양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보다 잘 사랑하기 위해서다. 사랑의 부정적 면모를 두루 알아야 위로받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사랑의 마음은 미로와도 같다. 사랑의 환희라는 빛 이면에는 질투, 소유욕, 파괴욕, 의심, 치사함, 이기심 등 다종다양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저자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다층적인 심리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각 이야기의 도입부에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가상의 인물들의 실제 연애담을 등장시킨다. 이들은 명작소설에서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발견하고 공감하거나 위로받거나 깨달음을 얻는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소설 속 사랑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는다. 또한 그 속에 라캉, 바디우, 지라르, 바르트, 지젝, 보드리야르 등 유수한 인문학자들의 주옥같은 사유를 겹쳐놓아 사랑을 매개로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하였다.
가장 먼저 읽은 소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포기한 연약한 영혼, 사랑에 빠진 자의 허기, 인생을 탕진하고 나서야 천국을 맞이한 커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간만사 겹겹이 스민 형형색색의 고독’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마르케스의 또 다른 작품 『사랑과 다른 악마들』에서는 사랑이 두려워 상대를 시험하고, 상대를 악마로 몰아가는 마음을 포착한다.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놀이」에서는 연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옛 애인을 모방하려는 마음이 불러온 점입가경의 파국을 통해 연인들의 동상이몽을 엿볼 수 있고, 『참을 수 없는 연애의 가벼움』에서는 남녀 간의 기묘하게 엇갈리는 균열 지점과 서로 다른 마음의 심연과도 같은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마주하게 된다. 우나무노의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에서는 사랑은 이래야 한다, 남자란 이래야 한다는 준칙을 고집하며 자신만의 감옥에 갇힌 주인공들을,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는 사도마조히즘과 병적인 지배욕으로 분출되는 기이한 사랑의 심리를,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떼』에서는 사랑에 빠진 자의 나르시시즘과 인정 욕망,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랑의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는 근원적인 욕망에 투신한 사람들의 치명적인 비극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광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사랑의 심리 한편으로는 사랑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주인공들도 있다. 윤대녕의 「달에서 나눈 얘기」는 완전한 사랑이라는 허구가 아니라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결핍과 결핍 사이를 걸어가는 것을 풍요로운 사랑이라 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에서는 에로스적 정열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생의 환희이자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과 윤영수의 「귀가도 3-아직은 밤」은 상처와 환멸까지 아우르는 피투성이 자체가 사랑임을, 거기에서 바로 사랑의 기적이 싹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명작소설은 (아픈) 마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마음의 백과사전’이다. 깊은 마음이 묘파된 소설을 읽은 독자는 무릎을 치면서 외친다.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복잡한 그 마음이 바로 이거였구나.” 그리하여 자신이 겪고 있는 혼란과 시련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로받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저자가 이토록 ‘아픈 마음의 대륙’을 넓고 깊게 탐사한 것은 결국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