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도는 목소리들』은 문학평론가 심진경이 지난 2005년부터 문예지나 소설집 등에 실었던 평론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문화적,사회적,정치적 다양성 속에서 이루어진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인,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존재들에 관한 쟁점을 다루고 있으며 요즘 소설의 메타장르적 특성을 들며, 점점 해체되면서 문학적 실험을 더해가는 소설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여름 계간 [실천문학]에 「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를 발표한 뒤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파라 21], [문예중앙]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이다. 저서로,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과 문학의 탄생』,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등이, 옮긴 책으로 『근대성의 젠더』(공역)가 있다. 서강대학교,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강의한다.
제1부
미저러블 개인주의, 단자윤리의 생태학
뒤로 가는 소설들
새로운 거짓말과 진부한 거짓말
떠도는 목소리들
탈현실의 문법과 상상력에 관한 질문들
소설의 재구성, 소설을 이야기하는 소설들
제2부
여성성 혹은 문학적 상상의 원천
자기보다 낯선―권여선 소설의 자아탐구에 대하여
김혜순 시의 미로에서 길을 읽다, 잃다, 앓다
새로운 여성성의 미학을 찾아서―강영숙의 소설을 중심으로
제3부
김애란을 다시 읽다
순환하는 암호들
구토의 미학
포스트모던 보이의 고백―김경욱론
무심결에 쓰는 소설―하성란 소설의 기억술
제4부
우리 시대 젊은 작가 열전 12―강영숙·윤성희·정이현·천운영·편혜영·김연수·박민규·한유주·백가흠·박형서·이기호·김중혁
소설 혹은 상상력의 지도―김중혁의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박형서의 「날개」
소문의 소설사회학―임철우의 「나비길」·김경욱의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
성장 없는 성장담―하성란, 「1984년」·김애란, 「스카이 콩콩」
공간과 사물, 그리고―김숨, 『침대』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천운영, 『잘가라, 서커스』
문학평론가 심진경이 지난 2005년부터 문예지나 소설집 등에 실었던 평론들을 모았다. 1999년 『실천문학』에 평론 「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저자는, 지금까지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왔다. 평론집 『떠도는 목소리들』에는 이러한 ‘여성성 담론’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과 문학작품 속에 투영된 ‘바로 지금’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문학 속에서 시대를 읽는다
(……)어떠한 발원지나 종착지도 거부하는,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그 과정에서 제 육체 안에 여러 개의 목소리를 담게 된, 규정할 수 없는, 그래서 알 수 없는, 내 몸에서 시작되었으나 기어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간 목소리들. 오래된 낡은 스웨터를 입으면서도 거꾸로 그 낡은 스웨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즉 자신의 낮은 계급적 지위를 한탄하거나 그에 분노하는 대신 ‘빈궁 요법’으로 맞서는 이 포스트모던한 나르시시스트들. 이 책은 이들에 대한 애정과 애정 어린 비판 모두를 담았다, 고 생각한다. ―작가 서문 중에서
작가의 말처럼, 2000년대 문학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아직은 다소 낯설고 모호한 ‘2000년대 문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룬 이 책에서, 작가는 지금의 한국문학에 특정 방향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경향성 같은 것은 없으며, 그렇게 일정한 범주로 그러모을 수 없는 것이 바로 2000년대 문학의 특징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곧, 2000년대 문학의 경향을 굳이 규정할 필요는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0년대 소설 속 인물들은 특정한 소속 없이 그저 떠다니며 일류가 아닌 삼류를 자처하면서도, 다시 말해 반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투쟁의식이나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겉보기에는 사회정치적인 틀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이들의 삶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는 보편적인 준거 집단이 사라진 지 오래인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일매일 보편의 세계로 내던져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쟁점은 문화적?사회적?정치적 다양성 속에서 이루어진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인,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존재들에 관한 것이다. 보편적 삶의 테두리를 삐져나온 유령 같은 이 존재들의 목소리를 작가는 ‘떠도는 목소리’라고 부른다. 이 책은 또한 요즘 소설의 메타장르적 특성을 들며, 점점 해체되면서 문학적 실험을 더해가는 소설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일종의 ‘리폼(reform)’ 형식을 취하는 소설들은 많지만, 그것이 독창적인 문학적 통찰로 이어지는 데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소설을 현실과 허구, 작가와 독자, 형식과 내용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탐색하고 그로써 소설이란 장르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형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드러내기 위한 유희적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담론의 한계를 넘어서서
등단한 이래 줄곧 ‘여성성’을 중심에 세우고 평론 활동을 해온 작가의 이번 책에서 페미니즘 논쟁은 전면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존의 페미니즘 문학의 독법만으로 요즘의 여성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 지금, 남성적인 것으로만 구성된 사회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 책에 실린 「여성성 혹은 문학적 상상의 원천」, 「새로운 여성성의 미학을 찾아서」 등의 글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른바 여성 문학은 남성중심사상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그 안에 갇혀버린 감도 없지 않다. 여성 문학의 담론은 미학적 차원에서 다루어진 적은 없고 거의 내용 층위에서만 이야기되었다. 이렇듯 이미 주어진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나, 여성으로서 억압받은 경험의 재현에 한정된 상황에서, 여성 문학이 이제 고려해야 할 것은 문학 언어와 의미의 특수성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2000년대 ‘젊은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개인주의와 메타 장르적 특성을 포착하고, 이 시대 여성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시대적 특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고통마저 발견해내는 이 평론집을 통해, 이 시대 소설의 모습, 나아가 문학의 미래 또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