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 된 미술관』은 돈과 권력에 물든 현대미술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고고한 위치에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미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더 쉽게 이해하는 미술, 더 편하게 접하는 미술을 이야기하며 보다 많은 사람을 미술로 안내하려는 이때에, 미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고 다시금 발전시킴으로써 미술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을 이루자는 저자의 애정의 메시지는 생생하고 묵직한 울림을 우리에게 건넨다.
니콜레 체프터
저자 : 니콜레 체프터
저자 니콜레 체프터는 독일 니더작센(NIEDERSACHSEN)주 예페어(JEVER)에서 1976년에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와 시대정신,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독일 잡지 『더 저먼스(THE GERMANS)』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현재 잡지 『네온(NEON)』과 『니도(NIDO)』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오공훈
역자 오공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문화평론가와 출판사 외서기획자를 거쳐 현재는 독일어와 영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돌프 로스의 건축예술』 『디자인 소사』 『손의 비밀』 『뇌는 탄력적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센세이션』 『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 『별빛부터 이슬까지』 『과학편집광의 비밀 서재』 등이 있다.
서문
프롤로그
1장 미술로 돈벌이를 해왔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현대 시대
미술은 클리셰다
큐레이터 겸 미술관 관장인 오이겐 블루메와의 대화
2장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나는 당신의 작품을 증오해
건강과 행복이 넘치는 미술관
3장 미술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돈이 미술을 전부 먹어치운다
미술 경영자
감시 상태에 놓이다
4장 미술은 천재와 광기를 믿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미쳤지만 뛰어난
미술가: 직업적인 아웃사이더
5장 미술은 금기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미술 증오의 전통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좋은 미술을 이루는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왜 때때로 미술 앞에서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현역 미술잡지 편집장이 이야기하는
미술 앞에서의 감정과 태도에 관한 신랄한 기록
“미술을 사랑한다면, 미술을 증오해야 한다”
돈과 권력에 물든 현대미술의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낸 직격탄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오늘날, 미술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서 미술은 이른바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사람들은 미술을 대할 때 어떤 경외나 존경의 마음을 가진다. 하지만 그런 동경과는 별개로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큐레이터나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 작품 앞에서 실망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경험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현주소다.
우리가 접하는 미술은 돈과 권력에 얽매인 미술이기도 하다. 투자처가 되어버린 미술 작품을 사고팔기 위해 힘쓰는 갤러리와 수집가, 건물 외관과 방문객 수에 가치를 두고 계급화된 훈육시설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며 연금생활자와 관람객 유치에 더욱 열을 올리는 미술관, 시대풍조에 순응해가는 미술가와 비평가, 자신의 무지(無知)를 숨기려고 하는 관람객의 모습은 미술이 미술답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미술 작품이 소위 재벌이나 정치인 같은 상류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되는 상황 또한 미술이 돈과 권력에 얽매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미술과 일반인의 삶이 서로 괴리되는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술 전시회는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관람객은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미술 작품을 몸소 숭배하러 전시회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상하 구조에 철저히 얽매인 일종의 의식과도 같기에 미술 작품 감상은 더는 즐겁거나 평등한 만남이 되지 못한다. 전시회의 흥행 또한 현대미술의 속성으로 자리한 ‘돈’의 메커니즘을 따른다.
독일 현역 미술잡지 편집장이 쓴 책 《동물원이 된 미술관》은 이렇게 고고한 위치에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미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니콜레 체프터는 ‘미술을 사랑한다면, 미술을 증오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증오는 이유를 필요로 하고, 이유는 또 다른 논쟁을 일으키는 씨앗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정직한 논쟁을 통해 미술과 관람객은 서로를 깨우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술에 대한 느낌을 잃고야 말았다
그리고 미술과 거리를 두는 ‘구경꾼’이 되고야 말았다
《동물원이 된 미술관》은 돈과 권력에 물든 현대미술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술이라는 위계질서에 철저히 복종하는 미술가와 비평가에 대해서도 저자는 거침이 없다.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알리려는 미술가는 유명한 ‘스타’가 되기 위해 미술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기를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잘못된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비평가 또한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미술계 안과 밖에서 작품에 대한 ‘솔직한’ 비평은 찾기가 힘들다.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는데도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자화자찬과 무의미한 비평만이 넘쳐날 뿐이다.
저자 니콜레 체프터는 무의미한 칭찬과 아부로 점철된 미술계를 향해 이제는 ‘아니오’라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회의론적인 비판에 머물지 않고 미술에 강한 애정을 가진 저자의 ‘미술 증오’의 정신이다. 현대미술계에서는 찾기 힘들어진 이 ‘미술 증오’의 정신을 통해 저자는 높은 곳에 머물려고 하는 미술이 누구에게나 열린 낮은 곳을 향해 내려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위계질서의 틀 안에 머무르려 하는 오늘날의 미술계를 향해 희망의 기운이 가득 담긴 메시지를 건넨다.
《동물원이 된 미술관》처럼 미술계 전반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 쉽게 이해하는 미술, 더 편하게 접하는 미술을 이야기하며 보다 많은 사람을 미술로 안내하려는 이때에, 미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고 다시금 발전시킴으로써 미술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을 이루자는 저자의 애정의 메시지는 생생하고 묵직한 울림을 우리에게 건넨다. 니콜레 체프터의 ‘애정’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미술계에 만연한 문제를 비판하는 책이지만, 한국 미술의 현실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는 여지를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낮은 곳을 향한 미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화와 토론이 이 책을 통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원이 된 미술관》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미술로 돈벌이를 해왔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에서는 미술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도구화되고 일반화되면서 늘 틀에 박힌 표현과 방식으로 관람객의 미술적 감각을 잃게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에 의해 동시대 미술에 대한 판단력의 상실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상실은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력에서 벗어나는 데 모든 기준을 두는 미술 천재에 대한 교육과, 작품이 지닌 미래지향성(현재를 판단하지 않는 내용을 묘사하는 성향)에 있다고 밝힌다. 2장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에서는 미사여구와 공허한 말 등으로 무의미하게 비평하는 세태를 언급하며 평가나 담론과는 거리를 둔 미술계의 현실, 실망스러운 전시회와 지루한 미술가, 아무 내용이 없는 미술 작품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3장 「미술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에서는 소위 미술가들이 돈에 빌붙으려 하고, 자신의 작품 가격을 시장이 정해놓은 객관적 척도에 따라 평가받으려는 미술계, 미묘한 위계질서로 움직여지는 미술계의 현실을 드러낸다. 4장 「미술은 천재와 광기를 믿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에서는 천재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개인숭배라는 공통적 소속감을 증대시키는 움직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무분별하게 이상화되는 미술가, 하나의 이상으로 소비하고 스스로 체험하지 않는 관람객을 비판한다. 우리가 천재에 대한 그릇된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미술에 몰두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5장 「미술은 금기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에서는 미술가 겸 음악가 빌리 차일디시가 2009년에 시도한 ‘미술 증오의 날(Art Hate Day)’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이 더는 자신이 미술을 좋아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열망했던 ‘미술 증오’의 정신이 무엇인지, 왜 우리 시대에 ‘미술 증오’의 정신이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술 증오’의 정신을 통해, 모든 사람의 생각이 전부 동일한 집단에 포섭되지 말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태도를 가지고 미술을 대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간단하다. 미술 증오는 미술 분야에도 사랑이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도록 촉매 역할을 제대로 하는 미술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미술은 과학 이론의 차원에서 분석하는 대상이 아니다. “마치 사랑처럼, 미술은 비밀스러운 존재다.” 미술은 솔직해야 한다. 미술을 대하는 우리도 솔직해야 한다. ‘미술 증오’는 이러한 솔직함에 접근하는 훌륭한 미적 감각이자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