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도시 싱글 남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배수아의 세태 풍자소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자유를 대가로 고독을 선택한 비혼주의자 유경을 주인공으로, 각기 다른 외모와 사회적 조건과 개성을 지닌 그녀의 친구들과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가 맞물리며 펼쳐진다. 낭만적 사랑과 속물적 현실에 기댄 도시 싱글 남녀들의 욕망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내며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신랄하게 폭로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지, 독신주의자는 정말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인지 등의 물음에 대해 작가는 주인공 유경의 입을 빌려 당당하게 ‘NO’라고 말한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사랑과 결혼, 독신주의자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 ‘탈 연애주의’ 연애소설이다.
▶ 이 책은 2000년에 출간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의 개정판입니다.
배수아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작가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독특하다. 이화여대 화학과에 입학한 배수아는 국어 과목을 아주 싫어했다. 당연히 소설 같은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을 놀다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소설을 쓰게 됐다. 1993년 서점에서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우연히 집어든 문학잡지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서 ”신인작가 작품공모” 광고를 보았다. 그리고「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배수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결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늦된 아이들이며 주로 스무살 안팎의 주변적 존재이다. 이들은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거부하는 인물이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신세대적 일상을 파고들며 신세대적 일상에 숨어 있는 존재의 어둠과 불안, 삶의 이중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묘사로 일관하다.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배수아는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신세대 작가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미적 성숙의 단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이지적이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문체를 통해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파헤치고, 독신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경제ㆍ섹스ㆍ결혼관ㆍ자기세계에 대한 솔직하고 쿨한 느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의 첫사랑』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스스로 추락중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일탈과 파격, 섬뜩한 비애가 차갑게 펼쳐져 있다. 세기말의 쓸쓸함과 밀봉된 희망, 피학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만져지는 작품이다.
『붉은 손 클럽』은 외형의 독특함을 넘어, 단자화된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또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 사랑의 대상을 향한 비이성적 감성들, 일상에 물든 관계의 지리멸렬함을 포착해 내는 배수아의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배수아의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글쓰기가 잘 나타나 있다. 『심야통신』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녀 특유의 감각 더듬이로 포착하고 있는 창작집이다. 배수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감동하지 않는 일상인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목마름과 허기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후기 산업사회의 일련의 징후를 상징하고 허무주의적 인간형과 이미지와 기호로 점철된 우리 세대의 문제적인 서사 형식을 보여주면서 자기만의 자리, 자기만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철수』는 인간 존재 안의 어둠과 생의 운명적인 폭력 속으로 더 한층 깊이 탐사해 들어가는 배수아 소설의 불온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섬뜩한 생의 이면을 보아버린 자의 어둡고 서늘한 내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바나』는, 소설 속의 ‘나’가 외국 여행 중에 산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다. 또, ‘그녀’로 불리는 이바나는 여행기를 편집하는 편집자에겐 신비의 여성이다. ‘이바나’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선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단편집 말미에, 배수아는 ‘나에게 제목이란 면상의 흉터와도 같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치명적이다. …… 지금 나는 왜 모든 소설은 예외 없이 제목을 필요로 하는가 회의스럽다.’ 고 말했다. 가장 짧은 제목이 가장 좋은 제목이라고도 했는데, 이 소설의 제목 ‘이바나’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이바나’는 내내 소설 속 화제의 중심인데 비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뭉개져 있다. 나, K, B, 산나, Y…… ‘죽기 전까지는 대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견디는 불면의 밤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뱀과 물』 등을 썼다. 창작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그 사람의 첫사랑』 등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부주의한 사랑』『붉은손 클럽』이 있다. 또한 몸을 주제로 한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펴냈다. 역서로는 『프란츠 카프카-꿈』 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전통 소설의 인물과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술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무종」을 통해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프롤로그 1 Answering / 프롤로그 2 일기의 한 부분-몇 년 전 / 프롤로그 3 일기의 한 부분-몇 달 전 / 프롤로그 4 최근 어느 날의 비망록 / 프롤로그 5 편지-발신인 모름 / 프롤로그 6 모니터 옆의 메모판 -언제 쓴 것인지 기억나지 않음 / 프롤로그 7 수의학 교실에서 / 프롤로그 8 스스로에 대한 평가
1. 여동생, 결혼을 알리다
2. 나이 든 독신 여자친구
3. 그날 이후 첫번째 데이트 요청
4. 광견병과 한바탕
5. 가족사진의 풍경
6. 사촌 금성
7. 얘는 한번도 남자에게서 전화가 온 적이 없는걸요!
8. 사촌 금성의 여자친구들
9. 결혼에 대한 금성의 견해
10. 금성의 고민
11. 내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
12. 독신녀는 무엇으로 사는가
13. 길, 집으로 찾아오다
14. 도대체 뭐가 문제지?
15. 드러난 커플, 숨겨진 커플
16. 길이 나를 물다
17. 이럴 때 친구가 필요하다
18. 미라의 경우
19. 금성의 경우
20. 친구는 없다
21. 가족에 대한 중간평가
22. 결정적인 실수
23. 지금껏 내가 경험한 가장 고독한 것
24. 소중한 것을 지키는 길은 단지 침묵뿐
25. 그날 이후 나는 강철이 되겠다고 경심했다
26. 모두가 지나간 옛 노래
27. 길에게 노, 라고 말하다
28. 남자 동료
29. 그 남자의 이름은 Husband
30. 자연에 대한 진숙의 생각
31. 나에 대한 미라의 생각
32. 자연의 순수한 남자에 대한 설명
33. 서란에 대한 미라의 생각
34. 넌 아무래도 남성혐오증 환자인가 봐
35. 또 다른 자유의 여자
36. 딜도
37. 나는 나, 너는 너
38. 독신 어리광
39. 2PAC
40.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41. 脫戀愛主義
: 작가의 말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하지 않는 카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가 도시 싱글 남녀들을 향해 거침없이 들이미는 탈 연애주의의 연애소설!
“하룻밤만 지나면 나는 서른세 살이 된다. 내 인생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까?
그래, 분명 보랏빛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열렬하게 Yes, Yes!”
이 책의 주인공 유경은 탁월하게 신경질적이고 결벽증적이며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한 캐릭터이다. 유경이 다수를 대변하는지
아니면 특이한 소수인지 나는 아직 판단하지 못한다.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출간 11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다
자타가 공인하는 다작의 작가 배수아. 그의 문학세계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작품으로 꼽히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기도 한 장편소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가 새로운 편집, 새로운 디자인의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2000년 12월 초판이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1년간 증쇄를 거듭하며 꾸준하게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이 소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에서 자유를 대가로 고독을 선택한 비혼주의자 ‘유경’을 주인공으로 각기 다른 외모와 사회적 조건과 개성을 지닌 그녀의 여자친구들과 유경의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맞물리는 세태 풍자소설이다. 낭만적 사랑과 속물적 현실에 기댄 대도시 싱글 남녀 간의 욕망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내고 있으며,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신랄하게 폭로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지금 다시 읽어도 10년이라는 시간차를 전혀 느끼게 하지 못할 만큼 당대성을 띠고 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턱을 치켜들고, 쿨하게 말한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가? 독신주의자는 무언가 부족하고 결여되어 있는 사람인가? 배수아는 이에 대해 주인공 유경의 입을 빌려 단호하게 “NO”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여러 등장인물을 풀어놓고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삶’을 원하는 유경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여성으로서의 ‘적령기’의 마지막 시기를 거치고 있기에 주위 사람들의 과도한 주목을 받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적령기라는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내는 구성원은 바로 자신의 가족이나 일가친척, 직장동료, 그리고 친구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해 지독하게 성실한 그녀는 일이 끝나면 야간대학으로 달려가 수의학 공부를 한다. 수의사가 되어 야생동물을 돌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날 꿈을 이루려고 3년째 노력하고 있다. 타협하지 않을 만큼 강하고 진보적인 정신을 가진 그녀는 남자를 섹스의 대상 이상으로 여기지 않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남성혐오증 또는 결혼혐오증을 의심받고 있지만 단지 그녀는 제도적 굴레로부터, 감상적 자아도취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 할 뿐이다. 때문에 유경은 사랑의 감정조차 스스로 통제하려 하지만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유경의 친구들도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평범하거나 마찬가지로 전부 독신이다. 그들의 이중적이고도 속물적인 연애관/결혼관을 바라보는 유경의 시선은 자조적이면서 냉정하다. 가족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부모와 친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삶이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 원치 않는 것을 알고 거부할 수 있는 용기, 삶에 대한 그 당당한 태도다. 유경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연애에 빠져서 설탕물 속을 헤매는 파리가 되기 싫다는 것이었다. 육십 살이 되어도 정글 속의 고릴라와 키스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다.”
작가의 말 중에서 | 배수아
고집이 세고 자기중심적이고 타협이나 화해를 싫어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특히 냉정하고 자신은 아프거나 빚을 지거나 남의 도움을 빌려야 할 정도로 곤란에 처하는 일은 영영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종교나 도덕이나 사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희박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 생물학적 성별은 female이고 나이는 33세. 독신. 건강 상태 양호. 중산층 출신이나 노동 의지와 독립심이 특이할 정도로 강하다. 어떤 점에서는 과격하기조차 하다. 이런 인물을 설정한다. 이 설정은 임의이고 독립적인 것이므로 동시대의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성격이 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하는 문제와는 물론 직접 관련이 없다. 그렇게 시작한다. (2000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