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술하임의 성주 차벨타우와 그의 딸 안나는 낡고 오래된 답술 가의 저택에서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살아간다. 유복한 어린 시절,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동양의 신비주의를 접한 답술은 이집트와 인도를 방랑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답술 가의 재산을 탐낸 사촌으로 인해 이름뿐인 성주로 지낸다. 차벨타우는 망루 꼭대기에 자신의 서재를 만들고 사촌이 골라준 여자와 결혼하고 딸을 낳지만, 출산 후 아내가 사망한다. 사촌의 도움으로 딸의 세례식과 아내의 장례식을 일사천리에 끝낸 뒤, 답술은 사촌에게 거의 모든 일을 맡기고 자신은 망루에서 혜성을 관찰하거나 하며 소일한다.
답술의 어린 딸 안나는 어릴적부터 농사에 대한 애착을 키워 성의 모든 잡일을 도맡는다. 어느 날, 밭에서 이상한 웃음소리를 들은 안나는 눈에 띄는 당근 다발을 뽑았고, 거기서 금반지를 발견한다. 안나는 아름다운 반지를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낀다. 그 순간 찌르는 통증을 느꼈지만 이내 사라진다. 아버지에게 반지를 보여주기 위해 손에서 빼려고 하지만 꼈을 때처럼 통증이 느껴져 포기하고, 다음날 아버지 차벨타우는 자신의 서재에서 서럽게 울고는 자신의 서재로 안나를 부르는데.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
저자 :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마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낭만주의의 ‘보편 예술’ 정신을 구현한 독보적인 인물로 꼽힌다. 1776년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변호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애 대부분을 법원 관리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1799년 징슈필 「가면」 작곡을 필두로 작곡과 평론 등 음악 활동으로 예술가의 길을 시작한다. 오페라단 단장직에서 해임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기인 1814년에 그간 집필한 「황금 항아리」 등을 모아 펴낸 소설집 『깔로풍의 환상집』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문학계 유명인사로 자리 잡는다. 이후 8년간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며 장편소설 『악마의 묘약』(1815~16), 「모래 사나이」 등을 수록한 소설집 『밤 풍경』(1816~17), 중편소설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1819),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 「스뀌데리 부인」 등을 수록한 소설집 『세라피온의 형제들』(1819~21)을 잇달아 펴낸다.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매년 수백 페이지를 써내며 『브람빌라 공주』(1820)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1820~21) 같은 장편소설과 소설집의 후속권들을 쉼 없이 출간한다. 1822년 위중한 상태로 병석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을 구술로 마무리하고, 당국과의 마찰로 검열당한 『벼룩 대왕』을 출간하는 등 “죽기 전에는 살아 있기를 멈추지 않”으며, 온몸이 마비된 채 구술을 하던 중 생애를 마감했다. 환상문학의 전범이자 장르문학의 고전, 그로테스크의 대가, 심리묘사의 거장으로서 도스, 고골, 보들레르, 발자끄, 포 등 무수한 작가들을 매료했고, 음악계에서도 차이꼽스끼, 슈만, 오펜바흐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