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기 위한 싸움!
원시의 활기, 야생의 활기를 불어넣는 김수경의 소설 『고수』. 북 치는 아이, 고수. 늑대와 사슴, 곰 가죽을 두드려 그 소리로 허공을 제압하고 제 속의 미움과 분노까지 풀어버린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대학로로 뛰쳐나온 그가 야생과 같은 길거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신 내린 어머니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는 집을 가출한 고수. 마로니에 길거리 아이들의 텃세 싸움 속에서도 비보이들의 춤사위와 어우러지는 리듬으로 신명나게 북을 치며 산다. 그러던 중 마로니에의 영웅 자리를 지키려는 파이터이자 춤꾼 히로의 싸움에 쫓겨 지리산에 갇히고 만다. 눈 덮인 지리산에서 만난 샤먼 할멈을 통해 고수는 끈질긴 생의 의지와 진정한 스트리트 파이터로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고수
작가의 말
추천사
이 소설은 우리 유전자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원시의 활기, 들짐승처럼 펄펄 뛰는 야생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고수의 리듬이 살아있는 북소리가 생생히 들리고, 눈과 불의 나라 캄차카 시원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모든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는 법, 나의 뜨거운 피와 힘을 조절하여 자신을 다스리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김수경 작가만의 색채 짙은 독특한 이야기 속에서 끈질긴 삶의 의지, 생존법을 배울 수 있다.
“네 아비가 때리는 소리의 리듬을 헤아렸다고?”
“난 아버지의 핏줄 속을 흐르는 피의 리듬, 근육이 움직거리는 리듬, 심장이 벌떡대는 리듬까지 다 들을 수 있어요.”
늑대와 사슴, 곰 가죽을 두드려 그 소리로 허공을 제압하고 마침내 제 속의 미움과 분노까지 풀어버리는 고수. 그는 북 치는 아이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대학로로 뛰쳐나온 고수는 야생과 같은 길거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마로니에의 영웅 자리를 지키려는 히로의 불같은 싸움에 쫓기게 된 고수는 얼음 같은 지리산에 갇히고… 그곳에서 얼음과 불의 나라 툰드라에서 온 샤먼 할멈을 만난다. 산전수전 공중전, 험난한 인생 여정을 다 겪은 싸움꾼 할멈을 통해 고수는 눈 덮인 겨울 지리산에서 끈질긴 생의 의지와 진정한 스트리트 파이터로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겨울의 끝자락, 샤먼 할멈과 봄 신맞이 춤을 추며 입사의식을 치른 고수는 다시 야생의 길거리 세계로 내려온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서 주먹 한 번 안 뻗고 상대를 무너뜨린다.
그는 이제 그의 북을 치고 있다. 그의 리듬을 치고 있다.
그의 싸움은 더 이상 히로를 향해 있지 않다.
그는 자신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끝내 이겨낼 것이다.
작가의 말
처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리산에 집을 짓겠다고 서울을 떠나면서부터였다. 그래놓고 몇 년째 질질 끌며 끝내지를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난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붙잡고 보니, 소설 속에 나처럼 어려움에 처해서 막막해하고 있는 고수가 있었다. 혼자 지내고 싶어 하면서도 외로워하고,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었다.
갑자기 의욕이 솟구쳤다. 나는 고수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들짐승같이 펄펄 뛰는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는, 끝내 살아내고 마는 삶의 의지를 잔뜩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대체 나에게도 없는 그 활기를 책 속의 아이에게 어떻게 불어넣을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나는 오히려 고수에게서 활기를 얻었다. 시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캄차카에서 야생의 활기를 얻었다. 집을 나와 길거리에서 분투하고 있는 고수와 머나먼 캄차카에서부터 험난한 여정을 거쳐 지리산에 이른 할멈의 만남에서 끈질긴 생의 의지를 배웠다. 도무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같이 괴상하고 믿어지지 않게 강한 할멈은 은밀한 나의 로망이었다.
‘좀 별나고 이상하면 어때? 꼭 착하지 않으면 어때? 잘나지 못했으면 또 어떠냐고? 살다 보면 비겁할 때도 있고, 나약할 때도 있는 거지. 아무튼 우리는 다 이 세상에 왔으니 살아가야 하잖아? 살아 있는 존재면 활기 있게 살아야지. 제대로 살아봐야지. 거침없이 살아봐야지.’
나는 내가 맞닥뜨린 싸움에서 이겨내고 싶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잘 살아남고 싶었다.
그 봄을 그렇게 고수와 함께하면서 나는 마침내 대문을 열 수 있었다. 바깥은 온통 따스하고 환한 봄볕으로 넘쳐났다. 만물을 태어나고 자라게 하는 그 햇볕이었다. 살랑살랑 살을 휘감고 도는 바람이 나를 맞았다. 두려움을 벗고 보니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낮이면 웅대한 지리산이 검게 빛나고, 밤이면 수많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나며, 꿩이며 고라니가 성큼성큼 마당을 지나다니는 산골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물론 풀들은 올해도 무럭무럭 자랐고,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노래기며 지네도 나왔다. 문제없었다. 나는 낫을 들고 풀을 벴고, 벌레는 집 밖으로 내보냈다. 혼자 지내는 외로움도 잘 견뎌냈다. 그렇게 한 해를 잘 살아냈다.
집을 나와 길거리에 살면서 고달픔을 겪는 아이들이나, 점수에 시달리며 하루 열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나 매한가지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독한 삶을 살아온 할멈이나 가족들 먹일 돈을 벌기 위해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는 아버지, 어머니나 매한가지다. 모두 나와 다를 게 없다. 모두가 때로는 두려움에 떨고, 막막함에 길을 잃고, 외로움에 눈물도 흘린다. 그 모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생의 활기가 넘쳤으면 좋겠다. 우리 유전자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원시의 활기, 야생의 활기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 거침없이 생의 에너지를 뿜어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소설에서 그런 활기를 그려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