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서 범이 울면, 조선의 악몽이 시작된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천재지변을 물리치려는 왕과 세자,
그리고 착호갑사들의 이야기!
“그야말로 호환마마로구나.”
짐승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악몽
피아리수의 향기를 맡은 자, 조선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
세자가 돌아왔다. 혼인하기 싫다며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났던 이신이, 2년 만에 궁으로 돌아왔다. 궁궐에서는 그의 귀환을 환영하는 연회를 연다. 이신은 아버지이자 조선의 왕인 이청에게 서역에서 가져온 ‘피아리수(피어리스)’라는 꽃을 선물한다. “서역의 용한 점쟁이가 말하길, 제가 나고 자란 집에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이며 이 피아리수의 냄새를 맡은 자를 지켜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청은 감히 일언반구도 없이 궁을 떠난 아들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날 밤, 짐승의 포효를 신호로 궁에 어마어마한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호환마마 : 100일의 사투』는 궁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범 한 마리를 시작으로 눈을 뗄 수 없는 100일간의 사투를 그려낸다. 자음과모음 제1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배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으로, 전작인 『시트콤』이 뒤틀린 욕망을 둘러싼 인간 군상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신비의 꽃 피아리수’라는 판타지적 상상력에 피 튀기는 박진감을 더해 전혀 다른 세계로 초대한다.
범이 몰고 온 저주를 이청은 어떻게 맞설 것인가? 꽃의 힘으로 초토화된 궁궐을 지킬 수 있을까? 그에게 맡겨진 조선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여러 갈래로 퍼져가는 의혹은 마침내 맞이하게 될 그들의 마지막을 상상하게 하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소설의 몰입감을 한층 높여준다.
저주를 품고 산자락에서 내려온 범 한 마리
천재지변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청과 이신, 그리고 착호갑사 삼인방
북쪽에서 범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궐에 큰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궁인들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울부짖는 등 이상한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물리면 똑같은 증세가 전염되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는 저주, 이청은 서역의 점쟁이란 자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꿈이다.’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일련의 상황들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보다 더 기괴한 꿈도 숱하게 꿔봤으니까. 그러나 이토록 생생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세자에게 목이 졸리는 꿈을 꿨을 때도, 온몸을 난도질당하는 악몽을 꿨을 때도 이번처럼 통증이 적나라하게 와닿지는 않았었다.
‘꿈이어야만 한다.’
-P.29~30
원인은 산자락에서 내려온 범 한 마리였다. 이청은 즉시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착호갑사 삼인방을 모아 범을 쫓는다. 경복궁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제 한 몸 바쳐서라도 저주를 멈추겠다는 그들의 각오는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침착하게 리더 역할을 하는 듬직한 범통, 묵직한 철퇴를 휘두르는 불곰, 활을 쏘는 실력이 탁월한 곶감. 착호갑사 삼인방은 이청과 이신을 도와 차근차근 범을 추격해간다.
인물들의 이동 경로를 통해 경복궁의 각 장소를 엿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장소의 이름이 생소할 수 있으나 책 맨 앞에 첨부되어 있는 ‘경복궁 조감도’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변하는 위치를 참고하며 읽을 수 있다.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갈등
벗어나려는 세자와 잡아두려는 왕, 그 결말은?
범의 저주와 전개가 주는 긴장감뿐만이 아니라, 남녀 로맨스와 부자 갈등 또한 이 소설의 묘미다. 세자 이신은 계속해서 혼인을 종용하는 왕 이청에게 자신보다 활을 잘 쏘는 여인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신의 활 솜씨는 조선 팔도를 통틀어 모르는 자가 없었고, 가히 신궁(神弓)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런데 착호갑사 삼인방 중 유일하게 여자인 곶감이 펼치는 활 실력에 이신이 반하고 만다. 그녀의 솜씨는 이신을 능가할 정도였다. 곶감의 출신이 못마땅한 이청은 이신과 곶감을 떼어놓으려고 하고, 그로 인한 이신의 서러움과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들을 향한 이청의 야속함이 부딪힌다.
이청은 막 손에 들었던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말했다.
“세자가 신궁(神弓)임을 조선 팔도를 통틀어 모르는 자가 없다. 여인은 고사하고 사내 중에서도 세자의 실력을 뛰어넘을 자를 찾기 힘들 터인데, 지금 그 같은 간계로 과인의 간곡한 심정을 능멸하는 것이냐?”
“간계라니요. 왜 없다 단정하십니까? 소자 2년간 활을 잡지 못하여 실력이 많이 녹슬었습니다. 또한 여러 곳을 다녀보고 깨닫게 되었사온 바, 조선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옵니다. 소자를 능가하는 활 솜씨를 가진 여인쯤이야 찾아보면 필시 널리고 널렸…….”
“듣기 싫다!” 이청이 손을 벌레 쫓듯 휙 휘둘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거라. 좀 더 진지하게 임하지 못할까!”
“아바마마께서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 하셨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전 활동적인 여인이 좋습니다. 양반가에서 공주마마처럼 자라 구슬땀 한번 흘려본 적 없는 온실 속 화초들에게는 도무지 눈길이 가질 않는다고요!”
-P.17
이들의 갈등은 서사를 거듭할수록 절정에 치닫는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미쳐버린 귀신’들과 범의 위협에도 서로를 향한 원망은 시들 줄 모른다.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붙잡아두려는 아버지, 둘 사이의 해결책이 과연 존재할까? 결말에 이르며 이청과 이신의 갈등 과정, 그리고 곶감과의 로맨스 역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배준
2018년 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했고 『시트콤』을 썼다.
호환마마
작가의 말
“그래서, 왜 돌아왔느냐? 드디어 혼인할 마음이라도 생긴 게냐?”
나름 싸늘하게 들리게끔 목소리를 낮췄으나, 이신은 전혀 서운해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한 점쟁이의 말을 듣고 걱정이 되어서요.”
“…….”
이청은 세자가 농이라도 하려는가 싶어 잠자코 있었다. 이신은 계속해서 말했다.
“서역을 유랑할 때 만난 점쟁이한테 점지를 하나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 신경이 쓰여서…….”
“무어라 했기에?” 중전이 물었다.
“제가 나고 자란 집에 독하디독한 천재지변이 들이닥칠 거라고 하더군요.”
_「2」 중에서
어디선가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청은 눈을 감은 채로 반쯤 잠에서 깼다. 천둥소리로 착각할 만큼 힘 있는 포효였다. 최근 도성에 범의 출몰이 잦아졌다는 상소문을 읽은 직후였기에 신경이 쓰였으나, 극심한 피로를 이겨낼 수 없어 다시 잠들어버렸다.
얼마 후 울음소리가 한 번 더, 먼젓번보다 더 크게 울렸고 이청은 결국 눈을 떴다. 침상에서 일어나 우선 머리맡의 등잔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옆에 놓인 피아리수의 꽃잎들이 불빛을 입고 아기자기하게 빛났다. 참 아름답다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침소 바깥의 복도에서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문풍지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_「4」 중에서
“저 곶감이라는 아이는…….”
이청은 먼 산을 내다보며 말했다.
“다른 무기를 들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예?” 범통이 당혹해하며 말했다. “혹 그러길 원하시는 연유라도…….”
“연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왜, 무기가 다양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갑사이니만큼 활이 아닌 무기들도 능숙히 다룰 터인데.”
“송구하오나 전하, 범 사냥에는 활과 덫이 기본이며, 저 아이는 그중에서도 활을 가장 잘 다루는 착호군의 핵심 인력입니다. 실제로도 근정전에서 유일하게 범을 쏴 맞히지 않았습니까.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알았네.”
_「10」 중에서
“과인이라고 저 아이가 죽길 원해서 이러는 것이겠느냐? 모두를 살릴 방도를 찾지 못한 과인의 부덕함이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니라. 하여 이 아비가 염치를 무릅쓰고 간곡히 부탁하건대…….”
이청은 이신의 두 손을 끌어다 잡으며 간절한 투로 말했다.
“네 목숨을 우선하거라. 왕세자의 목숨에 만백성의 안위가 달려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만백성의 안위라.”
이신은 코웃음을 치더니, 이어 이청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아바마마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그토록 만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시는 분이, 범을 쓰러뜨려 환란을 잠재울 기회가 서른 번 넘게 있었으면서도 다 팽개치고, 고작 저 하나를 살리셨습니까?”
_「1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