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가 부연정 신작!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하지 않아”
특별한 능력을 지닌 고등학생에게 펼쳐진 새로운 세계
『소리를 삼킨 소년』으로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힘을 지닌 이야기”라는 평을 받으며 제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던 부연정 작가의 두 번째 청소년 장편소설 『피망이세요?』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3권으로 출간되었다. 『피망이세요?』는 사람의 손때가 탄 중고 물건 속에 깃든 원귀들이 보이는 시온과 저승사자 준서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함’에 대한 기준에 의문을 던지고, 모두가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존재임을 전해 주는 이야기다.
“피망이세요?”
중고 물건 속 원귀의 사연을 깨우는 한 마디
『피망이세요?』에는 세상에 미련이 남아 삶이 끝난 이후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원귀’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고등학생 ‘시온’이 등장한다. 시온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귀’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온은 그것들을 못 본 척하며,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온의 학교로 “이곳의 기운이 좋아서 왔다”는 희한한 말을 하는 준서가 전학 오고, 시온은 그 뒤부터 평소보다 원귀의 기운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한편, 시온은 가장 친한 친구 가영의 무단 결석이 ‘피망마켓’에서 거래한 중고 거울 속 원귀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학생 준서가 사실은 가영의 몸에 씐 원귀들과 같은 이들을 퇴마하여 빠른 승진을 꿈꾸는 저승세계의 공무원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
“걔들이 네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두지 마. 네 인생은 네 거야”
소설에는 나이도, 성별도 심지어 종마저도 다른 이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각자의 아픔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고민을 들어 주는 누군가’라는 것을 작가는 나쁘게만 보였던 원귀의 목소리를 통해 말해 준다. 주인공 시온은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서, 저승사자 준서는 원귀를 원래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돌려보냈음에도 매번 민원을 받아 진급을 하지 못해서, 가영에 몸에 씐 원귀는 외모가 예쁘지 않아서, 왕따를 당하는 성훈의 몸에 씐 원귀는 성훈처럼 왕따를 당했던 동생이 신경 쓰여서 등 이들은 모두 다른 사연을 갖고 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그간의 아픔을 극복하고, 다음 시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작가는 이런 다양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통해 결국 오늘날 각자의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는 청소년 독자들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지난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얻기를, 그리고 ‘남들처럼만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모든 독자에게 남보다는 ‘나’를 더 챙기며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소망했다. 비록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남들보다 내가 더 부족해 보이고, 그들에 비해 무언가가 결핍되어 보여 소외감이 드는 때가 오더라도, 소설 속 시온과 준서처럼 남들이 이야기하는 평범의 기준치에 나를 끼워 넣기보다 가장 내가 즐겁고 찬란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각자의 고민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빌어 본다.
부연정
부산에서 태어나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다. 『소리를 삼킨 소년』으로 제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평소 꿈꾸던 청소년문학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전학생의 등장
피망이세요?
전학생의 정체
운동화에 깃든 비밀
시온의 반격
짧은 평화
우리 반 1등의 가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
학교에 숨어든 악귀
도서관에서의 결투
다시, 피망이세요?
작가의 말
“왜 전학 왔어?”
“전학 오기 전에는 어디 살았어?”
“너 공부 잘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몇 등이었어?”
“혹시 아이돌 연습생이야?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어?”
와악, 하고 쏟아지는 질문들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시온은 다시 책사엥 엎드렸다. 저를 향한 질문도 아닌데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전학생이 반 아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면 족히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그때, 천천히 교실 천장을 훑어보던 준서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이 동네가 기운이 좋은 것 같아서 이리로 이사 왔어.”
_14쪽
“피망이세요?”
똑같은 목소리가 또 한 번 뒤통수를 때렸다. 목소리는 바로 지척에서 들렸다. 저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예? 피망이요? 잘못…… 어?”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시온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가운 표정의 시온과 달리 남자아이는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미심쩍은 목소리가 다시 시온을 향했다.
“피망마켓에서 전신거울 무료로 준다고 글 올리셨던 분 아니세요?”
시온이 가져온 전신거울을 힐끔 쳐다보는 남자아이의 얼굴에 ‘맞는 것 같은데’라는 말이 쓰여 있는 듯했다.
“아아, 그 피망?”
시온은 그제야 남자아이가 피망이냐고 물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뒤늦게 우리나라 최대 중고마켓 앱 이름이 ‘피망마켓’이었던 게 기억났다.
“백준서 맞지?”
_25쪽
“모르겠어. 어릴 때부터 그냥 그것들이 보였어. 때로는 검은 그림자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처럼 선명하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본 걸 말할 때마다 난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했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는 영악한 아이 말이야. 사람들은 자기가 보지 못하는 건 믿지 않으니까.”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시온은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이 좋았다. 준서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은 대등했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지내고 있어. 그런데 어제 그 사건이 일어난 거지. 가영이는 내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때 묵묵히 곁을 지켜 준 친구야. 그 순간까지 그것들을 못 본척 할 수는 없잖아.”
“원귀의 뒷덜미를 잡은 건?”
“실은 나도 만져 본 건 처음이야. 아니, 얼굴을 그렇게까지 자세히 본 것도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지그까지는 도망치기 바빴거든. 단 한 번도 그걸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어.”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세상을 보는 시온 앞에 준서가 나타났다. 시온과 똑같은 세상을 보는 준서가. 그건 시온이 처음 느끼는 동질감이었다.
_56~57쪽
“쌍꺼풀이 있고 없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그냥 모두 다른 것뿐이야. 세상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하지 않아. 네가 나랑 똑같으면 그게 더 이상할걸? 도플갱어를 만나면 반드시 죽는다잖아. 으으, 소름끼쳐.”
“정말로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시온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가영이 시온의 어깨에 팔을 척 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_87쪽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게 뭐가 이상한데?”
“이상하지.”
“그건 그냥 네 특기일 뿐이야, 이시온. 우리 반 1등이 공부를 잘 하고, 내 짝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처럼 그냥 네 특기일 뿐이라고.”
“특기?”
시온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특기라는 건 남과 비교해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장점인 것이다.
시온은 여태 원귀를 보는 능력이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점이자, 숨기고 싶은 능력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그것이 특기라는 준서의 말은 시온에게 있어 세상이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걔들이 네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두지 마. 네 인생은 네 거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살 필요는 없어.”
_113쪽
지안과 하윤이 시온을 곁눈질하며 소곤거렸지만, 시온은 두 사람을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시온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십 년 후 고등학교 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시온은 아마 두 사람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흐릿한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영이와 나누었던 시시껄렁한 대화는 생각이 날 것이다. 가영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서로에게만 털어놓은 작은 비밀, 둘이서 같이 먹었던 떡복이 같은 것들도. 그러니 굳이 두 사람의 악담에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다. 시온은 자신의 마음이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음을 느끼며 조용한 웃음을 흘렸다.
_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