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이 정도면 행복한 결혼 생활이지 않니?”
주식, 코인, 유튜브… 뭐라도 터져야 살 수 있는
극한 부부 투쟁기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자음과모음 〈새소설〉 시리즈가 〈뉴어덜트 새소설〉로 리뉴얼된 후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인다. 권제훈의 신작 장편 『테트리스 부부』는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콘텐츠를 추구하는 ‘뉴-어덜트’를 위한 시리즈에 맞춤과 같은 작품이다.
넥서스경장편작가상 수상작 『여기는 Q대학교 입학처입니다』에서 직장 내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상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축도(縮圖)를 제시했던 작가는, 『테트리스 부부』를 통해 사회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는 가족으로 시선을 돌린다. 소설은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점차 그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부부에 주목한다.
“애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은 왜 했어?”
연애는 끝났다, 이제는 실전이다
완벽한 결혼을 위한 기상천외한 생존 전략!
지웅과 민서가 자녀를 갖지 않고 딩크족으로 살아가자고 합의한 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이다. 남자라면 누구든 적정한 나이에 결혼해서 아빠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지웅은, 막상 10평 남짓의 오피스텔에 신혼살림을 꾸리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부부 둘만으로도 복작거리는데 아이까지 가세하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각자의 집에 난임이라고 선언하자는 민서의 제안을 별생각 없이 수락했다. “애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은 왜 했어?”라는 지겨운 레퍼토리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손절을 치기로 한 것이다. 부부는 그렇게 완벽한 결혼을 꿈꿨다.
“우리가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애 안 가질 거라고? 노, 네버, 그건 불가능해.” _본문 중에서
명품 가방, 외제 차, 호캉스, 오마카세…
마이너스 통장은 가깝고 출산은 멀기만 한
현실 부부의 선 넘은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아이만이 아니었다. 민서는 한마디로 남이 하는 건 다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욕망의 대상이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어떤 것에 꽂히면 지독하게 파고들다가도 어느 순간엔 지겹다며 손을 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걸 찾아 몰두했다. 결혼 전에는 이런 민서의 성향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웅은 오히려 민서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었다. 지웅은 점차 민서의 열정에 혀를 내둘렀다. 민서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어야 했다. 누군가의 조연일 순 없었다. 남편인 지웅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자녀조차도.
서로 다른 소비 습관도 문제였다. 버는 족족 적금이나 예금으로 저축하는 지웅과 달리 민서는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놓고 빚 또한 자신의 자산인 것처럼 행동했다. 지웅은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어차피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명품 가방을 더 많이 사고, 5성급 호텔에서 호캉스도 더 자주 하고, 매주 값비싼 오마카세를 즐기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식이든 코인이든 유튜브든 뭐 하나는 대박이 나야 했다.
결혼은 했지만 가족은 없다?
부부라는 이름의 동거인,
이 부부는 함께할 수 있을까?
위태롭던 부부에게 한 방을 날린 건 다름 아닌 비뇨기과 검사 결과였다.
“남편분 무정자증이 맞습니다.” _본문 중에서
출산을 강요하는 양가 부모님에게 면피용으로 던져놓았던 그 말이, 씨가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검사 결과를 받아 든 지웅은 애초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부정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더 이상 포기하고 참으며 살지 않겠다고. 시작은 민서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질러버린 마이너스 통장과 천 만원짜리 자전거였다.
한편 갑자기 달라진 지웅을 보는 민서의 마음엔 화가 끓었다. 민서가 먹고 싶은 것을 함께 먹어주고, 가고 싶은 곳에 함께 가주고,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해주던 남자였는데. 지웅이 하고 싶은 것은 없었는데, 설령 있어도 민서한테 먼저 보고부터 하던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민서의 속에는 불이 났다.
작품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충돌하는 개인의 독립성과 부부라는 이름의 전통적 공동체성이 어떻게 타협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비출산이 당연해진 잔혹한 사회에서, 2세 계획도 내 집 마련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요즘 신혼부부의 웃픈 현실이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은 이유다.
과연 이 부부는 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뉴어덜트 새소설’은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새소설〉 시리즈의 새로운 버전으로,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작품을 엄선해 선보입니다.
■■■ 책 속에서
“오늘이 디데이야. 알지? 명심해.”
시동을 끄자마자 민서가 재차 강조했다. 도착할 즈음이 되자 귀신같이 눈을 떴다. 저놈의 디데이 타령.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민서는 노르망디 상륙을 앞둔 연합군처럼 비장했다. 살짝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앞서는 듯. 민서의 이런 모습이 새삼스럽진 않았다. 구찌 매장 앞에서 대기 인원이 하나둘 줄어드는 걸지켜볼 때도 그랬다.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사방을 살피며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했었지 아마. 오늘은 가방을 꼭 사고 말겠어. 명심해, 알겠니? 그때 내 표정이 어땠을까. (10쪽)
“죄송한데요, 아무래도 아이는 힘들 것 같아요.”
“뭐? 그기 무슨 말이고?”
나는 용기를 냈다.
“저랑 민서, 아이는 못 낳을 거 같다고요.”
“이 자슥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기고?”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와 민서가 그 소리를 들었을까 싶어 고개를 돌려 분위기를 살폈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우리 집안의 대를 끊겠단 말이가 이 자슥아. 누나도 저러고 있는데 집구석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그러면 어쩌란 말이고?”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거예요.” (25쪽)
“우리 사위가 고장이 났다잖아.”
네?
“고장 난 사위한테 술 좀 준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보약보다 더 좋은 게 바로 이 술이야. 고장 난 곳도 금세 다 고쳐질 걸세. 자, 이거 마시고 기운 좀 내세.”
고장이요? 저요? 고장 난 사람이 있다면 제가 아니고 민, 서…….
나는 잔을 고이 들고 민서를 쳐다보았다. 민서가 장어 한점을 입에 쏙 밀어 넣으며 씨익 웃었다.
아…… 와…… 후……. (40~41쪽)
“아 진짜, 씹선비.”
기어코 민서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까지 뱉었다. 나라고 당할 수만은 없어 민서가 제일 싫어하는 얘기를 꺼냈다. 능력도 안 되면서 뭐든 목구멍에 밀어 넣으려고 하는 당신 같은 인간들이 가장 문제다, 뭐 요약하면 이런 얘기였다. 물론 민서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했다. 내가 더 당할 빌미만 제공했을 뿐. (73쪽)
정액이 담긴 컵을 간호사에게 건넬 때의 느낌은 너무나 이상했다. 소변검사와는 확실히 달랐다. 속을 훤히 보여주는 느낌인데 부끄럽고 쪽팔리면서도 동시에 아주 약간은 뿌듯하고 야릇했다.
검사 결과는 다음 진료 때 알려준다고 했다. 결과를 우리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의사에게 몇 번이고 받았다. 민서는 고급스러운 방에서 무얼 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다가 귀가 뜯겨나갈 뻔했다. (93쪽)
이 남자에게서 어떤 결심, 결의를 느낀 게 처음이어서 반갑긴 했다. 같이 운동하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더니 웅이는 헬스장부터 등록했다. 놀랍게도 PT 10회권까지 신청했다. 1회에 몇만 원씩 하는 PT를 받는 사람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던 웅이였는데. 그런 그가 망설이지 않고 PT를 등록했을 때 이 남자의 사고방식이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115쪽)
삼천만 원 대출받아서 천만 원으론 자전거 사고 다른 천만 원으론 투자하고 우리 웅이 아주 잘나가네? 남은 천만 원으론 뭘 할 생각일까. 투자한 건 아직 안 잃었냐고 물었더니 3% 벌었다며 헤벌쭉 웃었다. 이천만 원을 다 넣을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133쪽)
이 모든 게 이유 같지 않았지만, 이유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웅이는 영상을 올려놓고도 왜 말이 없는 걸까. 이게 가장 거슬렸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함께 먹어주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함께 가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해주는 남자였는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없었는데, 설령 있어도 나한테 먼저 보고부터 하던 사람이었는데. (153쪽)
그날 이후 나는 유튜브에서 손을 뗐다. 정나미가 확 떨어졌다. 모든 게 귀찮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만두면 웅이도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웅이는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가 참견하지 않자 오히려 더 자유롭게 움직였다. 가면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맨얼굴 그대로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189쪽)
엄마와 어머님은 한복을 입고 있는 쌍둥이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만 해도 애 없이 둘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더니, 역시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울상이었던 두 사람은 더없이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10초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짧은 시간에 질문을 많이도 던졌다. 정신없게 애들 그만 괴롭히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우리한테 애가 있었으면 저러진 않을 테니까. 쌍둥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부모님들을 보고 있으니 착잡했다. (210~211쪽)
■■■ 지은이
권제훈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청년예술가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2022년 장편소설 『여기는 Q대학교 입학처입니다』로 넥서스경장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차례
강지웅
한민서
테트리스 부부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