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김선영, 김희선 소설가 강력 추천!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장은진의 첫 청소년소설
갑자기 닥친 재난, 서로 연대하며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7권이 출간되었다. 107권 『디어 마이 버디』는 커다란 해일이 도시를 덮쳐 높은 빌딩의 일부만 남은 세상 속에서 다이빙을 하며 성장해가는 고등학생 다이버 세호와 그의 버디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해일이 들이닥쳐 도시가 사라졌다. 길도, 통신도 끊긴 상황.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홉 살 때부터 스쿠버 다이빙을 해 온 주인공 세호는 자신의 ‘버디’ 샘 아저씨와 함께 매일 잠수를 하며 자신들의 목숨과 빌딩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다.
그렇게 빌딩 사람들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던 어느 날, 두 번째 해일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세호와 세호의 버디들은 무섭게 변해 버린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추천사
재난 이야기 특유의 비장함과 드라마틱한 요소를 배제했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문체로 독자에게 재난의 현장을 목도하게 한다. 그래서 더 처참하고 그래서 더 쓸쓸하고 그래서 더 슬프다. 심지어 아름답게 삶과 죽음을, 물속이 되어 버린 세상을 서술한다.
해일에 삼켜진 세상, 육지는 물속 세상이 되고 다이버인 세호의 숨 한 번은 누군가의 목숨 줄이 된다. 세호, 샘 아저씨, 혜미, 세아는 매일 한 계단, 혹은 두 계단씩 세상이 물에 잠긴다 하더라도 연대와 사랑으로 종말의 두려움을 떨쳐 낸다. 서로에게 기꺼이 버디가 되어 함께 살아야 하고 살려야 하고 의지하며 위로가 되어 주려 한다.
우리가 땅을 밟고 숨 쉬고 걷고 뛰며 햇살을 받고 나무를 보고 말갛게 갠 하늘을 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찬란하게 아름다운지 이 소설을 보면 자명해진다. 이 소설은 인간이 지닌 사랑과 지혜와 상상력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세상이 마지막 한 계단만 남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찬란함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기 때문에.
―김선영(소설가, 『시간을 파는 상점』 저자)
오랜만에 만난 ‘긍정과 참된 용기’의 이야기.
누군가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지만, 『디어 마이 버디』에선 섬과 섬 사이에 사람들이 있다. 세계를 뒤덮은 재난을 이겨 내는 건 서로 맞잡은 손과 그 손을 타고 흐르는 사람의 온기뿐임을 말해 주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외따로 떨어진 섬과 섬을 이어 주는 것은 오직 사람들뿐이니까.
―김희선(소설가, 『빛과 영원의 시계방』 저자)
■■■ 지은이
장은진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동굴 속의 두 여자」가,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키친 실험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날씨와 사랑』,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당신의 외진 곳』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 차례
물속 편의점
감자 먹는 사람들 자리
버디 네임: 강세호
162미터
슬픈 다이빙
나비의 날갯짓
나쁜 물
집으로
바다의 노래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물이, 계단 한 칸을 삼켰다.
도시는 사라졌고 일부만이 남았다. 남은 도시의 일부는 모두 높이를 자랑하던 것들이었다. 높이를 가져서 살아남았노라 말하는 듯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비극이었다.
남은 것들은 섬의 형태였다. 섬과 섬을 잇는 길은 없었다. 땅, 인류가 착실하게 닦아 온 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시와 바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_7쪽
“마지막에 보낸 수신호는 뭐였니?”
올라가자는 수신호를 교환해 놓고 내가 늦게 나오자 아저씨가 조금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는 에비앙이 든 채집망을 끌어 올리며 덧붙였다.
“우리가 정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시체요. 시체를…… 봤어요.”
물에 휩쓸려 가는 주검은 봤지만 물속에서 시체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아저씨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룰을 어기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나를 보트로 끌어 올렸다. 후드를 벗자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한여름 태양 빛이 정수리에 날카롭게 닿았다. 저 열에 물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으면 좋겠다. 태양은 그런 힘을 갖고 있지 않나._19쪽
마지막 잠수를 마치고 아저씨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자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물 밖으로 삐죽삐죽 솟은 건물들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빗방울은 수직으로 쏴아, 하고 내리꽂히며 바다로 녹아들었다.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제아무리 몸을 비틀어 물을 짜내도 바다는 젖지 않았다. 빗방울이 아무리 많은 동그라미를 물 위에 그려도 무늬들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한패니까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과 한패가 아닌 우리는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빌딩으로 돌아갔다._44쪽
“사람도 햇볕에 말리기만 하면 이렇게 살아나는 거면 좋겠어. 신발이나 책, 옷은 젖어도 다시 쓸 수 있잖아.”
해가 잿빛 구름에 가려지자 물결에 비치던 빨간 빛도 사라졌다. 그때 아래층에서 란희 누나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 햇볕이 숨이 되어 주면 좋겠어.”
혜미도 나와 비슷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햇볕이 물을 말리고 말려 우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는 상상. 혜미는 이 악몽이 끝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과거의 악몽으로 돌아가려고 할까.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1등을 해야만 아빠가 미소를 지어 주던 삶으로. 친구들이 혜미를 질투하고 괴롭히던 학교로. 외롭고 고독한 나날로._89~90쪽
다이빙은 이기려는 경쟁심보다 져도 괜찮은 보살핌을, 바쁜 속도보다 차분한 느림을 지향하는 세계다. 세상이 물속이라면 우리는 모두 그런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라고 물에 가둬 버렸을까.”
혜미가 물에 잠긴 도시를 아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떤 빌딩은 며칠 전까지 있었던 창문 한 줄마저 사라져서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잠기니까 사라져 버리긴 했어. 경쟁도 속도도, 꼴등도 1등도. 서로 도와야만 살 수 있잖아. 우린 지금 다이빙의 세계를 살고 있는 건지도 몰라.”_118쪽
살면서 겪게 되는 아주 작은 사건도 그것에 영향을 받으면 인생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를 죽을 만큼 팼던 그 사건이 현조의 인생에도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반성을 통해 오늘에까지 이르렀고, 나아가 먼 미래에까지 닿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비의 날갯짓처럼._143~144쪽
“세호는 참 좋겠다. 오빠 말 잘 듣는 동생이 있어서.”
혜미가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언니 동생이기도 해.”
“뭐?”
세아의 말에 혜미의 눈이 커다래졌다.
“내가 언니 동생도 돼 줄게.”
“진짜?”
“응. 살아남았으니까.”
세아는 자고 있던 루나를 안고 혜미의 침대로 옮겨 갔다. 그래, 살아남으면 누구든 가족이 되는 것이다._168쪽
흔들리는 보트를 따라 내 몸도 출렁였다. 바닷바람은 따뜻했고,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나를 환하게 비춰 주었다. 나는 살아서 물 밖 공기로 숨을 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바닷속이 아무리 찬란하고 편하고 행복해도, 이쪽 세계가 더 찬란하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말. 명심하라던 할아버지의 그 말처럼, 물 밖은 눈부시게 찬란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숨 쉬고 있는 곳. 내가 지켜 줘야 할 사람이 있고, 나를 지켜 줄 사람이 있는 곳. 언제든 찾아가 얼굴을 볼 수 있는 곳. 호흡 기체 없이도 달려가 만날 수 있는 곳. 자유롭게 숨 쉬고, 통곡하고, 말할 수 있는 이곳이 훨씬 찬란했다. 그 찬란함에 웃음이 나왔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_192~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