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날 불안하게도, 질투 나게도 만들지 않는
온전한 내 친구뿐이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3권으로 『지옥에서 온 키다리 아저씨』가 출간되었다. 『지옥에서 온 키다리 아저씨』는 첫 청소년 소설 『드림캐처』에서 판타지와 현실적인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밀한 서사를 보여준 작가 정서휘가 청소년문학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인 가족과 친구, 인간관계에 청소년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트렌디한 청소년 소설이다.
예전 이야기를 물어보면 항상 “내 나이 되어 봐라, 내 이름도 가물가물하다”며 딴소리하는 할머니에게는 미운 아이, 친구들에게는 안 미운 아이 ‘안미운’은 친구가 곧 세상이다. 소울메이트를 얻을 수만 있다면 좋아하는 연예인도, 먹고 싶은 것도, 진짜 하고 싶은 것도 다 숨길 수 있다. ‘원더소년즈’의 팬인 친구들에겐 비밀이지만, 사실은 라이벌 아이돌 그룹 ‘어썸보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로이’가 최애다. 그런데, 로이를 쏙 빼닮은 아저씨가 교통사고가 날 뻔한 미운을 구해준다. 소설 『키다리 아저씨』처럼.
■■■ 지은이
정서휘
국어 교사이자 소설 쓰는 사람이다. 못나고 모나고 못된 인물에 마음이 간다. 믿고 보는 작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 소설 『드림캐처』가 있다.
■■■ 차례
지옥에서 온 키다리 아저씨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그래도 어쩜 그렇게 닮았지? 다시 한번 감탄하며 등굣길에 일어난 운명적 사건을 곱씹어 봤다. 키 큰 아저씨가 날 구해 주었고, 그 아저씨는 내가 사랑하는 최애와 닮았다. 어라? 이거 어디서 본 이야기 같은데……?
맞다! 독서 시간에 읽은 소설 『키다리 아저씨』와 스토리가 비슷했다. 그렇다면 내가 주인공 주디?
_10쪽
“아, 친구랑 먹을 거란 말이야!”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치고 말았다. 질끈 감은 눈 끝에 눈물이 방울졌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제부터 단톡방이 조용했다. 은영이가 ‘얘들아 잼썼어 잘 가~’라고 보낸 후에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촉이 섰다. 애들은 내가 없는 다른 단톡방을 팠을 테고, 은영이는 실수로 내가 있는 방에 보냈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_24쪽
다른 자동차들, 인도를 걷는 사람들, 바람에 날아가는 나뭇잎까지도 얼어 버린 것처럼 멈춰 있었다. 움직이는 건 나와, 자신이 인간이라고 우기는 아저씨뿐이었다.
“인간은 시간 멈추는 짓 같은 건 안 해요! 아저씨, 마법사 같은 거예요?”
(……)
나는 아저씨를 쏘아봤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노려보자 아저씨가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들어 보였다.
“에휴, 그래, 말해 줄게. 난 악마야.”
_42쪽
“음, 기쁠 땐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땐 같이 슬퍼하고,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기도 하고. 또, 취미 생활도 같이하고, 맛있는 거 있으면 같이 먹고, 쇼핑도 같이 가고…….”
내 말이 길어질수록 아저씨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런 게 친구야? 너무 부담되겠는데?”
“부담이 왜 돼요? 친구인데.”
“네가 느끼는 대로 똑같이 느낄 상대를 찾는 거 아니야?”
“네. 어떻게 보면 그렇죠.”
“상대는 네가 아닌데 어떻게 그게 가능해?”
말문이 턱 막혔다.
_68쪽
내가 예진이와 다른 아이들한테 빌붙기 위해 어떤 말을 했는지 유나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놓고 죄책감을 지우려 일부러 자신에게 말을 붙이는 속셈까지.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유나가 자기 그림에 시선을 박은 채 말했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 같이 조별 과제할 땐 즐겁잖아.”
_100쪽
“로이 삼촌이랑 어떻게 됐어? 궁금해 미치겠어.”
로이 삼촌? 물음표와 동시에 아저씨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묻다니. 김유나, 반칙이다.
아저씨라. 소문이 나고 두어 번은 부르자마자 가 봐야 한다며 금방 사라졌다. 요새 부쩍 소원을 비는 사람이 많아졌단다. 멘털이 무너진 상태라 그런지 이젠 내가 귀찮구나, 하는 서운함만 들었다.
_129쪽
겨우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섰다. 나를 맞이하려고 서 있는 할머니를 향해 질문을 쏟아 냈다.
“할머니, 나는 왜 엄마 아빠가 없을까? 엄마 아빠는 죽었는데 나는 왜 살아 있을까? 남들 다 있는 거 왜 나만 없을까? 내가 사랑받은 적이 있기는 할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걸까? 나한테도 좋은 일이 있긴 했을까?”
(……)
“기억 안 난다고만 하지 말고, 제발! 제발 말해 줘, 할머니. 제발 좀…….”
무릎을 꿇고 할머니의 가늘고 건조한 발목에 매달려 애원했다.
_149쪽
분명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미운. 미운 짓만 골라 하는 불효 손녀다.
할머니가 슬프게 혼자 낑낑대며 지킨 내 삶은 그만한 가치가 없다. 세 시간 전만 해도 쓰레기처럼 내다 버리려고 했다. 차라리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아무래도 좋다. 할머니가 이딴 삶을 살지만 않는다면.
_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