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평화롭던 자귀도에 인간이 나타났다
흡혈귀와 인간들의 조용할 틈이 없는 일상
130년 동안 외부와 차단된 미지의 섬, 자귀도. 그곳에는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간직한 흡혈귀들이 살고 있다. ‘흡혈귀의 난’ 이후로 그 어떤 사건 사고도 없이 평화롭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길고 긴 평화가 깨진다. 희주와 이루, 두 인간 남매에 의해서.
『조용한 흡혈마을』은 결코 조용할 날이 없는 흡혈귀들과 인간들의 지독한 현생 탈출기를 그려낸다. 인간이 되고 싶어 약을 개발하고 있는 흡혈귀들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자귀도에 들어와 은밀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남매. 이들은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하나뿐인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드라마 보조작가와 전시기획작가를 지낸 성요셉 작가의 유쾌한 필체가 눈에 띈다. 마치 등장인물들이 눈앞에서 대화하고 행동하는 듯한 생생한 묘사가 때로는 웃음을 짓게 만들고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낸다. 또한 인물들의 특징이 매우 뚜렷하고 흥미롭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행동하는 듬직한 누나 희주와 철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개구쟁이 남동생 이루, 한없이 다정한 청년 흡혈귀 보윤을 비롯한 흡혈귀 가족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왜 인간이 되려고 하는데요?”
인간이 되고 싶은 흡혈귀들과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남매의 사정
『조용한 흡혈마을』은 ‘흡혈귀’라는 익숙한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섬사람들은 본래 인간이었으나 ‘흡혈귀의 난’이라는 의문의 사건을 통해 섬 전체가 아비규환이 된 이후,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살아남은 인간들을 뭍으로 올려보내고 남은 흡혈귀들이다.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잠을 잘 때면 박쥐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언제부턴가는 낮에도 박쥐로 변하는 일이 종종 있어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는 이가 허다했다. 그렇게 130년을 살아남은 지금의 섬사람들은 갑자기 박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집집마다 매달릴 수 있는 봉과 박쥐에서 인간으로 변할 때 완충 장치가 되어주는 두꺼운 요를 깔아두고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기 위해, 인간이 되는 신약 개발은 섬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반면, 희주와 이루 남매에게 ‘인간’이란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나 다름없다. 사고로 소중한 부모님을 잃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며 돈에 시달리던 남매에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금은보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찾게 된 자귀도에서, 희주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보윤에게 묻는다. 왜 인간이 되려 하느냐고.
“우린 인간이 되고 싶었소.”
“왜요? 인간이 뭐라고…… 인간이면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인간으로 태어났고, 인간답게 죽고 싶기 때문이오.”
“영생하면서 평화롭게 살잖아요. 나에게는 생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인데…….”
-p.162
성요셉 작가는 『조용한 흡혈마을』을 통해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꾸준히 우리 곁에 있어왔다. 인간의 간을 먹는 구미호나 쑥과 마늘로 민족을 일으킨 ‘단군신화’의 곰, 프랑켄슈타인과 피노키오는 왜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이길래 영생의 존재들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정작 인간은 신의 자리를 탐내는 것일까? 이 아이러니한 질문을 마음에 새기며 흡혈귀들과 남매의 사활을 건 투쟁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일 것이다.
[ON 시리즈]
오리지널(Original) 네오픽션(Neofiction) 시리즈 ‘ON’에서는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소설을 소개합니다.
성요셉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드라마 보조작가와 전시기획작가를 하며 오랜 시간 습작을 했다. 드라마·동화·시나리오·웹툰 스토리 공모전에 여러 차례 당선되었고, 드라마 삽입곡을 작사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에 도전하고 있다. 『핼러윈 마을에 캐럴이 울리면』으로 2023년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대상을 수상했다.
프롤로그
인간이 되는 신약
자귀도에 숨겨진 보물
인간 VS 흡혈귀
귀신의 발자국
130년 전 흡혈귀의 난
호러 동호회의 난입
흡혈귀를 죽이는 담피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 안달입니다. 구미호는 인간 100명의 비릿한 간을 꾹 참고 먹었고 곰은 마늘과 쑥으로 민족을 일으켰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매력적인가 봅니다. ‘왜들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걸까? 정작 인간인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인간이 되고 싶은 흡혈귀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삶이 행복한 인생이길 소망합니다.
책 속으로
작업실은 화초도를 수놓은 병풍부터 가구까지 전부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옥빛 한복에 상투까지 단정하게 틀어 올린 젊은 보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몇몇의 가전제품만이 130년 시간의 격차를 보여줄 뿐이었다.
_「프롤로그」 중에서
“동물 피는 이 잔이 마지막입니다. 왜냐! 우리 몸엔 곧 인간의 피가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섬사람들은 환호의 손뼉을 치고 잔에 든 피를 꿀떡꿀떡 삼켰다. 입술에 묻은 붉은 피가 달빛에 비쳐 괴이하게 빛났다. 한참 먹고 마시며 즐기던 개똥아비가 눈치 없이 흥을 깼다.
“저번처럼 병질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칠봉이 여유 있게 돼지 피를 쭉 들이켜고, 입가에 묻은 피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대꾸했다.
“이번엔 확실해요. 감이 좋아.”
“그러니까 더 불안하네…….”
개똥아비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_「인간이 되는 신약」 중에서
“집까지 내줬는데 그냥 나가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개똥아비가 송곳니를 씩 드러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 뭐, 우린 흡혈귀다 하고 겁줘? 신문에 날 일이지.”
“괜히 억지로 쫓아냈다가 탈이라도 나면 조선이 시끄러워질 게 뻔해요.”
황 대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하인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방도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마을 어른으로서, 양반으로서 참으로 무기력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갑자기 칠봉아비가 손으로 허벅지를 탁 내리쳤다.
“스스로 나가게 만듭시다.”
그 말에 솔깃해진 황 대감이 칠봉아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방책이 있는가?”
모두의 시선이 칠봉아비에게 모여들었다. 칠봉아비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애들이 절대 못하는 게 있죠. 개고생.”
_「인간 VS 흡혈귀」 중에서
“이 섬 규칙을 알려드리겠소. 첫째, 피를 흘리면 빨리 지혈할 것. 둘째, 흘린 피는 바로 깨끗하게 닦고 닦아낸 것은 가져갈 것. 셋째,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 것.”
동호인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자 전염되듯이 여기저기서 발쪽발쪽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의 건방진 태도가 못마땅한 칠봉아비가 성내듯 소리쳤다.
“다들 알아들으셨소?”
동호인들은 네, 하며 크게 합창했다. 드라큘라 코스프레를 한 젊은 남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 있는데요.”
“뭐요?”
“흡혈귀도 똥오줌 싸나요? 여기 화장실이 없던데?”
칠봉아비가 입술을 꽉 물었다. 황 대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발길을 무겁게 돌렸다.
“똥 싼 것도 싸가지고 가쇼! 별…….”
_「호러 동호회의 난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