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우리의 삶에는 이야기가 있다
선으로 삶을 잇는 인스타툰 작가들의 온앤오프!
자신만의 선과 글로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여 독자와 활발하게 소통하고, 만화 단행본까지 출간하는 요즘 인스타툰 작가들.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돌보며, 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낼까?
동글동글한 그림체로 삶의 순간을 소중한 한 조각으로 만드는 시선을 공유하는 김그래, 무명의 천을 사이에 두고 짧지만 깊은 단상을 담담한 문체로 전하는 쑥, 『탈코 일기』를 비롯해 여성의 현실적인 삶을 통쾌한 목소리로 그려내는 작가1, 일상에서 나누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 따뜻한 의미를 발견해 그것을 연필 선으로 담아내는 펀자이씨(엄유진)까지. 네 명의 작가가 그림 밖으로 나와 풀어준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책에는 그간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기까지의 노력이 담겨 있다.
네 작가의 일상을 온(ON)과 오프(OFF)로 나누어 짧은 만화와 함께 수록했다. 일과 삶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아가는 네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 삶에서 ‘일’이 어떠한 존재인지 돌아보도록 한다. 네 사람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글과 그림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 지은이
김그래
따끈한 밥처럼 지은 만화가 누군가에게 다정한 온기로 가닿길 희망하며, 할머니가 되어서도 쓰고 그리고 싶다. 일하지 않을 때는 반려견 또미, 마루와 느긋하게 천변을 걷는다. 『엄마만의 방』 등을 쓰고 그렸다.
인스타그램 @gimgre
쑥
허름한 마음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를 가진 창작자가 되고 싶다. 일하지 않을 때는 주로 술과 함께 있는다.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 등을 쓰고 그렸다.
인스타그램 @ssuk_essay_toon
작가1
항상 여유롭게 베풀 줄 아는 부드러운 작가가 되고자 한다.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는다. 일이 없을 때는 반려견 샐리와 함께 있는다. 『엄마가 대학에 입학했다』 등을 쓰고 그렸다.
인스타그램 @offthe_0931
펀자이씨(엄유진)
살면서 늘 길을 잃는다. 길 잃었던 흔적들이 연결되어 언젠가 그럴듯한 지도가 되기를 바라며 방황과 웃음을 기록한다. 일하지 않을 땐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그 곁을 지키는 아빠에게 수시로 달려간다.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등을 쓰고 그렸다.
인스타그램 @punj_toon
■■■ 차례
들어가며
쑥: 무명의 천을 사이에 두고
ON
제법 미지근한 시작
이토록 충만한 만남
글과 그림을 찾아 뚜벅뚜벅
OFF
이름만 건강한 쑥의 야매 관리법
A∪B∪C∪D
걷고 달리고 읽고 눕는 인생
김그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ON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돈이라는 난제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OFF
무용한 취미를 가지는 일
요리왕으로 거듭나다
사랑의 이름은 복슬복슬한 털뭉치
펀자이씨: 연필 선을 따라 걷다
ON
빈 종이 앞에서
독자와 함께 춤을
고마움이 다니는 길
OFF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태양왕
빵은 빵이고 꿈은 꿈이지
지워질 잠깐의 흔적
작가1: 내가 인스타툰 작가라니
ON
빛나는 도화지를 찾아서
여기 다 그렇게 살아요
일상툰 속 엄마가 불러온 나비효과
OFF
나를 돌보기 위한 운동 연대기
나와 기린 사이에서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나가며
■■■ 책 속에서
그려낸 세계가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현실로 돌아올 때 구체적인 기쁨을 느낀다. 글과 그림은 대체로 모호하고 슬픈 마음일 때 지어지고 그려지지만, 이를 세상에 내비친 후 결이 비슷한 이들과 온기를 나누는 일은 온전히 기쁘다.
그들은 내가 이런 기억들로 오래오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글썽이는 눈빛, 다정한 응원, 뚝딱거려도 사랑스럽던 행동들. 그들에게 받아온, 꺼지지 않는 빛은 언제나 내 마음을 비추고 있다. 아마 평생을 비추겠지.
_39쪽
세상에는 많은 저주가 있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영원한 잠에 빠진다거나 왕자가 야수로 변한다는 등의 저 주. 내가 걸린 저주는 ‘취미를 업으로 만드는 저주’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미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디자이 너가 되어 창작과 닮은 듯하지만 사실 거리가 먼 일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취미를 일로 만드는 과정에서 번번이 좌절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어야 할 때의 부담감은
엄청났다. 세상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금손이 많다고? 아, 큰일 났다. 그러면 또 다시 자기 불신과 자기혐오의 굴레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이런 마음을 마주하면 처음 글과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던 이유를 잊지 않으며 쓰고 그릴 뿐이다.
_69~70쪽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돈 버는 자아와 작업자로서의 자아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일인 것 같다. 외주 작업 폴더에 비해 듬성듬성한 개인 작업 폴더를 볼 때면 돈 버는 일만큼이나 내 개인 작업을 하는 시간도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일을 오래 하려면 양질의 내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앞으로 나이가 드는 동안 변화한 것, 깨달은 것, 새로 느낀 감정이나 우연히 발견한 다정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화의 형태로 잘 기록하며 살고 싶다. 불안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기록하기를, 잊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해낼 수 있기를.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내게 기대어 만화를 열심히 그려보기로 하고 다시 펜을 쥔다.
_107~108쪽
실패한 인간관계 때문에 낙심했을 때도, 해야 할 마감이 산처럼 쌓여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도, 세상에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워지던 날에도 그 둘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개를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개의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얼마나 단일한지, 내가 구리고 지질하고 심지어 치사할 때도 개가 주는 사랑이 얼마나 변함없는지 말이다.
_146쪽
심란한 일은 각색과 연출의 힘을 빌려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수 있었고, 사소한 일을 서로 다른 몇 가지 사건과 연결하는 것으로 특별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공감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고, 나 자신이 실제의 나보다 재미있고 씩씩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 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해도 이야기는 내가 끌어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내 삶의 장르가 시트콤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거나 힘든 일도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재료로 여겨졌다. 현실에서는 마무리되지 않은 일도 이야기로 만들면 결말을 지어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틈틈이 이야기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은 소소하지만 매일 찾아오는 확실한 즐거움이었다.
159~160쪽
결혼 후 십이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파콘은 한국 중소기업 ‘파 과장’을 거쳐 버젓한 엔 지니어가 되었다. 잠시 꿈을 접고 파콘의 매니저 역할과 육아에 집중하던 나는, 꿈을 접었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짬짬이 이어가던 그림 놀이를 통해 꿈을 이루었다. 우리 사이에 태어난 걸 스스로 뿌듯해하는 귀여운 딸아이도 자라고 있다.
어떻게든 굴러가면 이야기는 계속된다. 십이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젊은 파콘과 유진에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좀 더 즐겨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이야말로 우리의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_200~201쪽
엄마가 자신이 등장하는 인스타툰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생각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독자들의 댓글을 모두 훑어본 엄마가 정말 그 툰에 나오는 호랭이 엄마처럼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엄마는 전보다 말을 신중히 골라서 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편견 어린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중년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배움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주변 지인들을 배움의 세계로 이끌었다. 엄마의 주변은 어느새 배우는 중년들로 북적거렸고,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엄마는 더 높고 멋진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_259~260쪽
예술인은 가난하다. 이 말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 말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상업 미술을 하니 나름대로 방법을 찾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인은 가난하다는 선입견 밖으로 훌쩍 뛰어나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팔이피플이라 말하겠지만, 인스타툰 작가가 돈을 벌려면 광고밖에는 답이 없으므로, 나는 뛰어나가길 선택했다.
_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