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그날 휴대폰만 제대로 찾아갔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6권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이 출간되었다.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은 14년 차 교사인 작가 조영미의 신작 장편소설로, 하루아침에 학폭 가해자가 되어 버린 주인공 장연우가 인성 교육을 받기 위해 간 복지관에서 수수께끼의 일기장을 발견해 시작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사소한 이유로도 타인을 안 좋게 판단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쉽게 싫어할 수 있는 만큼, 반대로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감사하다’는 말로 끝맺는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의 따뜻함에 주목하길 바란다. 일기장의 주인이 남긴 반짝이고 희망찬 말들을 연우와 함께 조용히 입으로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주변에 놓인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을 테니.
■■■ 지은이
조영미
14년 차 선생님으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올바로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아 국립국어원 「새말 모임」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80년대생을 위한 『샤를로테의 고백』이라는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앞으로 더 따뜻하고 다정한 말과 글로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을 토닥여 주고 싶다. 청소년 소설로 『열다섯 우리, 작은 연대도 소중해』 『수상한 가족♡행복을 부탁해』가 있다.
■■■ 차례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세 시가 되기 전에 주문을 마쳐야 하는데, 지금 몇 분쯤 되었을까. 연우는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익숙한 물건이 만져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연우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짜증 섞인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_8쪽
“연우짱, 이건 레알 박향기 냄새다.”
“이름을 잘못 지었다에 한 표. 향기가 아니라 냄새였어야 한다. 인정?”
“노 인정. 악취였어야 한다. 인정?”
연우와 해리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서은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둘은 멈추지 않고 향기 험담을 이어 가며 깔깔 웃었다.
_12쪽
“너도 다 알잖아. 친구 욕하고 다니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 휴대폰 사 줄 때 엄마가 분명히 얘기했지! 내가 널 믿은 게 잘못이었니? 너 진짜 이제 어떡할 거야! 내 딸이 학폭 가해자라니 어떡할 거야! 생기부에도 다 남을 건데 어떡할 거냐고!”
엄마 말을 듣다 보니 이제야 비로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현실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_36쪽
방으로 들어간 연우는 가방을 열었다. 급하게 챙겨 온 노트가 손에 잡혔다. 꺼내 보니 연우의 것이 아니었다. 여자 캐릭터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표지의 그림에서 묘하게 옛날 느낌이 났다.
_50쪽
서은이는 어쩌다가 향기와 친해진 걸까. 향기와 친해진다는 건 나와 멀어질 각오를 했다는 말인데. 내가 서은이를 서운하게 한 적이 있었나.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또 이렇게, 그것도 향기 때문에, 친구가 한 명 떠나간다니……. 속상하고 막막한 심정이었다.
_78쪽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정수 오빠를 떠올려 보려는데 자꾸만 하준이 생각났다.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허공에 한가득 떠오른 하준의 얼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논리로 이런 결론을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새 연우의 머릿속에는 얼른 하준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해졌다. 더 늦으면 기회가 없을 테니까. 청량리 시계탑 앞에서 정수 오빠를 만나기 위해 박수를 친 너구리 눈처럼 용기를 내 보면 어떨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너구리 눈도 해내지 않았는가.
_107쪽
서은, 해리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향기에 대한 뒷담화를 주도한 건 언제나 연우였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해리는 동조해 주었고, 서은은 어떤 말을 했더라……. 연우는 침대에 누워 눈을 끔뻑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름이라도 말하지 말든가.”
언젠가 서은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향기에 대한 뒷담화를 셋이 같이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향기를 험담하는 서은의 목소리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연우는 괴로운 듯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_146쪽
정작 따지고 보면, 요즘 혼자 다니는 건 다름 아닌 연우였다. 해리와 멀어지고 벌써 몇 주가 지났다. 해리와도 서은과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다.
해리는 요즘 서은과 급식실에 같이 다니는 것 같았다. 향기는 고정된 밥 친구가 없어서인지 서은, 해리와 같이 가는 날도 있었고 아닌 날도 있었다. 연우는 그런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주로 도서실에 가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며 쓸쓸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_179쪽
연우는 삐걱거리는 계단을 망설임 없이 올라갔다.
‘제발, 그 자리에 있어 줘.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 줘.’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망설임 없이 미아와 늘 앉던 기둥 뒷자리로 향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일기를 쓰던 사람이…….’
_195쪽
“그 말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 미안해. 네 말 안 믿어 줘서.”
“괜찮아.”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세 글자를 내뱉어 버리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털털하고 화끈하게 사과를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_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