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더위를 물리쳐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공격이 시작된다!
“이봐, 친구들. 세상은 이미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금이야말로 구원자가 탄생할 때야.
나란히 힘을 합쳐 킹덤을 부수고 순정을 되찾자고. 준비됐지?”
강렬한 햇볕에 온몸이 녹아내릴 듯한 이 여름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턱대고 귀여운 이야기가 당도했다. 〈네온사인〉 시리즈 아홉 번째 책으로 출간되는 『여름 붕어빵』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의 세계 ‘킹덤’과 그에 맞서는 무능력자들의 달짝지근한 ‘반란’을 보여준다. 제2회 문윤성SF문학상 단편 부문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육선민 작가는 전례 없는 참신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고된 현실에 지친 독자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고소한 반죽을 주무르듯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콤팩트한 책, 『여름 붕어빵』. 과연 이 책이 독자에게 선보일 마법의 능력은 무엇일까!
무한한 사랑과 들끓는 열정에 비해
쓸데없고 보잘것없는 무능력의 비애
“너 얼굴도 좀 팥색이야.”
“나 이러다가 팥 되는 거 아니야?”
“헉, 너 팥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해가 뜨면 어김없이 밤이 찾아오고 여름이 지나가면 겨울이 오듯, 유토피아의 반대편에는 늘 디스토피아가 공존한다. 그리고 멋들어진 총공격을 쏟아부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있다면, 능력이 없는 것보다도 못한 무능력자가 존재한다. 발현병을 앓고 나면 초능력을 갖게 되는 이 세상에서 어느 날, 주인공 ‘세라’에게도 발현병 증상이 하나둘 나타난다. 열이 끓어오르고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세라가 웃을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면 몸이 망가지고 온도조절기가 자주 터지는 ‘야보’와 자신의 무능력함을 비관해 사라져버린 ‘염’을 되찾아올 수 있으니까. 사계절을 빼앗고 인간다운 삶마저 앗아간 이 지난한 세상을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세라와 염, 야보가 사는 세상은 초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킹덤’과 비능력자, 무능력자 그리고 볼품없는 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군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킹덤은 모든 군락에 관리자를 파견해 ‘바깥’을 감시하고 관리하게 했다. 그들이 군락을 통제하는 이유도 단 하나, 역시 구원자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다만, 구원자가 등장해 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곧 킹덤의 몰락을 가리켰으므로, 킹덤은 구원자의 낌새가 보이는 모든 능력자들을 처단해왔다. 킹덤의 파견자인 ‘대장’이 겨울을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야보를 짓밟은 것도, ‘그날’ 무능력자인 염이 야보를 지키지 못하고 비능력자인 세라가 대장을 말리지 못한 것도, ‘그날’ 이후 상심한 염이 군락을 떠나고 세라가 홀로 야보를 돌봐야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세라는 생각했다. 아무도 갖지 못했던 검붉은빛의 눈동자 변이와 손끝에서 느껴지는 강한 전류,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발현병은 구원자의 탄생을 뜻하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순간이동 능력이나 공중 부양, 시간 설계 같은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될 거라고, 지금이야말로 구원자가 등장할 때라고 말이다. 그렇게 구원자가 되어 야보의 상처를 치유하고 염을 불러와 세상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엥? 세라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제 능력을 부인해야 한다는 현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세라의 능력은 한마디로 보잘것없는,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도 지킬 수 없는…… 고작 붕어빵 만들기였으니까!
구원자에게 명령한다!
가족을, 친구를, 군락을 지키고 싶다면
절대로 이 세상을 구하려 하지 마라!
“나도 킹덤에 데려가.”
“그럴 순 없어. 넌 할 수 없어.”
“왜?”
“너는…… 붕어빵이니까.”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세라는 방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다. 세라는 한때 염과 야보와 같은 꿈을 꾸었다. 구원자가 되는 꿈.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뒤엎고, 능력의 빈부로 벌어지는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고, 능력이 없어서 외면당했던 아픔을 대물려 주지 않는 구원자가 되는 꿈을 말이다. 그런데 기껏 얻은 능력이 맛 좋은 붕어빵이라니. 그리고 이 능력을 본 야보가 건넨 첫 마디가 구원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말이라니. 세라의 능력이 쓸데없고 세상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대장과 킹덤의 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야보는 세라의 귀엽기만 한 능력을 반가워한 것이겠지만, 세라는 모든 희망과 꿈을 가장 믿었던 야보에게 짓밟힌 기분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염이 돌아왔다. 세라가 제 능력의 하찮음을 목격한 바로 그때 너무나 강해져버린 염이 돌아오고 만 것이다. 세라는 대장의 주먹 한 방에 힘없이 날아갔던 염이 이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순간이동을 하고 폐성당을 부수고 킹덤의 파견자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세라는 염의 능력이 누군가를 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그들이 바랐던 구원이 아니었으니까. 염은 대장을 무릎 꿇리고서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킹덤으로 떠났다. 야보를 다치게 하고 세라를 아프게 했던, 킹덤을 부수기 위해서.
염이 떠나고 남겨진 세라는 또다시 깊은 절망에 휩싸인다. 붕어빵 만들기 능력으로는 염을 도울 수도, 야보를 보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고작 붕어빵이라 킹덤에 함께 갈 수 없다던 염의 말을 되뇌는 그때…… 저 멀리서 킹덤의 군단이 군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감히 킹덤에 대적하려 한 군락을 파괴하고 처단하기 위해서. 결국 세라는 결심한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붕어빵 만들기로 세상을 한번 구해보겠다고 말이다. 과연, 세라와 염 그리고 야보는 힘을 합쳐 킹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뚫고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 지은이
육선민
199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22년 「사어들의 세계」로 제2회 문윤성SF문학상 단편 부문 가작을 수상했다.
중편소설 『비에』를 펴냈고, 소설집 『림: 쿠쉬룩』에 참여했다.
■■■ 차례
붕어빵
순간이동
보사의 눈
킹덤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지독하게 보잘것없을 수도 있다고? 세라는 확신했다. 지금이야말로 구원자가 나타날 때라고. 내가 바로 온 세상의 비능력자와 무능력자가 기다리는 구원자일 거라고. 세상의 흐름을 원래대로 되돌릴 구원자일 거라고. (14쪽)
염은 몰랐을 것이다. 염은 무능력자라 그런 다짐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비능력자인 세라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는 걸. 애초에 힘이 없었으니 희망을 가질 건더기조차 없었다. (24쪽)
그게 순정이야. 그런 말도 있잖아,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어떤 기교도 결국 질리기 마련이야. 아무리 다른 빙수가 잘나가도 결국은 다들 팥빙수로 돌아온다고. 모든 게 변해도 결국 원래대로 돌아오기 마련이지. 네가 삶는 팥이 이 여름의 유일한 구원자야. (27쪽)
그건 우리 세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 같았다. 무능력자든 비능력자든 모든 능력을 떠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로 영원할 거라고. 서로가 서로의 여름을 나기 위한 구원이라고. (27쪽)
소문은 빨랐다. 낮말이 소식을 실어 나른 게 분명했다. 낮말이 아니라면 그의 동생인 밤말. 그도 아니라면 토끼. 셋 다 귀가 밝았다. 대장이 군락의 모든 소식을 꿰고 있는 것도 이 셋의 공이 컸다. (43쪽)
뭐가 괜찮다는 거야? 붕어빵이? 이게 정말 괜찮다고? 나는 고작 붕어빵이나 만든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뭐가 괜찮다는 거야? 고작 붕어빵이라고! 이딴 붕어빵으로 뭘 할 수 있는데! (66쪽)
아무리 대단한 순간이동이라도 전투에 효율적인 능력은 아니니 아무래도 조력자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래, 그 군락에 가족같이 지내던 능력자가 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구원자의 낌새가 있었다고. 하나는 온도조절기 그리고 하나는 붕어빵. 엥, 붕어빵? (76쪽)
염, 너는 불이 어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니? 바람이 불어 소화되는 것도 아니고 물을 맞아 전소되는 것도 아니고. 얼음 안에 갇혀버리는 광경을 본 적 있니? (82쪽)
그 능력을 가지고 킹덤으로 꼭 가려는 이유가 뭐야? 거기에 순간이동이 있대도, 사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순간이동에게 붕어빵 먹이기? (143쪽)
그렇게 묻는 세라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계속해서 킹덤을 파괴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염에게는 맹목적인 목적만이 남아 있었다. 이유도 잃은 채. (179쪽)
미쳤다. 단단히 미친 거다. 증폭된 힘이 ‘아무것도 없는데 붕어빵을 만들 수 있게 됨’ 따위라니. (188쪽)
염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넝쿨에 걸려들었다. 넝쿨은 염의 몸에서 자라나듯 줄기를 뻗어 염을 마구 감쌌다. 위험했다. 세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러자 염을 둘러싸고 있던 넝쿨 줄기는 밀가루 반죽이, 잎사귀들은 붕어빵이 되어 힘없이 떨어졌다. (191쪽)
붕어빵이 터지며 온몸에 팥을 뒤집어쓴 염은 그 힘으로 더 빠르게 킹덤을 헤집어댔다. 킹덤은 붕어빵의 열기로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바깥 여름에 비하면 이 정도 더위는 염과 세라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오랜 시간 킹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냈던 능력자들에겐 치명적이었다. (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