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깜깜한 밤거리를 밝히는 유일한 빛
마음을 살피는 심심포차에 어서 오세요!
〈on〉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으로 홍선주 작가의 『심심포차 심심 사건』이 출간되었다. 2020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홍선주 작가는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흡인력 있는 서사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눈앞에 그려지는 맛깔난 음식 묘사와 인물들이 풀어놓는 사건 내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심심포차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연어알 올라간 온천계란, 먹어본 적 없어요?”
출출한 새벽, 심심포차의 문이 열리면 사건 수첩이 펼쳐진다!
자신을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라고 칭하는 주인공 찬휘는 홍채이색증, 즉 양 눈의 색이 다른 오드아이를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이 탓에 어릴 적 보육원에서부터 괴물이라 불리는 등의 집단 괴롭힘을 당한 그는 ‘분명 징그러운 눈동자색 때문에 부모도 나를 버렸을 것’이라 생각하며, 깊은 인간관계를 맺거나 특정한 장소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늦은 새벽,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고 골목길을 통해 집으로 향하던 찬휘는 한 남성이 자신의 뒤를 밟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힌 채 달리던 찬휘 앞에 구원처럼 심심포차가 나타난다.
전직 검사 ‘서 프로’가 차린 가게인 심심포차에 방문하는 손님은 모두 경찰, 형사나 검찰로, 범죄와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멀리 동떨어져 있어야 하는 직업인들이다. 그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들리듯 심심포차에 와 자신들이 맡았던 흥미로운 사건을 이야기한다. 『심심포차 심심 사건』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추리소설이 대게 하나의 사건을 두고 첨예한 서술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인물의 입을 빌려 편안한 구어체로 해결된 여러 사건을 차근차근 풀어내며 흥미를 유발하고, ‘포차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상황적 특색을 이용해 사건 결말을 등장시키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자연스럽게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홍 과장, 어떻게 된 건지 알아냈어? 표정 보니까 아직인 것 같은데?”
홍 과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분한 표정으로 서 프로를 바라보다 다급히 외쳤다.
“힌트, 힌트 주세요!”
“역시, 우리 홍은 도전 정신이 있단 말이지! 황 프로, 힌트 좀 줘라.” (75~76쪽)
“우리 떳떳하게, 행복하게 살자. 난 당신을 믿어.”
마침내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
심심포차를 찾는 다른 이들과 달리 찬휘는 소설에 등장하는 피의자들과 더 밀접하며, 자신이 행하는 일이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윤리적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인물이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자신의 무의미한 삶을 끝내고 싶어 하던 찬휘에게 서 프로는 등대와 같이 길을 밝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을 안배한다.
살필 심(審)에 마음 심(心)을 사용한 심심포차는 문을 닫는 마지막 날까지 인간관계를 단절한 이에게 손을 내민다. 방황이 방황인 줄 모르고, 외로움을 외로움이라 느낄 줄 몰랐던 인물이 마침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단순한 카타르시스를 위한 권선징악이 아닌 치유와 정신적 성장을 위한 ‘책임’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ON 시리즈
오리지널(Original) 네오픽션(Neofiction) 시리즈 〈ON〉에서는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소설을 소개합니다.
■■■ 지은이
홍선주
2020년 「G선상의 아리아」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했고, 2022년 「인투 더 디퍼 월드」로 고즈넉 메타버스 공모전에 당선했다. 장편소설 『심심포차 심심 사건』 『나는 연쇄살인자와 결혼했다』, 단편소설 「푸른 수염의 방」 「자라지 않는 아이」 등을 발표했다. 세상의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는 미스터리에 기반을 둔다고 믿고 ‘어떻게?’보다는 ‘왜?’를 좇으며, 기억이 인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우연과 운명의 드라마로 풀어내고 있다.
■■■ 차례
첫 번째 날. 그 여자의 비밀
두 번째 날. 미래를 보는 것, 사기와 믿음의 경계
세 번째 날. 평화롭지 않은 중고나라
네 번째 날.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여자
다섯 번째 날. 가로등 CCTV의 진실
마지막 날. 심심포차여, 안녕
에필로그
작가의 말
■■■ 작가의 말
저는 ‘기억(경험)’과 ‘우연(운명)’이 우리의 삶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성격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우연들이 운명처럼 인생을 완성한다고요.
우연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기억은 경험으로 덧씌우는 게 가능합니다.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물로 씻듯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경험으로 조금이나마 상쇄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 책 속으로
그 기억이 중첩되자 현기증이 나면서 숨을 들이쉬는 것마저 힘들었다. 얼굴을 감싼 머플러를 허겁지겁 풀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했다. 이 상황에서, 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누가, 누가 나를 이 악몽에서 빼내줘요, 제발!
그 순간 막 다다른 길모퉁이에서 내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점점 밝아지는 불빛 하나를 발견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입간판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_11~12쪽
“휴학했다면서? 그러면 학적 기록이 빈 거야 당연…….”
“학교에서의 기록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기기 마련인 당연한 기록마저 없으니 이상한 겁니다. 휴학은 학교와 관련된 것일 뿐, 일본에서 2년 동안 살면서 먹고 마시고 무언가를 사고 썼겠죠. 그런데 정말 기본적인 고정비용, 그러니까 월세라든가 인터넷 비용,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이 자동이체 된 것을 제외하고는 돈을 쓴 기록이 없었습니다. 전혀 _32쪽
“네, 맛있어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답했다. 어묵은 그래도 다른 음식에 비해 익숙한 음식인데도 서 프로의 어묵탕은 어딘지 모르게 다른 맛이 나서 매력적이었다. 쑥갓 향이 포인트였다. 국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 당겼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해지는 것과 같았다. 어묵도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려서 숟가락으로 국물과 번갈아 떠먹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불러왔다 _93쪽
아직도 기억이 나요. 친구가 사건의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후 제게 찾아왔던 날이요. 학원에서 야간 수업을 듣고 반지하 자취방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에 이 친구가 퀭한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앉아 있었어요.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에, 세상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으로. 제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친구는 그대로 무너져버렸어요. 터져버릴 것 같은 답답함을 울음으로 쏟아내며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있었어요. 전 그저 친구가 편히 울 수 있도록 다독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_127쪽
그대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뛰는지 방향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심심포차에서 멀어지기 위해, 내가 속하고 싶었던 그곳에서 멀어지기 위해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괴물이다, 괴물을 잡자. 우다다다.
아이들이 맞았다. 나는 괴물이었다. 괴물이 되어 있었다. _139쪽
“하지만 가로등 CCTV에 피해자에게 인사하는 부인과 아이가…….”
답답한 마음에 결국 조 순경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그런데 내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서 프로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그래, 그거! 나도 그게 이해가 안 돼서 너무 궁금하다니까!”
서 프로는 두 손이 양념 범벅이 된 채 여전히 치킨을 먹으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_164쪽
서 프로가 바로 메인 요리를 내왔다. 양갈비구이라고 했다. 역시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조금 전부터 고소한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웠는데 이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이들은 익숙한 메뉴인지 큼직한 갈빗대가 붙은 음식이 등장하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서 프로는 혹시나 양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준비했다며 소고기 스테이크도 내왔지만, 모두 고소한 향으로 강하게 유혹하는 양갈비를 선택했다. _191~192쪽
나는 서 프로가 문가에서 지켜보며 기다리겠다는 의미의 굳건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심심포차를 나서던 언제나처럼,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_203~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