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YA!> 시리즈 열여섯 번째 책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가 출간되었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달영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작가는 자신의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소설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SF 세계를 그린다. 과학적 이론을 밑바탕으로 하여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은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의 눈앞에 살아 움직인다.
여섯 개의 SF 단편과 작품마다 과학 해설이 결합한 독특한 구성의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는 작가 스스로도 ‘SF와 과학 교양의 결합’이라고 부를 정도로 차별성이 도드라진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우주선, 거울 반전된 인간 등 각 단편에 등장하는 생소한 소재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뒤이어 등장하는 상상을 뒷받침하는 과학 이론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계속되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언젠가 작품 속의 이야기가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작품을 읽는다면 그 재미는 배가될 것이다.
■■■ 책 내용
과학이라는 낯선 우주에서 펼쳐지는
여섯 개의 예측 불가한 이야기
하나의 소설을 읽고 나서, 이야기 속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을 때가 있다. 특히 우리를 둘러싼 현실과 모습이 다르다면 더더욱 그렇다. SF에 등장하는 낯선 존재 혹은 우리가 아직 접하지 못한 첨단 과학 등 새로운 세계에서 궁금증은 극대화된다.
현직 물리학 교수가 전하는 여섯 개의 신비로운 이야기는 SF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처음 접하는 소재로 흥미를 유발하고,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를 선보인다. 그리고 그 세계가 마치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가 단순 공상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각 소설에 대한 해설에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재와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과학 이론을 작가가 과학자의 관점에서 상세히 풀어놓기 때문이다. 해설의 도움으로 소설 속 세계는 나름의 근거를 얻고, 독자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되며, 소설은 현실에 부쩍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떠납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러.”
과학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세계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첫 번째 단편인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에서 주인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반중력’ 기술을 개발한다. 주인공은 세계의 부자가 되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고 반중력 물질을 이용해 블랙홀 여행을 떠난다. 시한부 판정을 받아 누구보다 짧은 삶이 허락된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블랙홀의 중력권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덕분에 누구보다 오랫동안 우주를 관찰하며 생을 마감한다.
「거울 나라에서 온 바이러스」는 거울로 비친 것처럼 대상을 좌우 대칭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미래를 그린다. 그러나 이 기술로 인한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하여 전 지구는 혼란에 빠지고, 편광 렌즈가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한다는 잘못된 정보로 편광 선글라스가 유행을 탄다. 사람들은 아직 바이러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와중에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리면서 새로운 만남을 가진다.
「마호메트의 관(棺)」은 북한의 스파이인 주인공이 대한민국 정보부에 잡히며 가족을 인질로 이슬람의 성지, 모스크 사원의 마호메트 관의 일부를 떼 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마호메트 관은 상온 초전도체였기 때문에 상업적 가치가 매우 높았고, 대한민국은 이 상온 초전도체의 기술을 이용해 상업적인 이익을 취하려 한 것이다. 주인공은 광학 위장을 통해 임무에 성공하고, 이로부터 삼십 년 후, 주인공을 찾아온 기자가 이 사건을 취재한다.
「안락사 병실」은 죄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보고 분개하는 신경과 레지던트 친구와 범죄자의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법조계를 변호하는 로스쿨 다니는 친구의 대화로 시작된다. 이십 년 후, 신경과 레지던트 친구는 뇌 마사지기를 활용해 기존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투입하는 ‘기억이식 투영법’을 개발하여 유명해진다. 그리고 로스쿨을 다니던 친구는 기억이식 투영법을 이용해 중범죄자의 기억을 조작, 새로운 기억으로 교정 후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채택한 법조계의 대변인이 된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주인공은 직렬을 바꿔 교도소장이 되어 중범죄자들 사형을 집행한다. TV에 등장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은 문득 자신의 기억도 조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예술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업」은 전자공학의 발달로 인해 스마트폰의 카메라에게 자리를 뺏긴 사진 예술가가 금전적인 문제로 프로야구 경기에서 ‘사인 스틸링’을 부업으로 삼는 이야기이다.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유지하던 어느 날, 상대 팀의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사인 스틸링에 실패하게 된다. 사실 양자의 정보 전달 체계를 활용한 기술로 뇌에 칩을 심어 서로 사인을 주고받은 덕분에 사인 스틸이 무의미하게 되면서 팀이 패배한 것이고, 더 이상 사인 스틸링이 필요 없어져 주인공은 해고당한다. 다시 전자공학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은 남은 장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구름, 저 하늘 위에」는 살아 있는 구름과의 소통 기술이 개발된 미래. 대통령은 구름과의 대화 중 문득 구름이 과거에 인간에게 미쳤던 영향은 없는지 물어본다. 그렇게 알게 된 과거 장난기 많던 구름의 모습과 그 모습을 신으로 착각한 모세의 이야기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언젠가 일어날 것처럼, 창작된 소재들이 현실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과학 덕분이다. 작품은 여섯 개의 이야기 속에 담긴 상상력을 그저 상상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발전된 과학 기술과 창작된 소재를 구분하기는 하지만,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 둔다. 그런 점에서 작품 속 이야기들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래의 예고편과 같다.
과거에 미래로만 여겨지던 풍경이 현재에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듯, 작품이 전하는 가능성은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현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지은이
김달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40여 편의 SCI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제1회 SF초단편+SF시 공모전’에 입선하면서 SF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작품으로 소설집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와 단편 「거울 나라에서 온 바이러스」(웹진 『HORIZON』, 2020), 「텅 빈 도시」(『매니페스토』, 2023)가 있다.
■■■ 차례
-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
– 블랙홀의 물리학
- 거울 나라에서 온 바이러스
– 대칭성과 왼쪽, 오른쪽
- 마호메트의 관(棺)
– 초전도체와 광학 미채의 물리학
- 안락사 병실
– 기억이식 투영법부터 사막에서 농사짓는 법까지
- 예술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업
– 양자물리학과 렌즈 광학
- 구름, 저 하늘 위에
– SF에 등장하는 상식 밖의 생명체
에필로그 – 사이언스 키드의 생애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저는 지금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죽으러, 다시 말해서 자살하러 가는 길이지만 동시에 영원히 살기 위해 가는 길이기도 하지요.
_11쪽
이제 후회는 없습니다. 인피니티호의 시계로는 불과 몇 달밖에 살지 못했지만 우주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고, 대부분의 사람보다 짧은 수명을 부여받았지만 그 누구보다 수명이 길었으며, 비록 자손을 남기지 못했지만 다른 누구의 자손보다도 오래도록 생존했습니다.
_36쪽
“당신의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몇 달 전 구단 소재지 가까이에 있는 어떤 국립 연구소가 느닷없이 후안에게 이런 제안을 해 왔을 때 그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야구 선수로서 한계에 다다른 이 시점에 뭔가 돌파구를 찾을 기회가 절실하던 참이었다.
_60쪽
“공중에 떠 있는 마호메트의 관에 대한 전설을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준일을 심문했던 요원은 자신을 기술정보 담당관이라고 소개했다. 느닷없이 기술정보라니 준일은 의아해졌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무덤과 기술정보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_117쪽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장운경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환은 뇌파 마사지기에서 머리를 빼고 일어나 간담회장으로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복장 상태를 체크했다. 그리고 소장실의 문을 열려 하다가, 갑자기 아까 안락사 병실에 있던 기억이식 투영 장치와 자신의 사무실에 놓여 있는 뇌파 마사지 장치가 똑같이 미용실의 파마기를 닮았다는 생각이 떠올라 잠시 멈칫했다.
_185쪽
어제 개막전이 나름 중요한 경기이기는 했지만 앞으로 남은 시즌이 창창한데 사인 한 번 잘못 훔쳤다고 나를 해고하다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혹시 나 말고 다른 사인 도둑을 고용하려 하는 것인지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그건 아니고 이제는 너처럼 외야에서 망원렌즈로 포수의 사인을 훔쳐보는 일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야. 너 혹시 양자 얽힘이라고 들어본 적 있니?”
나 같은 예술 전공자가 그런 최신 기술을 알 리 없지 않은가.
_215쪽
처음에 불이 붙는 것을 보고 뒤로 물러났던 양치기는 건조한 떨기나무가 활활 타 버리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신기했는지 다시 나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순간 장난꾸러기 구름에게 늙은 양치기를 재미있게 놀려 먹을 방법이 떠올랐다.
_237쪽
그래도 연구소는 걱정 없다. 늘어난 과학 기술자는 여전히 공급과잉이고 입소 희망자는 줄을 서 있으니까. 그래도 아직 과학 기술자들에게 주는 급료가 아까운지 이 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대학의 공대는 숫자를 두 배로 늘리려 하고 시설은 하나도 갖추지 않은 연구소에 사람만 채워 넣으면서 왜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고 독촉을 한다.
_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