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이라는 말에는 한때의 깊은 신뢰가 전제된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실력 외에 믿을 건 없다.”
테러와 살인의 그림자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한없이 뒤집으며 나아가는 이야기
강지영 장편소설
■■■ 책 소개
“배신이라는 말에는 한때의 깊은 신뢰가 전제된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실력 외에 믿을 건 없다.”
미스터리, 모험,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인 강지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살인자의 쇼핑몰 2』가 자음과모음 새소설 13권으로 출간되었다. 강지영 작가는 흡입력 있고 기발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심여사는 킬러』 『프랑켄슈타인 가족』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하품은 맛있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장르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바 있다. 『살인자의 쇼핑몰 2』는 『살인자의 쇼핑몰』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정진만과 정지안의 이야기로 돌아온 강지영 작가는 더욱 탄탄해지고 짜릿해진 서사 안에서 본격적인 살인 느와르를 펼쳐 보인다.
강지영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살인자의 쇼핑목록』, 장편소설로 『신문물검역소』 『엘자의 하인』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프랑켄슈타인 가족』 『하품은 맛있다』 『페로몬 부티크』 『살인자의 쇼핑몰』 등이 있다.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에 <스틸레토> <마녀 사월> <살인자의 쇼핑목록>을 연재했다.
한겨레교육에서 <슈퍼IP글쓰기>를 강의 중이다.
■■■ 작가의 말
마감을 코앞에 두고 설정이 막혔을 땐, 왜 하고많은 장르 중 킬러들의 세계에 발을 디뎠나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빠져 나오긴 너무 늦었다. 기왕 들어온 무저갱이니 난장을 즐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둠에 눈이 익으면 사위가 구분되듯, 생각을 바꾼 지 한참 지나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살인자의 쇼핑몰 2
작가의 말
더 강력해진 서사, 압도적 서스펜스
수상한 쇼핑몰을 둘러싼 짜릿한 느와르가 돌아왔다!
『살인자의 쇼핑몰』 두 번째 이야기
한국 장르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만한 『살인자의 쇼핑몰』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스터리, 모험,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인 강지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살인자의 쇼핑몰 2』다. 인터넷 쇼핑몰 창고를 기반으로 한, 숨 막히는 약탈 누아르 이후에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 생활에 익숙해진 ‘거래 앱’을 기반으로 한다. 자신의 물건과 재능을 팔던 거래 앱을 이용해 어느 날부터 살인과 테러를 판매하게 된 것이다. 누가 이 앱을 만들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갑자기 게시된 살해 요청 글에 쫓기게 된 ‘나’는 진실과 거짓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이 사건을 촉발시켰는지를 알아내려 한다. 끝없는 의심과 의문 속 잔혹하고 흥미진진한 느와르가 열린다.
테러와 살인의 그림자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한없이 뒤집으며 나아가는 이야기
“화요일 새벽 4시 7분, 다나가 내 침대에서 죽었다.”
『살인자의 쇼핑몰 2』는 새로운 죽음으로 시작한다. 쇼핑몰에서의 치열한 전쟁이 마무리되고 지안은 일상으로 돌아가 대학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자신이 믿어왔던 삶이 온통 뒤바뀌어버린 충격 속에 ‘다나’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그들은 소울메이트처럼 많은 것이 닮았다. “즐겨 듣는 음악, 좋아하는 필기구, 생리와 뿌리 염색 주기, 신발 사이즈, 무신사 등급, 구독 중인 유튜버”까지 겹쳤다. 지안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숨긴 삼촌에 비해 다나는 자신을 모두 꺼내 보이며 지안의 관심을 산다. 그러나 그런 다나조차 지안 앞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친한, 그 이상의 관계였던 친구의 죽음 앞에서 지안은 패닉한다. 그녀는 매일매일 “알람 없이도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다.”
푼돈으로 테러를 주문받는 어설픈 킬러가 넘치는 세상
쇼핑몰을 물려받고 싶지만, 삼촌은 만만치가 않다
다나의 죽음이 준 쇼크로, 지안은 다시 한번 삼촌 정진만에게 돌아간다. 자신이 자취방으로 떠난 이래 자신을 매번 감시해오고 있었는데도, 악몽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의아해서다. 매번 찾아오던 주말이 아닌 평일에 나타난 그녀를 보고 정진만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마침 탱크가 배달 오던 날이었다. 지안은 전쟁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는 쇼핑몰 운영 상황을 지적한다. 쇼핑몰 수입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든 이유는 최근 생겨난 “수스앱” 때문이다. 호시탐탐 정진만을 처리하고자 하는 범죄 단체 ‘바빌론’이 제작한 이 한국인 전용 앱은 “마치 당근마켓처럼 같은 지역 내에 사는 범죄 교사자와 범죄 실행자를 메신저로 연결했다.”
다나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찾기도 전에 지안과 진만의 앞에 김미남이라는 배달부가 나타난다. 평범한 떡집 사장인 줄 알았던 그의 핸드폰에서 수스앱 매칭 알림 소리가 나자 지안은 그가 바빌론이 보낸 킬러라고 오해하여 기절시킨다. 지안은 자신의 육감대로 미남이 킬러라고 주장하지만 진만의 입장은 다르다. 그가 민간인인지 킬러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지안과 진만은 각자의 입장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과연 수스앱을 움직이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다나의 죽음은 과연 단순한 자살이었을까?
“정지안, 21세, 키 162센티미터, 마른 체형…….
주소 서울시 중랑구……. 머더헬프닷컴 정진만의 조카.
모든 실행자 조건 없이 매칭. 현상금 10억.”
지안이 진만의 보호에서 벗어났을 때 수스앱에 지안에 대한 테러를 요청하는 상세정보가 올라온다. 마치 누군가 계획한 것처럼.
“매칭 완료 떴어요. 현재까지 매칭된 실행자가 1087명이에요.”
길거리의 누구도 지안을 노리는 킬러가 된 상황, 지안은 진만과 킬러맵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설픈 킬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죽여야만 한다.
이제 이야기는 꼬여버린 미로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려는 발버둥을 넘어 펼쳐진다. 욕망에 얼룩진 추악한 인물들이 벌이는 살인 게임을 통해 강지영 작가는 사회가 지닌 어둠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돈으로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다고 믿는 암흑의 세계 속에서 생존하고 분투하는 인물들을 통해 스릴 넘치면서도 서늘하게 우리 사회의 단면을 파헤쳐 보여준다.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기억해야 해.
그들은 적의 생명선이 길다는 걸 잊지 않아.
그래서 반드시 몸통에 두 발 그리고 머리에 한 발을 날리지.”
‘살인자의 쇼핑몰’ 시리즈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만과 지안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들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한, 살인을 판매하고 그 그림자 속에서 헤매는 한 이야기는 선과 악의 경계를 한없이 뒤집으며 나아갈 것이다. 강력한 서스펜스 속 속도감 넘치는 전개 그리고 반전을 통해 독자들은 더 넓어진 강지영의 누아르 세계를 체험하며 작가가 펼쳐내고자 한 ‘기왕 들어온 무저갱 속 난장’을 즐기게 될 것이다.
‘새소설’은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 시리즈입니다.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젊고 새로운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날 이후, 나는 알람 없이도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누군가 내 옆에서 긴 숨을 몰아쉬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지면 어김없이 4시였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삼키고 다시 누워도 떠나간 잠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다. 쾌청한 해변에 다나와 내가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12~13쪽)
집 안 곳곳엔 CCTV가 있다. 꼼꼼한 브라더가 이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메시지 진동음이 느껴졌다. 그걸 확인하는 사이 남자가 나를 공격하거나 도망칠지도 몰랐다. 나는 전설의 사나이 정진만의 조카다.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
“매칭이 됐으니 저녁에 바쁘시겠어요?”
나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서 크롬캐스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옌장, 아까 들었나 보네. 저기, 그게 뭐냐면…….” (32쪽)
“김미남이야 진만 씨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근데 우리한텐 더 큰 이슈가 생겼잖아. 진만 씨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 김정본, 찾아온 김에 뭐 하나 묻자. 알렉스가 누구야?”
돌발적인 질문이었다. 알렉스가 누구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내 깜냥으로 해치울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시야가 좁아 미남의 정체에만 골몰했는데, 우리 쇼핑몰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바빌론과 알렉스 김 때문이니, 온 김에 뭐라도 하나 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본이라면 놈의 정체를 알고 있을 법도 했다. 그가 하는 대답을 들으며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59쪽)
“브라더 말이 사실이야? 김정본하고 같이 있냐고? 지안이를 데리고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다.”
삼촌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이어폰이 진동했다.
“너무 뻔한데 몰랐다는 게 더 황당하네요. 진만 씨보다 유능한 정보통은 김정본밖에 없으니 찾아왔어요. 덕분에 알렉스의 본진을 알아낸 것 같아요.”
민혜는 차분하고 반박하기 힘든 논리로 삼촌을 밀어붙였다.
“김정본이야말로 진짜 남파 간첩이잖아. 분명히 함정일 거야. 탈출해. 아니, 제거하는 게 좋겠네.”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적의 적은 동지니까요. 김정본은 알렉스에게 원한이 깊고, 난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에요.” (73쪽)
“바빌론이 왜 정진만한테 집착하는지 알아? 그러니까 네 삼촌 이라크에 용병으로 갔을 때 얘기.”
“아뇨.”
늘 그렇듯 삼촌의 과거를 남에게 듣게 되었다. 파라솔 근처로 젊은 커플이 다가오다, 정본의 데저트 이글을 발견하곤 작게 욕설을 지껄이며 도망쳤다. 얼뜨기 실행자들이었다.
“그 나라 무슨 명절이었다지. 민간인 아이들이 바구니 가득 과자랑 초콜릿을 들고 부대를 찾아왔다더군. 그걸 평화유지군과 용병들에게 나눠주러 다녔는데, 정진만 혼자 느낌이 싸하더래. 인형같이 예쁜 여자애가 정진만한테 다가왔을 때, 폭발음이 들렸대.”
삼촌은 PMC라는 민간 군사 기업의 용병이었다. 그리고 그가 주둔한 이라크의 한 캠프에 열두 명의 꼬마들이 일명 자살 조끼라고 불리는 폭탄을 두르고 나타났다. 꼬마들의 임무는 웃음으로 군인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유선 기폭 장치를 누르는 일이었다. 그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쉬라뿐이었다. (116~117쪽)
나는 눈 뜬 채 다시 꿈을 꿨다. 늘 그랬듯 쾌청한 해변이었고, 다나는 내 새김칼로 석류를 까고 있었다.
“난처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다나의 티셔츠 앞섶에 선홍색 과즙이 피처럼 떨어졌다.
“우리 사이에 진실이 있긴 했어?” (130쪽)
“잘 들어, 정지안.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기억해야 해. 그들은 적의 생명선이 길다는 걸 잊지 않아. 그래서 반드시 몸통에 두 발 그리고 머리에 한 발을 날리지. 그걸 우린 모잠비크 그릴이라고 불러. 사실 용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앤 공주의 장미 정원이든 알렉산드라의 편의점이든…… 뭐든 상관없어. 그저 습관이 돼야 할 뿐이야.” (183~184쪽)
배신이라는 말에는 한때의 깊은 신뢰가 전제된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실력 외에 믿을 건 없었다. 모두가 붉고도 푸르렀고, 퍼플코드의 일원이었다.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