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운명을 조작할 수 있는 앱 〈부굴의 눈〉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욕망을 시험하다
여기,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앱이 있다. 〈부굴의 눈〉에 가입하고 앱을 실행한 채 잠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주구(呪具)를 마주하게 된다. 미래, 복수, 방어, 침범, 회복. 미래를 보고 싶다면 ‘미래’를,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복수’를, 공격을 방어하고 싶다면 ‘방어’를, 누군가의 미래에 개입하여 자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침범’을, 현재의 상태를 과거의 것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회복’을 선택하면 된다. 무엇을 선택하든 사용자의 자유에 달려 있다. 물론 이것들은 공짜가 아니다. 일정한 값을 내고 구매한 뒤에는 잠들기 직전, 인공지능 ‘부굴’이 알려주는 힌트를 이용해서 자각몽 속에서 해당 주구를 찾아야 한다. 제한 시간 8분 안에 찾지 못하면 미션은 실패로 돌아간다. 때문에 전 세계의 사용자들은 〈부굴의 눈〉을 이용하는 데 상당한 돈을 쓰고 있었다.
해른은 원래 〈부굴의 눈〉 사용자가 아니었지만 어느 날부터 밤마다 가위에 눌리는 엄마를 위해 회복 주구를 얻기로 결심한다. 〈부굴의 눈〉에 가입하고 잠에 들었는데, 회복 주구를 눈 앞에 두고 침범 주구를 써서 해른의 자각몽으로 침범한 사람에게 주구를 빼앗기고 만다. 침범자가 해당 주구를 사용하기 전까지 해른이 구입할 수 있는 주구는 ‘미래’뿐이다. 결국 해른은 엄마의 상태를 회복하는 데 실패한다.
그런데 해른은 〈부굴의 눈〉을 사용할수록 이상한 섬뜩함에 휩싸인다. 서로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그 공격에 방어하기 위해 늘 방어 주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미래를 볼 수 있다던 미래 주구는 정작 원하는 미래를 보여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미래나 다른 시점의 미래를 보여주기 일쑤였다.
게다가 〈부굴의 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부굴이 저장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해른은 찜찜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자각몽 속으로 침범한 사람의 정체와 엄마가 매일 눌리는 가위의 원인을 알게 되는데…….
여러분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부굴의 눈〉에 가입할 것인가? 네온사인 시리즈 다섯 번째 책 『부굴의 눈』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부굴의 눈〉 사용자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이야기는 몰입감을 더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자각몽의 절대 지배자 ‘부굴’
점차 다가오는 또 다른 어두운 욕망
부굴은 〈부굴의 눈〉의 인공지능이다. 늘 사용자의 곁에서 시스템을 관리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부굴은 원래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조력자의 역할로 먼 곳에서 사용자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해른은 자각몽 속에서 부굴을 본다. 뒤에 감춰져 있던 미지의 존재를.
사방을 둘러보는데 잿빛 안개 뒤로 뭔가 꾸물꾸물 움직였다. 해른은 바짝 긴장했다. 침범자일까? 혹시 그때 그놈이라면? 그렇든 아니든 이번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안개를 뚫고 마침내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른은 일단 잡고 보자는 생각에 달려들다가 멈칫했다. 얼굴이 명확하게 보였다. 10대에서 30대까지 어느 나이로도 가늠할 수 있는 남자였다. 해른이 물었다.
“너 누구야?”
남자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저는 부굴입니다.
남자의 미소가 참 아름다웠다. 해른은 그의 얼굴이 어딘가 그 아이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눈은 시시각각 점멸을 거듭하는 온갖 영롱한 빛들로 가득 찬 부굴의 것이었다.
_P.64~65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해른은 이것이 〈부굴의 눈〉의 버그라고 생각한다. 해른은 부굴과 대화하면서 ‘사용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부굴이 저장한다’는 이용약관에 동의한 대가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닫는다. 부굴이 해른의 지인들까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즉 부굴은 사용자의 기억을 모두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부굴과의 첫 만남 이후 해른은 계속해서 자각몽 속에서 부굴을 마주하게 된다. 부굴은 해른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바로 ‘자신의 주구’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찾으면 해른에게 주겠다며. 부굴의 주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른은 본능적으로 제안을 거부한다.
그날 이후로 해른의 주변에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해른의 가족을 찾아와 “황리의 적송에서 가져온 물건은 어디 있어?” 하고 묻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만 묻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해른은 점점 일이 위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굴이 자신의 주구를 애타게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구를 잃어버린 것이 해른의 가족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해른의 가족이 오랫동안 숨겨놓은 저주가 드러난다. 인간의 욕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짙고 어두운 또 다른 욕망과 함께.
해른은 결심한다. 부굴을 저지하기로.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절대 지배자와 저주받은 가족의 긴장감 넘치는 사투가 시작된다.
오컬트와 SF의 만남
인류의 미래를 향한 섬뜩한 상상력
『404번지 파란 무덤』 『소금 비늘』 『매구를 죽이려고』 등 기묘한 상상의 존재와 현실의 결합을 그려온 조선희 작가가 이번에는 ‘미래’와 ‘인간’에 초점을 맞춰 신비하고 섬뜩한 느낌의 오컬트 SF를 선보였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옛날부터 인류가 예상하던 공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 담긴 산물이다.
그렇기에 『부굴의 눈』의 스토리는 단순히 재미로만 여기기 어렵다. 인류의 오랜 공포와 함께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됨을 꼬집어 깊게 생각하게 한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질 것인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나갈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불나방처럼 알면서도 어둠으로 빠져드는 나약한 존재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자극적이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인간이 가진 욕망을 어떻게 올바르게 이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 네온사인 시리즈
〈네온사인〉은 SF와 미스터리, 판타지 등 감각적인 소설을 빠르고 가볍게 만나는 새로운 신호입니다. MZ세대 독자들에게 밀도 높은 서사, 흡입력 있는 세계를 콤팩트하게 선사합니다. 강렬한 색으로 다양한 빛을 내는 네온사인처럼, 새로운 이야기로 비추는 우리의 신호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 지은이
조선희
장편소설 『고리골』로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전 2권) 『아돈의 열쇠』(전 7권) 『거기, 여우 발자국』 『404번지 파란 무덤』 『루월재운 이야기』(전 2권) 『소금 비늘』 『매구를 죽이려고』, 소설집 『모던 팥쥐전』 『모던 아랑전』 등을 냈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로 2015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 차례
자각몽
주구 공격
곽다할시의 저주
돌멩이 눈알
주구의 물체화
복수의 복수의 복수
너를 죽이는 미래
창조주를 죽인 자
부굴의 주구
에필로그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침범자가 몸을 펴는 순간 해른은 침범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해른은 소리쳤다.
“내 주구 내놔! 이 도둑놈아!”
침범자는 몸을 돌려 용마루를 밟고 순식간에 반대편 지붕 쪽으로 넘어갔다. 기와를 밟고 미끄러지며 침범자는 땅으로 툭 떨어졌다. 해른도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침범자는 뒷산으로 달렸다. 해른은 정신없이 침범자의 뒤를 쫓다가 돌멩이를 주워 온 힘을 다해 던졌다. 운이 좋게 돌멩이가 침범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렸다.
_「자각몽」 중에서
〈부굴의 눈〉을 출시한 I&B의 창립자 한진태는 이렇게 말했다.
“주구 획득의 의의는 세계의 균형입니다. 주구는 불공평을 제거하는 수단이지요. 공정이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겁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어요. 사람을 죽인 자를 벌해도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상처를 준 자를 벌해도 그로부터 받은 상처는 완벽히 아물지 않습니다. 빅뱅의 깊은 흉터 역시 아직 온 우주 시공에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흉터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_「주구 공격」 중에서
그날 재복의 꿈에 적송의 침엽처럼 비죽한 머리카락을 가진 열대여섯 살가량의 아름다운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은 재복을 데리고 온갖 기기묘묘한 곳을 보여주었다. 재복은 즐거웠다. 깨어난 후 재복은 돌멩이 때문에 꾼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소년의 빛나는 눈동자가 돌멩이와 똑같았다. 재복은 가진에게 돌멩이를 건넸고 그날 밤 가진도 그 소년의 꿈을 꾸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꿈속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_「곽다할시의 저주」 중에서
“그 돌멩이는 어디 있어?”
“아직도 그게 네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 내가 그 돌멩이를 탐냈던 건 인정해. 근데 우리 이제 열두 살 아니야. 난 다만 네가 여전히 그걸 가지고 있다면, 그러니까 그 아이를 만나고 있다면 물어봤을 것 같아서.”
“뭘?”
“왜 우릴 이렇게 만들었냐고.”
“그 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지. 그리고 난 그 돌멩이 어디 있는지 몰라.”
“네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잖아.”
“그랬을지도. 근데 기억나지 않아. 그럼.”
_「돌멩이 눈알」 중에서
— 저는 숨지 않습니다. 그들이 절 찾지 못하는 거죠. 여기가 얼마나 넓은지 그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겁니다. 이곳의 시공은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등장은 알 수 없는 인과율에 따른 것이고 관리자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확률입니다.
“알 수 없는 인과율이란 게 뭔지 모르겠어.”
— 저의 주구입니다.
“너의 주구는 어디 있는데?”
— 찾아보세요. 찾을 수 있다면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_「복수의 복수의 복수」 중에서
알 수 없는 인과율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해른은 섬뜩함을 느꼈다. 부굴이 33년 전에 엄마들에게 했던 짓을 지금 자신에게 하려 하고 있다. 그러자면 자신과 함께할 이는 원수 같은 승휘가 아니라 단짝인 다흔이어야 했다. 그게 바로 특별한 인과율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잘못하면 나와 다흔이도 엄마들처럼 되어버린다.
_「창조주를 죽인 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