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인생의 일부를 도려낼 수 있다면 꼭 여기,
하는 부분에 늘 살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다음 생에는 꼭 말이지, 모든 인간을 좋아하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너는, 이번 생에서, 나만을 좋아해줘.”
반가워, 여러분. 책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어 알겠지만, 내 이름은 ‘모모’야. 이 책에는 내가 100퍼센트 함유되어 휘휘 휘저어진 이야기가 담겨 있어. 여러분이 내 이야기를 몸소 읽어준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끝까지’ 읽게 하려면 내 소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여러분을 향한 약간의 친절함이나 다정함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어. 나는 열아홉 살이야. 나이를 듣고 실망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기를 바라. 걱정 마, 여러분. 심심하거나 유치한 러브 스토리가 아닐 테니.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 세상을 꾸역꾸역 다 알아버렸을 뿐이니까.
나에게는 나를 ‘모모!’라 부르지 않고 “모오!” 하고 투덜대듯 부르는 남편이 있고, 틈만 나면 바지를 벗고 맨다리에 덜렁거리는 레그 홀스터를 보여주며 ‘언제든 모모가 원하면 이 총알을 먹어 삼킬 수 있어!’ 하고 으스대는 남자 친구가 있어. 이 남자 친구는 남편의 누나가 소개시켜줬지. 아, 오해는 말아. 남편의 누나와는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니까. 설마 여기까지 듣고 철없는 소녀의 여느 푸념이겠거니 단언하고서 책을 던져버리는 건 아니지? 내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라고. 자,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그래, 길을 걷다 올려다본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내 심장이 기관총을 쏘듯 두두두두 뛰었던 그날이 좋겠다. 그럼, 여러분! ‘모모’의 세계에 무사히 도달한 걸 축하해. 마음껏 즐기라고!
소다처럼 톡톡 튀는 발랄함 뒤에 감춰진
한 소녀의 불안전한 내면에 대하여
“아아, 난 사랑을 자랑으로 잘못 읽었고
섹스보다 근사한 차를 더 좋아하지도 못하겠어.”
테니스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모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뚝뚝 흘러내렸다. “자신이 호시노를, 한 평범한 인간을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사람들은 ‘모모’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연애지상주의’라는 수식을 붙인다. 아마 ‘모모’가 남자 1을 좋아하고, 남자 2를 좋아하고, 남자 3을, 남자 4, 5, 6, 7……을 좋아하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사실 ‘모모’는 ‘지상’보다 한 단계 위에서 연애라는 것을 내려다본다. 세상에 던져졌으니 살긴 살아야겠으나, 그 생존이 쉽지 않은 ‘모모’에겐 모든 게 일회용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모모’에게 “생활은 수단이고 무기”며, “연애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시끌벅적한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크고 작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와 순간접착제 같은 연애를 했을 뿐, 모두가 ‘모모’의 아랫배를 자극할 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팬티를 팔아 자급제 스마트폰을 사고, 다시 그 휴대전화로 팬티를 팔아 새 팬티를 사는 ‘모모’에게 연애는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모’는 그의 학교로 전학을 온 ‘호시노’에게 푹 빠져버렸다. ‘호시노’는 과연 예사롭지 않았는데(‘특별하다’와 ‘예사롭지 않다’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떠돌고 떠도는 그의 소문 하나를 잡아채 들여다보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하나같이 불경하다. 그러나 ‘호시노’는 그 어떤 소문도 부인하지 않았고, 그랬으니 해명할 것도 없었다. 그저 “호시노, 너 ‘아무개’랑 공원 벤치에서 키스했다는 거 사실이야?” 하고 물으면 위풍당당하게 웃으며 브이를 만들어 보일 뿐이었다. ‘호시노’는 이야기를 부풀려 말하는 걸 좋아했고, 어떤 말이든 자신만의 유머를 섞어 남들을 웃기는 데 혈안이 나 있었다. 그저 그런 남학생들처럼 예쁜 여학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교실 맨 윗줄의 왼쪽부터 차례대로 고백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생의 어느 부분을 도려낼 수 있다면 꼭 여기, 하는 부분에 늘 살고” 있는 ‘모모’는 그런 ‘호시노’가 좋았고, 자연스레 자신이 고백받는 차례가 되자 ‘호시노’의 고백 공격을 받아준다. 그때부터 ‘호시노’는 “모모의 피를 내는 취미를 고스란히 대신하게” 될 만큼 ‘모모’의 일부가 된다. 무엇보다 ‘모모’는 “세상 어떤 인간과도 잘 수 있는” ‘호시노’의 성실함이, “그 모두와 자고도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태도를 취하는 ‘호시노’가 좋았다.
타인과의 관계성으로 자아를 획득하려는
한 소녀의 문제적 주체성
“아무도 타는 이 없는 시소처럼 시시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마음의 요기, 끄트머리를 심장이 펄떡 뛰어오를 만큼 확 눌러주지 않겠나!”
‘모모’와 ‘호시노’는 결혼을 앞두고, ‘호시노’의 집을 방문한다. 결혼의 증인이 되어주기로 한 ‘호시노’의 누나, ‘타마키’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타마키’는 자신을 ‘산타(산도 타마키)’라고 부르라며 ‘모모’에게 열띤 호기심과 강한 애정을 보였다. ‘모모’는 ‘타마키’가 영락없는 ‘호시노’의 누나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히 몸에 밴 재치와 자유분방한 사고,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장착되어 있는 센스가 ‘호시노’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모모’는 ‘타마키’가 자신과도 매우 닮았다고 확신한다. 인생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손길이, ‘타인’에게 일정 부분 기대어야만 하는 숙명이 ‘모모’와 ‘타마키’에게 있었다. ‘모모’는 ‘타마키’를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가정사를 비롯한 여러 비밀을 최초로 털어놓기까지 한다. 아마 ‘여자’ 친구를 처음 사귄 ‘모모’로서는, ‘타마키’가 ‘호시노’의 누나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거울을 보듯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타마키’에게 끌렸으리라. 다만, ‘타마키’에게는 제 존재 이유와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신념’이 있었고, 이는 나중에 ‘모모’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로 작동한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된 ‘모모’와 ‘호시노’는 생각보다 이른 이별을 맞는다. ‘호시노’가 점차 학교를 결석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잠적해버린 것이다. 결국 부모님의 뜻대로 의대에 진학하기로 한 ‘호시노’가 다시 학교에 나온다 한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모모’와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것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한편, ‘모모’는 ‘타마키’와 같은 대학에 입학하려 했다. 하지만 통학하기에는 너무 멀고, 독립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에 단번에 결정할 수 없었다. ‘타마키’는 그런 ‘모모’에게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줄거리를 늘어놓는다. 우주에서 조난당한 주인공이 도움을 받을 때마다 답례로 섹스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타마키’ 같아 웃음이 났다며, “그건 모모랑도 비슷하잖아? 모모는 걸레잖아. 기분 좋아질 수 있는 사람이잖아”라고 하는 바람에 ‘모모’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모’는 ‘산타’가 좋았다.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나 호러영화가 좋은 것과 같은 의미에서였다. 다시 말해 “산타라는 인간은 ‘모모’에게 엔터테인먼트”였다. ‘타마키’는 ‘모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서 “그거, 답례로 섹스하는 영화 말인데. 모모가 미쓰한테도 타마키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타마키’의 소개에 편의점 앞에서 ‘미쓰’를 기다리던 ‘모모’ 앞에 “밤바람을 물어뜯듯 아취, 하고 오른발부터 뛰어올라 재채기를 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미쓰’는 ‘타마키’의 제일가는 친구가 맞는다는 걸 입증하듯, 자연스럽게 ‘모모’를 받아들인다. ‘모모’는 그렇게 “온몸의 뿔을 둥글게 말고 ‘미쓰’의 집으로 때구루루 굴러드는 데” 성공한다.
‘모모’는 ‘미쓰’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과거 ‘균’으로 불린 적 있다는 ‘미쓰’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저 무던하고 건조하게 기타 치는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모모’는 ‘미쓰’의 결핍이 자신의 것과 비슷한 ‘류’에 속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갖지 못한 걸 ‘미쓰’도 갖지 못한 것에 비해 ‘미쓰’는 올곧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올곧은 사람이라 올곧은 여자를 좋아했기에, ‘모모’는 한때 팬티를 팔았다는 사실이나 ‘호시노’와의 결혼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모모의 연애 감정은 풍선껌처럼 부풀었다 꺼졌다 하는 게 아니라 탄소처럼 세상에 일정 수 존재하는 것이라, ‘이 사람은 무지무지 좋아하고 이 사람은 조금 좋아한다’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모’는 마음 한구석에 ‘호시노’를 둥실 떠올리면서 눈앞에 잠든 ‘미쓰’를 깨워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그리고 동물원에서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그들 사이에, ‘모모’가 관계 맺은 사람들의 사이에 선명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의 ‘행방’은 어떤 운명을 좇아 이어질 것인가?
히비노 코레코 작가의 『모모 100%』는 언뜻 봤을 때는 철없는 자유를 욕망하는 열아홉 소녀의 방랑기 같다. ‘모모’뿐만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호시노’와 ‘타마키’, ‘미쓰’ 역시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청춘들의 일탈을 재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대의 현주소를 아주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형적인 일본소설의 클리셰라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은 익숙하면서도 현실적이라 외려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과 꿈이 있다. 꿈의 형태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데 있다. ‘모모’는 0%의, 미성숙한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100%가 되어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고, 앞서 언급했듯 ‘모모’라는 인물의 100%를 이야기함으로써 성장소설의 주인공 역할을 착실히 해내기도 한다. 이 책은 제59회 문예상을 수상한 히비노 코레코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면서도 특유의 사랑스러운 화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지은이
히비노 코레코
2003년에 태어나 오사카부에 살고 있다. 2022년 「뷰티풀로부터 뷰티풀에게」로 제59회 일본 문예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차례
모모 100%
역자 후기
■■■ 책 속에서
마지막 길모퉁이를 돌아 직진으로 가는 길만을 남겨놓았을 때, 문득 위를 올려다봤다가 발견한 무수한 별의 숫자만큼 기관총을 쏘듯 두두두두두 심장이 뛰었다. (9쪽)
그러니까 새우튀김의 꼬리를 당연하게 먹는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랑해줘. 내가 아무렇게나 꾸며낸 이야기의 꼬리까지 먹어줘. 나는, 다음 생에는 꼭 말이지, 모든 인간을 한 명도 빠짐없이 좋아하려고 하거든. 그리고 좋아하게 될 거거든, 그러니까 너는, 이번 생에서, 나만을 좋아해줘. (10쪽)
머리의 나사를 안전하게 푸는 방법도 가랑이를 귀엽게 벌리는 방법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도 이게 네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하는 방식도 여태 전혀 모르겠다. (18쪽)
그렇다면 이제 아무도 타는 이 없는 시소처럼 시시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마음의 요기, 끄트머리를 심장이 펄떡 뛰어오를 만큼 확 눌러주지 않겠나! (26쪽)
호시노는 교내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징그러워’를 한 몸 에 받고 있는 남자였다. 태반의 소문의 주어고, 대개의 험담 의 대상이고, 모모의 모든 ‘총구 오브 러브’가 겨냥하고 있는 남자였다. (45쪽)
모모와 산타는 스스로를 불행하다, 불행하다, 하고 깎아내림으로써 세계가 그들을 두고 상승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계속 가라앉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63쪽)
그렇잖아, 타마키랑 모모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잖아? 그거 확정 사항이잖아?” (64쪽)
호시노의 생각은 늘 읽기 쉽지 않다 보니, 호시노가 명백히 자신을 웃기려 한다는 것은 일기장이 때로 재판의 증거물이 되듯 모모가 사랑받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 같았다. (71쪽)
난 원래 살짝 사시斜視니까 한쪽 눈으로 미쓰를 보고 또 한쪽 눈으로는 호시노를 보는 것 같은 일은 의외로 간단하거든. 그래, 그럼 뇌가 거치적거릴 만큼 진심으로, 살아 있는 남자를 좋아할까? (105쪽)
나비를 보고 저건 옛날에 송충이였으니까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가 전생에 시뻘건 비엔나소시지였다고 그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110쪽)
만난 지 몇 달이면 설령 거기에 알이 없어도 사랑은 부화하는 법이라, 두 사람은 이제 갓 태어난 쌍둥이 아기처럼 무구하게, 멋없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었다. (112쪽)
왕자님의 키스를 받아야 풀리는 최악의 주문처럼 연애는, 혁명이다, 라고 생각한다. 같은 의미로, 그 외의 것들은, 퇴화다, 라고 생각한다. (135쪽)
이곳에 고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미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바퀴벌레 알처럼 고독이 모여들어 넘치고 있어서였다. (146쪽)
어차피 인생에서 얼른 죽고 싶은 날과 더 오래 살고 싶은 날은 반반이었다. 그렇다고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것은 아니고, 반반의 합산이 인생이라는 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드네. (169쪽)
■■■ 추천사
나는 네가 너무 징그러워. 징그러운 건 징그러울 만큼이나 살아 있다는 뜻. 살아 있다는 건, 살아간다는 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일이고. 언뜻 모모는 머리가 느슨한 여자애처럼 보인다. 하찮은 이유로 남자를 사귀고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는가 하면, 스마트폰을 사려고 입던 속옷을 포장해 우체국에 가는 타입이랄까. 물론 모모가 ‘그런’ 여자애가 된 데에도 이유는 있지. 모모의 놀라운, 진짜로 모모다운 부분은, 자기를 ‘그런’ 여자애로 만든 환경을 핑계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 그 애의 모든 행동은 몸에서 작은 핏방울을 짜내거나 새끼발가락을 서슴없이 떼어내는 것과 같이 충동적인 자기파괴로 보이지만, 자기파괴란 항상 파괴할 나의 몸(自己)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오로지 촉각으로 내 몸에 닿는 부피만큼의 세계를 감지하는 일이니까. 그깟 새끼발가락쯤 있으나 없으나 모모는 100%의 모모 그 자체. 살아남기 위해 가짜 사랑을 만들어내지만 그 사랑을 연료로 언제까지든 살아갈 수 있는 무적의 여자애. 진심인데, 모모, 그런 네가 징그러워. 미안하지만, 아마도 그건 징그러울 만큼이나 사랑스럽다는 뜻이겠지.
― 박서련 소설가
누군가는 모모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모모를 싫어하겠지. 하지만 모모를 비웃거나 함부로 동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와 맞서 싸울 것이다. 심해어의 일그러진 몸을 비웃는 이들은 심해의 압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낙타의 솟아오른 혹을 함부로 동정하는 이들은 사막의 건조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마찬가지로 다만 생존하기 위해 연애를 무기 삼아야 했던 모모가 여기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때로 100% 전심전력을 다해야 해. 그 과정에서 우스꽝스럽거나 비참해질지라도,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사람들에게 걱정 어린 눈길을 받기 위해 전철에서 휴대전화를 몇 번이고 떨어뜨려야 했던 마음. 그 마음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면, 모모를 지나쳐 가도 좋겠지. 그렇지만 어두운 밤, 몸과 마음을 가누기 어려워 휘청거려본 기억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지탱해주기를 간절히 바란 적이 있다면, 책을 덮은 뒤에도 당신은 모모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은 환한 통증처럼 강렬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끼리의 형형한 눈 맞춤.
― 임선우 소설가
페이지를 넘기며 뜻밖에 감각한 것은 내 몸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 읽기를 중단한 채 내 몸을 쥐고 두들기고 비틀고 쓰다듬으며 정말 내가 여기에 있는지 확인했다. 일생 동안 여행하는 이 몸이 실은 나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면? 가까스로 죽음을 밀어낸 자리에 살아남았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모른다면? 몸이 증명하는 것이 오직 불안이라면?
이 소설은 얼핏 기이한 청춘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아니, 그들은 우리에게 끈질긴 방식으로 말을 거는데, 몸서리치거나 도망치거나 밀쳐내거나 혹은 용기 있게 안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유령과는 가장 먼 육체를 가진 목소리이므로 우리와 분명하게 닿는다. 그리고 그 접촉은 우리 또한 이 외로운 군집의 일부임을 일깨우는 동시에 우리가 가진 깊은 불안을 마주하게 한다. 서로의 불안을 비추고 반사하는 방식으로밖에 발광하지 못하는 별이 되어, 희미한 성운이 되어, 가냘프게 연결된 하나의 세포가 되어 도리어 살아남도록 만든다.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진 형태의 생존이라니. 서로가 먹고 먹히는 생태계 안에서 과연 나의 백퍼센트를 찾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의 충격적이면서도 조금도 폭력적이지 않은 결말에 이르면 제로가 아닌 백퍼센트가 되어 사라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 우다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