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흥미로운 주인공, 본적 없는 판타지의 탄생!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가 만들어 낸 다정한 힘
상처받은 어린이에게 손을 내미는 명랑하고 씩씩한 앨리스의 다정한 메시지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의 만장일치 수상을 이끌어 낸 수작
흥미로운 주인공, 어디서도 본적 없는 판타지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강한 이야기꾼의 탄생!
_심사위원(유영진·박하익·송미경)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수상작 『맨홀에 빠진 앨리스』가 출간되었다. 『언제나 다정죽집』으로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고, 『시티 뷰』로 혼불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우신영 작가의 고학년 문학 작품이다.
사냥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시 쓰는 사자. 빠르게 달리기보다 달빛 아래 산책을 즐기고 싶은 타조. 먹물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영어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오징어. 그리고 늦게까지 학원을 떠돌며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다 맨홀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간 앨리스……. 이런 ‘이상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을까? 이들이 빨려 들어간 맨홀 속 토끼왕국에 대해서는?
『맨홀에 빠진 앨리스』는 어린이 문학의 영원한 고전이자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원작에 버금가는 탄탄한 문장력과 능숙한 스토리 전개, 개성 있는 등장인물과 시적인 장면이 돋보인다.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건강한 이야기꾼의 탄생”이라는 찬사 속에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된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 어린이들이 직면한 지나친 경쟁주의, 자본주의로 젖어 든 현대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한 맨홀 속 세계에서 저마다의 슬픈 사연을 지닌 주인공들이 우정과 연대의 힘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정한 목소리로 그려냈다.
맨홀 속 토끼왕국을 표현하는 생생한 묘사와 흥미로운 세계관, 발칙하고 다정한 대사와 지문은 주정민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삽화를 입고 어린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 지은이
우신영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명지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맨홀에 빠진 앨리스』로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언제나 다정 죽집』으로 제30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습니다.
앗, 맨홀 구멍으로 그들이 보이는 것 같다고요? 그럼 여러분도 잠깐 손목에서 시계를 풀고 그들과 함께 놀아 보지 않겠어요? 정신없이 놀다가 배가 고프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케이크를 구워 먹을 수도 있을 거예요. 가방 속 문제집으로 사다리를 만들 수도 있을 거고요. 그래도 어쩐지 겁이 난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위한 색색의 마법 사탕이 듬뿍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_작가의 말
■■■ 그린이
주정민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11년부터 광고, 브랜드, 패션 잡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2021년부터 만화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고전 패션 일러스트의 우아함을 사랑하고 스토리가 친절하지 않은 만화를 좋아합니다. 그린 책으로 『퓨마의 돌』이 있습니다.
■■■ 차례
- 맨홀 속의 침입자
- 길을 잃은 사람
- 끝없는 달리기
- 풀리지 않는 문제
- 위시, 디시, 퍼니시, 차일디시
- 래빗홀의 음식 창고
- 이백 년 만의 케이크
- 맨홀 뚜껑을 여는 자들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깊고 아득한 추락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이었다. 차가운 물웅덩이가 텀벙 소리를 냈다.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축축해졌다.
아빠가 사 준 빨간 구두 한 짝이 사라졌다. 벗겨진 왼쪽 발뒤꿈치가 쉼표 모양으로 까져 핏물이 살짝 배어났다. _7쪽
조금 전까지 나는 분명 ‘원더랜드 잉글리시’로 가고 있었다. 호비 줄넘기 학원에서 슬러시 파티를 하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두 학원은 걸어서 십 분 거리다. 엄마는 이동 시간을 딱 십 분으로 계산해 학원 스케줄을 짰다. 내가 중간에 다른 곳으로 샐 것을 염려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_8쪽
그때 맨홀 뚜껑이 나타났다. ‘우수’라고 적힌, 밤하늘처럼 검고 보름달처럼 둥근 뚜껑이었다. 뚜껑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그것들은 다시 크고 작은 원을 이루었다. 마치 큰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처럼 둥근 맨홀 안에 무수히 많은 둥근 구멍들. 그 구멍들이 텅 빈 눈동자처럼 보여 무서웠다. _10쪽
낭창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유난히 귀가 큰 토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털이 어찌나 새하얀지 겨울밤에 내리는 눈처럼 어둠 속에서도 우윳빛으로 보얗게 반짝거렸다. 황금 당근이 조각된 지팡이를 들고 있는 토끼의 손목에 내 시계가 있었다.
“그거 돌려줘.”
“싫어.”
“내 시계야.”
“맘에 들어.” _13~14쪽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영원처럼 긴 꼬챙이였지. 뜨거운 피가 갈기를 적셔 왔지만 나는 꿈쩍하지 않을 작정이었어. 그때 저 멀리 엄마가 보였어. 내 눈을 보며 고개를 젓는 간절한 얼굴. 결국 앞발에 힘을 주고 링을 향해 달렸어. 어찌어찌 공연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뒤부터 난 서커스단의 문제아가 되었지. 인간들만 나를 괴롭혔다면 참을 수 있었는지도 몰라. 같은 서커스단의 사자들조차 마술사의 모자 속 토끼 앞에서도 벌벌 떠는 나를 무시하고 비웃었어. 더 아프고 더 슬픈 괴롭힘이었지.” _37쪽
“수학 퀴즈를 내기 싫으니?”
“내기도, 풀기도 싫어. 내가 하고 싶은 건…….”
“네가 하고 싶은 건?”
“풀밭에 누워 가만히 시상을 떠올리는 거야.”
“시 쓰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래. 시 쓰는 사자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 멋있다고 생각해.”
“진심이야?”
“그래. 이건 비밀인데 나도 엄마, 아빠한테 혼나면 침대에 누워서 일기를 써.” _40쪽
달리기 경기장에서는 치타와 영양, 타조가 미친 듯이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도 바로 다시 달리기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수영 경기장에서는 돌고래와 황새치, 오징어가 지친 몸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사자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백 미터 레인을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순서로 일 분 삼십 초 안에 통과해야 해.” _47쪽
“이 요상한 침입자는 누구냐?”
“난 침입자가 아니다. 맨홀을 밟고 여기 떨어졌다. 어서 여기서 나가 여덟 시 반에 시작하는 수학 학원에 가야 한다.”
“수학 학원? 그게 뭐냐?”
“설명하자면 길다. 남은 과일의 수를 세거나 시계 보는 법을 익히거나 나무토막의 부피를 구하는 곳이라 해 두지.”
“근사하군. 이 왕국에도 그런 수학 학원을 많이 세워 봐야겠구나.”
“그건 마음대로 하고, 일단 규칙대로 사자와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 줘.” _56쪽
“그럼! 우린 심장이 세 개, 다리가 열 개야. 너희처럼 생기다 만 종자들하곤 다르지. 게다가 이 먹물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 옛적부터 잉크랑 물감처럼 쓰여 왔다고. 귀한 책과 그림도 우리 오징어 없인 탄생하지 못했다 이거야. 너희 인간들이 쓰는 서예용 먹물보다 우리 오징어의 먹물이 훨씬 비싼 건 아니?”
“잘난 척하긴. 학습 만화에서 읽었는데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몇 년 지나면 말라 없어진댔어. 그래서 우리 인간이 믿을 수 없는 약속을 오징어 먹물로 쓴 약속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 _75~76쪽
“어, 내 이름은…… 학원에서 영어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지은 거고, 나는 순 한국인이야. 원래 이름은 애리야, 김애리. 사랑스럽고 영리하단 뜻이지. 한국 이름이랑 비슷한 걸 찾다가 앨리스라고 지은 거고. 영어는 음…… 학교에선 잘하는 편이지만, 동네 친구들에 비하면 옹알이 수준이지.” _83쪽
지금껏 어리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말도 커진 입으로는 마음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_88쪽
선반에 있는 수백 개의 쿠키 상자 중 가장 양이 많아 보이는 것을 골라잡았다. ‘JOLLY COOKIE(졸리 쿠키)’라고 쓰인 어여쁜 상자를 열었다. 깨소금보다 고소하고 초콜릿보다 달콤한 향기가 진동했다. 그러자 뱃속에서 난동이 일어났다. 얼른 쿠키를 하나 집어 들자 손가락에 버터의 녹진한 기름이 묻어났다.
“이건 맛없을 수가 없겠다.” _110쪽
“그래, 여기 있었다! 다른 동물에겐 초라한 음식을 주면서 너희 토끼 왕족만 이렇게 풍요로운 창고를 차지하고 있다니.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최악의 왕이구나, 넌!”_113쪽
“토끼 왕, 네 곁엔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복종하는 신하들뿐이지? 넌 시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꽉 짜인 스케줄이 어그러지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지? 네가 구경하는 그 많은 경기를 잘 떠올려 봐. 넌 그저 시간을 재고 상벌을 내릴 뿐 한 번도 네가 원하는 놀이를 하거나 땀 흘리며 경기를 해 본 적도 없잖아. 도대체 넌 누구와 어디로 가고 싶은 거야?” _116쪽
나는 말문이 턱 막혀 괜히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계량했다. 어려울 건 없었다. 매년 엄마 생신마다 아빠와 만들던 케이크니까. 당근을 깎아 주고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들어 주던 아빠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하지만 사자와 타조, 오징어가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 왔던 것처럼 도와주었다.
“손발이 척척 맞는구나!” _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