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 ChatGPT’ 첫 공동 집필 소설집
소설가 7인이 AI와 함께 창작한 짧은 소설들
그리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적어 내린 기록들
이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선언이다.
■■■ 책 소개
화제의 AI 챗봇 ChatGPT,
얼마나 완성된 소설을 써낼까?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AI 기술이 산업 전반에 고루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이미 침투한 AI는 그 세력을 점차 키우는 중이다. 특히 인간의 지시에 따르고 질문에 응답하는 ‘대화형 AI’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지난해 OpenAI가 공개한 AI 챗봇 ‘ChatGPT’는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며 화제의 중심에 있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그로 인해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더 편안해질지 기대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인간의 자리를 차지할 기계의 시대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는 불안도 존재한다.
우리의 시작도, 사실 기대보다 불안에서였다. 정교해지는, 점점 더 인간 같아지는 AI의 기술력이 인간의 고유성까지 침범하고 있는 지금, 과연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모른 체하는 게 맞는 걸까? 기계는 절대 인간의 위치에 오르지 못할 거라며, 당도한 현실마저 부정한 채 우월성을 내세우면 되는 걸까? 글은, 문학은 인간 작가만이 시도하고 성취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라고 선 그으면 끝인 걸까?
그렇지 않다는 대답 대신, 한번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인 창작, 그중에서도 소설을 AI와 함께 써보는 거다. 그리고 함께하는 과정을, 그 시행과 착오를 모두 담아보는 거다. 『매니페스토Manifesto』는 시도와 과정과 결과를 모두 담은, 성공과 실패의 조각이 모두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소설집이다. 인간과 AI가 협업해 어떤 소설을 만들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만들며 작가들이 느낀 게 무엇인지까지 전부 이 한 권에 담았다.
AI가 생성한 차가운 텍스트에
온기를 불어넣은 7인의 소설가
김달영, 나플갱어, 신조하, 오소영, 윤여경, 전윤호, 채강D. 이 일곱 명의 작가가 ChatGPT와 함께 쓴 일곱 편의 소설은 다음과 같다.
황량한 풍경 속 비밀스러운 소녀가 살고 있는 메타버스 세계를 그린 「텅 빈 도시」, 기후변화로 인해 바다에 잠긴 인천 송도를 배경으로 한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공존하는 미래의 어느 날 신문에 기고된 ‘인간’ 단체와 ‘외계인’ 연합의 입장문을 옮긴 「매니페스토」,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갑자기 북한의 오빠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를 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움과 꿈」, 인간의 뇌와 연결된 인공지능 스피커가 감정과 무의식까지 읽어내는 무서운 일상을 그린 「감정의 온도」, 인간보다 똑똑하게 개발된 AI 시스템이 개발자에 도전하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오로라」, 부상으로 위기에 빠진 한 야구 선수에게 일어난 꿈같은 성공기를 담은 「펜웨이 파크의 행운」.
SF 요소와 현실이 적절히 섞인 소설들 속에는 ‘지금’과 ‘곧 다가올 미래’, ‘조금 더 먼 미래’가 저마다 다르게 그려져 있다. 어떤 작가는 그 안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어떤 작가는 닥쳐올 불행을 예고하고, 어떤 작가는 우리의 잠재된 불안을 자극한다. 그저 소설일 뿐인 흥미로운 세계로 읽어도 좋고,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는 무서운 경고처럼 읽어도 좋다. 어떤 문장이 작가가 쓴 것이고, 어떤 문장이 AI가 쓴 것인지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맑은 눈의 인공지능과 부대낀
희로애락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매니페스토Manifesto』의 가장 특별한 점은 ChatGPT와의 협업 과정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AI와 함께 소설을 쓴 소감과 작가로서 갖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 작업 중에 겪은 에피소드 등을 ‘협업 후기’에 담았다. 에세이 형태로 쓰인 이 글에는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진심과 AI에 가졌던 반감, 작업 이후 느낀 동료애까지 편안한 문체로 녹아 있다.
처음 합을 맞춘 동료 AI와 어떤 대화를 나누며 소설을 완성시켰는지는 ‘협업 일지’를 통해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관심사를 가진 것은 물론 글쓰기 요령도 제각각인 작가들은 자연히 ChatGPT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소설 작법의 단계를 물으며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어떤 소재를 다루면 좋을지 상의하기도 하고, 소설의 재료가 될 자료를 조사시키기도 하고, 문장을 더 유려하게 만들거나 길게 늘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활용법이 세세히 적혀 있다.
때로는 조수가 되어, 때로는 구세주가 되어 작가들을 도운 ChatGPT는 종종 배신자가 되어 작가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부적절한 소재라며 문장 생성을 거부하기도 하고, 요구한 것과 전혀 딴판인 이야기를 내놓기도 하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대기도 하는 등 말 안 듣는 ChatGPT를 어르고 달래며 소설을 쓰느라 애먹은 작가들의 사연도 이 ‘협업 일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일지에는 실제 작가들이 이용한 ChatGPT 대화 화면이 그대로 담겨 있어 그 과정의 생생함을 독자들이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KBS에서도 주목한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
작은 지혜의 시작, 작지만 확실한 선언!
우리의 협업 과정은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도 만날 수 있다. 4월 13일 방영 예정인 해당 방송에는 ChatGPT와 함께 소설을 써본 작가들의 작업 과정과 감상, 그것이 응축되어 완성된 이 책의 제작 과정과 의미가 담긴다. 실제로 글 쓰는 데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주고, 이것이 창작의 영역을 지키던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연 창작이란 무엇이고 또 인간이란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까지 선사할 것이다.
『매니페스토Manifesto』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쓴 소설들의 모음이 아니다. AI와 공존하는 삶을 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창작, 문학의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작은 지혜의 시작이다. 인간다움의 길을 찾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역설하는 작지만 확실한 선언이다.
*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전자책 발행은 3월 27일, 종이책 발행은 4월 3일 예정이다. 전자책에는 일곱 편의 소설의 영어 버전도 수록되어 있다. 책의 표지 역시 AI(이미지_Midjourney)와 함께 디자인했다.
■■■ 지은이
김달영
SF 소설가.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플갱어
극장에서 인생을 배운 16년차 영화 담당 기자. 지구상 만물이 다 나 같은 공감력의 소설가.
세상에 호기심도 불만도 많다. 그 모든 상상이 SF로 튄다.
신조하
SF 스토리 창작자, 변호사.
「인간의 대리인」으로 2022 한국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오소영
북한이탈주민. 청진광산금속대학을 중퇴했고,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직진알 직진루」 「신의 안배」를 연재했고 『우리도 사랑을 한다』를 출간했다.
윤여경
소설가, 기획자, 문학 창작 강사. 『세 개의 시간』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았다.
전윤호
30여 년간 IT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하다가 2019년부터 SF를 쓰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모두 고양이를 봤다』 『경계 너머로, 지맥(GEMAC)』을 출간했다.
과학기술적 설정의 현실감을 중시하는 하드 SF를 주로 쓴다.
채강D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야구팬이 되어 있었다.
야구를 기본으로 다양한 장르와 엮어 이야기를 쓰고 있다.
ChatGPT-3.5
오픈에이아이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으로,
ChatGPT-3의 오류를 개선해 2022년 11월 30일 공개됐다.
■■■ 차례
추천사 유상근
김명주
ChatGPT
김달영∙ChatGPT 텅 빈 도시
협업 후기: 엿가락 늘이기 대마왕 ChatGPT
협업 일지: 텅 빈 도시를 채운 세 번의 우여곡절
나플갱어∙ChatGPT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
협업 후기: AI 소설을 왜 쓰는가
협업 일지: 예상치 못한 AI의 서정적 관점
신조하∙ChatGPT 매니페스토
협업 후기: 맑은 눈의 AI와 그 후에 남겨질 우리
협업 일지: 눈치 없는 친구와 완성한 음흉한 문장들
오소영∙ChatGPT 그리움과 꿈
협업 후기: 새로운 도전의 연속
협업 일지: ChatGPT의 말문을 막은 단어
윤여경∙ChatGPT 감정의 온도
협업 후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
협업 일지: 브레인스토밍부터 위대한 소설가의 평가까지
전윤호∙ChatGPT 오로라
협업 후기: 텍스트로 콜라주 만들기
협업 일지: AI 보조 작가를 위한 문맥 관리
채강D∙ChatGPT 펜웨이 파크에서의 행운
협업 후기: ChatGPT로부터의 행운
협업 일지: 칭찬은 ChatGPT도 춤추게 한다
■■■ 책 속으로
나는 이제 이 기괴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시간이 다 되었다. 갑자기 이 도시의 정갈한 아름다움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도시 그 자체를 위한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 「텅 빈 도시」 중에서
떠오르는 의문 하나. 출판사들은 원고지 매수에 따라 원고료를 책정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ChatGPT를 이용해 원고를 늘이면 그 원고료는 누구에게 지불되어야 하는 걸까.
― 김달영의 협업 후기 중에서
어둠에 눈이 익자 서서히 시야가 밝아졌다. 옛 도시는 바다의 어둠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길 위에 흐르던 차들과 사람들은 이제 물보라 속에 흩어지는 기억의 유물로 머물렀다. 비틀거리는 건물들과 그림자처럼 남겨진 거리,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분위기가 바닷속 도시 유적을 감싸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게 바다의 소유였다.
―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 중에서
ChatGPT는 AI가 가질 법한 관점, 대사의 어투를 정확하게 제공해줄 수 있다. 그 자신이 AI이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극 중 캐릭터의 실존 모델을 그 배역에 캐스팅한 것이나 다름없다.
― 나플갱어의 협업 후기 중에서
비록 지구의 전반적인 수준이나 지구인 동료 여러분이 가진 능력이 미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건대, 우리는 우리의 우월함으로 지구를 점령하거나 우리의 뜻을 강요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이 아닙니다.
― 「매니페스토」 중에서
맑은 눈의 ChatGPT는 아무런 욕망이 없는 맑은 영혼, 딱 그 정도의 결과물을 반복해서 제시해주었다. ‘평화는 좋은 것이다. 조화롭게 사는 것이 이득이다.’ 이 정도로. 이를 통해 내가 확인한 점은, ChatGPT는 평화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 신조하의 협업 후기 중에서
나는 오빠와의 문자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연락한 문자는 북한에서 발송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서 인터넷으로 발송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휴대폰을 들고 오빠와의 대화를 살폈지만, 여전히 발신인은 없었다.
― 「그리움과 꿈」 중에서
범죄와 관련된 자료는 잘 나오지 않았고, 내가 소설에서 다룬 북한에 대한 내용 역시 이야기를 생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알맞은 문장들을 자꾸 출력했다.
― 오소영의 협업 후기 중에서
몇 년 전, 오랜 법정 싸움 끝에 AI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거대한 데이터 BCI가 허가되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감정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이목을 끌었다. 그들은 표정과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도 연기하며, 뇌간 소통으로 감정을 전달했다.
― 「감정의 온도」 중에서
처음에는 AI의 머릿속이 궁금해서 참여한 프로젝트였지만, 점점 인간은 무엇이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 윤여경의 협업 후기 중에서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평생의 업적을 망치며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한 오로라를 향해 김 박사의 눈은 불신과 분노, 수치심이 뒤섞인 강렬한 감정으로 불타올랐다. 분노와 절망의 순간, 그녀는 갑작스럽고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오로라」 중에서
‘오로라’라는 이름은, 새로운 과학 이론을 발견하는 AI의 이름을 붙여보라고 명령한 결과로 얻었다. 또한 과학적 이론이나 개념만 제시하면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문맥에 맞는 적절한 문장을 생성해냈다.
― 전윤호의 협업 후기 중에서
재활을 하던 어느 날, 김서준은 자신의 동료 선수가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을 달성하는 장면을 지켜봤고, 갑자기 분노가 차올랐다. 승리를 거둔 선수의 웃는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대체 왜…….’ 김서준은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 「펜웨이 파크에서의 행운」 중에서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소설책의 서두에 ChatGPT 사용 여부를 밝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마치 조미료를 넣지 않은 식품을 따로 표기하는 것처럼.
― 채강D의 협업 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