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소설
네오픽션 ON 시리즈 13
‘매구’가 올여름 흥미로운
납량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민규동(영화감독)
장편소설 『고리골』로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로 대한민국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 조선희가 펼쳐내는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도깨비, 인어 등 친숙한 소재로 낯선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작가가 이번에 선택한 건 바로 ‘매구’다.
12년간 조용하던 마을에 들이닥친 사건 사고들. 주인공 ‘이하’는 미스터리한 대숲과 호수에서 벌어진 일들을 쫓다 현재의 일들이 12년 전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린다. 덮었지만 덮어지지 않은 죽음, 돌아오지 않은 시신들. 그 이면의 비밀에는 우리들 사이에 숨어든 매구가 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이하의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자신의 비밀까지. 이하는 과연 매구의 정체를 밝히고 매구를 죽이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매구의 흔적을 품고 사는 사람들과
그 속에 숨어든 매구의 정체
그리고 그것이 감춘 또 하나의 비밀
열여덟 고등학생인 ‘이하’는 어느 날 아버지와 단둘이 아버지의 고향인 ‘매구면’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매구면의 ‘매구’는 천 년 묵은 여우가 변신한 요괴로, 매구면 사람들에게 매구는 뼛속 깊이 스며들어 의심할 수 없는 존재다. 한편 매구면에는 독특한 전설이 있다. ‘매구호수’에 빠지면 매구가 구해준다는 것. 하지만 만약 누군가 호수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뛰어든다면, 물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이하는 갑작스러운 이사와 전학으로 마음이 복잡하지만 매구면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이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구호수에서 사람이 실종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매구가 산다는 대숲과 호수를 지나갈 때마다 이하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이 자꾸 일어난다. 마치 누군가 이하가 매구면에 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지목을 당하는 순간 수많은 얼굴들 속에 숨어 있던 그 기이한 얼굴이 눈을 떴다. 이하는 흠칫 놀랐다. 어린 시절 매구호수에 빠졌을 때 빗속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그 모호한 얼굴과 너무도 흡사했다.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보았다. 뭉뚱그려져 있던 기억이 순식간에 완벽한 형상을 갖췄다. 마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던 말이 실재가 된 것처럼. (236쪽)
이하는 매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12년 전 매구호수에서 사라진 한 여고생에 대해 파헤치게 된다. 같은 반 여학생인 ‘정연’의 사촌 언니이자 매구에게 잡혀가 끝내 시신조차 찾지 못한 소녀의 이름은 ‘홍수연’. 수연은 어느 날 좋아하는 남학생으로부터 매구호수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나간 뒤 호수에 빠져 죽는다. 수연의 가족은 당시 수연을 불러냈다고 알려진, 그러나 본인은 그러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남학생 ‘황길군’에게 수연의 죽음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수연이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믿음을 품고 산다.
한편, 황길군의 아버지는 탈을 만드는 장인으로, 그에게는 인생의 역작인 ‘매구탈’이 있다. 사람들은 매구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황길군이 매구탈을 쓰고 수연을 죽게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 몰려 살인자가 된 황길군은 엇나가고, 황길군의 여동생인 ‘아리’는 ‘매구의 아이’라 불리며 동네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이하는 이 모든 상황에 의심을 품게 되고 12년 전 사고의 진실을 파헤치게 시작한다.
나는 너희들의 이야기에서 태어나 망각에서 죽지.
너희가 원하는 한 나는 늘 여기 있을 거야.
그래, 이제 나를 알아보겠어?
이하가 매구의 실체에 가닿을수록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비밀이 벗겨진다. 수연을 죽인 진짜 범인과 매구의 정체, ‘매구의 아이’라는 아리와 자신의 공통점, 절친한 친구인 현승의 믿을 수 없는 비밀까지.
어린아이의 두개골을 뒤집어쓰고 변신한다는 매구는 과연 실재하는가. 매구와 매구탈, 그 정체를 밝혀야만 더 이상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비로소 밝혀지는 진짜 매구의 정체와 숨겨진 마을의 비밀. 반전과 반전을 거듭한 이야기의 끝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 추천사
‘매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알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는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활자로 펼쳐진 장면들이 영상처럼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어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금세 읽어낼 수 있다. 『매구를 죽이려고』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미스터리 추리·스릴러·드라마·코미디까지 흥미로운 것들의 면면을 다양하게 품고 있는 작품이다. ‘매구’가 올여름 흥미로운 납량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_민규동(영화감독)
■■■ 지은이
조선희
장편소설 『고리골』로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전 2권)『아돈의 열쇠』(전 7권)『거기, 여우 발자국』 『404번지 파란 무덤』 『루월재운 이야기』(전 2권)『소금 비늘』, 소설집 『모던 팥쥐전』 『모던 아랑전』 등을 펴냈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로 2015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2018)에서 분리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두 이야기는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소리나무 게임도, 매구의 이야기도 계속됩니다. 이상한 것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구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다만 소문으로, 변명으로 그것을 입에 담을지 말지는 인간의 마음에 달렸겠지요.
■■■ 차례
서장
대숲, 세 번 부르기 전까지
12년 전 사고
소문, 그리고 소문
매구탈
태풍주의보
매구를 죽이려고
종장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이하는 매구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호한 존재는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물이다. 그러므로 여기 이 스케치에 등장하는 동네와 사람들 사이 어디쯤에 반드시 있어야만 말이, 아니,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매구는 소문이라 영원히 그려 넣을 수 없다. (135쪽)
지목을 당하는 순간 수많은 얼굴들 속에 숨어 있던 그 기이한 얼굴이 눈을 떴다. 이하는 흠칫 놀랐다. 어린 시절 매구호수에 빠졌을 때 빗속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그 모호한 얼굴과 너무도 흡사했다.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보았다. 뭉뚱그려져 있던 기억이 순식간에 완벽한 형상을 갖췄다. 마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던 말이 실재가 된 것처럼. (236쪽)
두산의 말대로 이 동네에서 매구는 훌륭한 핑곗거리였고 상처를 덮는 말이었으며 의지할 무언가였다. 이 사람 저 사람 연결된 소문들을 매구가 가리고 있었다. 매구는 모호하고 두려운 존재로 진실을 감추며 스스로 실재가 되었다. (249쪽)
세상엔 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집게손가락이 멋대로 떨고 있는데 아무도 그 원인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마시지도 않은 알코올이 몸속을 떠도는데 누구도 그 이유를 몰랐다. 이상하지만 이제 더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려니 여긴다. 대숲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249~250쪽)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뭐 어쩌겠어. 그냥 운이 나빴던 거야. 아, 날 원망하면 안 돼. 전적으로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는 건 존재하기 위해서야. 모든 생명의 본능이지. 그 시간에 뭔가 물에서 나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갔어야지. 날 보자고든 건 그 아이야. (426쪽)
괜찮아. 우린 다시 보게 될 거야. 언젠가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말이지. 말했잖아. 난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늙어 죽는 것까지 모두 지켜볼 거라고. 난 죽일 수도 없고 죽여지지도 않아. 이상한 것은 언제나 이 세상에 있어왔고 모두가 있기를 바라지. (439쪽)
아리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양쪽 팔을 벌렸다. 두 발도 페달에서 뗐다. 이하도 따라 했다. 내친김에 눈도 감았다. 아무려면 어때. 이대로 달리다가 어딘가에 처박히든 말든. 바퀴들끼리 신나게 질주했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훑고 지나갔다. 자전거는 흔들흔들 춤을 추며 제멋대로 달렸다. 그러다 결국 대나무들 사이에 걸려 멈췄다.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머리 위가 아득해졌다. (4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