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멸망해버린 인류와 모든 것이 사라진 지구,
에리카는 홀로 살아남은 인류가 되었다
네오북스에서 해도연 작가의 장편소설 『라스트 사피엔스』가 출간되었다. 물리학과 천문학에 일가견이 있어 SF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27543년의 지구를 그려낸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인류가 멸망하고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27543년의 지구에서 홀로 깨어난 인간의 이야기다.
『라스트 사피엔스』의 시간적 배경은 276세기다. 21세기의 인류는 망가져버린 지구가 다시 회복할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뒤, 냉동 캡슐로 들어갔다. 하지만 27543년에 깨어난 인간은 오직 단 한 명, 에리카뿐이다. 276세기의 지구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냉동 캡슐로 들어간 인간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깨어나긴 한 걸까. 에리카는 정말 지구의 마지막 존재인 걸까.
■■■ 지은이
해도연
작가 겸 연구원.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집 『진공 붕괴』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위대한 침묵』, 장편소설 『베르티아』 『마지막 마법사』, 과학 교양서 『외계행성: EXOPLANET』 등을 출간했으며 다양한 엔솔러지와 잡지에 중단편을 게재했다. 잭 조던의 장편소설 『라스트 휴먼』을 번역했다.
■■■ 차례
캡슐
두 번째 캡슐
성운
유적
동물
켄티펀트
싸움
켄티
둘
비
밤
실종
초원
배드 피플
인간
방주
하늘
퀴마 뉨 뷸로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이제 막 캡슐을 감싸기 시작한 햇살이 얼어붙은 유리를 천천히 닦아냈다. 그러자 유리 너머에 있는 작은 캡슐의 내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잠에서 깼다. (8~9쪽)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하지만 기억 속 어딘가에 에이다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에리카는 굳게 믿기로 했다. 어쩌면 에이다도 다른 캡슐에 탔을지도 모른다. 이런 캡슐을 하나만 만들었을 리는 없을 테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에이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에이다는 26세기에 ‘다시’ 만나자고 했으니까. (17쪽)
7543.04.26.13.43.34.372
마지막 세 자리 숫자는 읽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했다. 그다음 두 숫자는 초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분, 시, 일, 월 그리고…….
27543년.
약속한 시간에서 약 25000년이 지났다. 구름이 태양을 가렸고 멀리서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는 사흘 동안 이어졌다. (19쪽)
이윽고 알아볼 수 있는 커다란 글씨가 나타났다. 철자는 에리카가 아는 것과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구원.’
계단 벽에 이렇게 썼다는 건 구원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방주가 작동한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든 결국 구원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재난이 닥쳤고, 끝내 구원은 오지 않았다. (37쪽)
에리카는 옥상 난간 위에 올라섰다.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마음이었다. 불안도, 두려움도, 고독도 없었다. 오히려 깊은 바다에 몸을 맡기는 듯 기분 좋은 해방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향긋한 숲의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다정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46쪽)
마지막 순간까지 이곳에 있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인간 사회의 마지막을, 누군가는 잠시라도 더 오랫동안 기억해야 했다. 그리고 에리카가 이곳에 있었다. 에리카는 조금 덜 외로워졌다. (61쪽)
저 거대한 건축물은 방주가 분명했다. 약 25000년 전, 인류가 어떤 재앙을 직감하고 만든 생존 시설.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구조물. 에리카가 잠들어 있던 방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인류가 단 하나의 방주에만 미래를 걸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에리카의 방주는 실패했고, 숲 아래에 묻혀 있을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저곳은 아직 무사해 보였다. (127쪽)
“켄티, 날 봐.”
켄티가 에리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 좋은 사람. 굿 피플.”
에리카는 유인원을 가리켰다.
“저기, 나쁜 사람. 배드 피플.”
켄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143쪽)
“퀴마 뉨 뷸로.”
저 인간을 보라.
환청이 아니었다. 저 아래에 있는 투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였다. 그들이 에리카를 가리키며 저 인간을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에리카는 스스로 기적이 되기로 했다. 투리들을 위한 기적이 되기로 했다.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