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나의 몸을 공유하는 세상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본 거침없는 상상력
스릴러소설과 성장소설은 물론 풍부한 심리묘사로 사실적이며 역동적 역사전쟁소설을 썼던 김동하 작가가 이번에는 새롭게 SF 액션스릴러 소설로 돌아왔다.
2032년, 강력한 바이러스로 인해 국가 간의 왕래가 단절된 세계에 새로운 산업이 급부상한다. 이른바 ‘공유신체’를 활용한 관광산업. 공유신체는 타인의 신체를 일정 기간 임대해 사용할 수 있는 의식 동기화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호스트(임대인)가 게스트(임차인)에게 비용을 받고 신체를 대여해주는 식이다.
근미래 배경의 SF소설이지만 마약, 인신매매 등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 전직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성격을 띠는데, 주인공이 신체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건 해결에 난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소재인 SF 요소가 적절히 연결되어 색다른 쾌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으로 작용한다.
“공유신체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전직 형사, 가족에 깃든 어두운 의식을 뒤쫓다
전직 형사인 노수열은 6년 전 교통사고로 기억 일부를 잃고 하반신이 마비된 채 ‘달고나 여행사’라는 낡은 상가를 운영한다. 그날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손녀를 위해 그의 딸 노가은은 로열 등급 호스트로 일한다. 로열 등급 호스트는 타인에게 몸을 대여해주는 공유신체 산업에서도 가장 제약이 덜한, 모두가 기피하는 등급이다.
사건은 손녀인 하도희가 공유신체 재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벌어진다. 재활치료사의 의식으로 움직이게 된 하도희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게스트가 공유신체로 벌인 일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노가은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 모든 일이 6년 전 자신이 쫓던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한 노수열은 손녀를 되찾고 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형사의 손바닥에 그려진 조악한 달고나 그림. 그것을 단순한 낙서로 여길 수 있을까.” (77쪽)
이야기는 주요 인물을 둘러싼 사건을 시작으로 하나씩 배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형식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인물에 얽힌 사연을 집약적으로 묘사하여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생생한 상황 묘사와 분위기 연출이 더해져 드라마 같은 긴장감을 자랑한다.
먼 미래에 부유하는 불편한 진실을
눈앞의 현실로 가져오다
공유신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독자를 사로잡는 『달고나 여행사』는 높은 몰입감만큼 분명한 주제 의식이 장점이다. 타인의 몸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인간의 욕망과 돈을 위해 부당함을 견뎌야 하는 계층의 격차가 작품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숨 가쁜 서스펜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가의 문제의식은 독자로 하여금 미래에도 잔존하는 현재의 문제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이 획기적인 과학 혁명은 결국 가진 자의 특권을 극대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당연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은 가진 자의 예비 신체로 전락하고 있었다.” (74쪽)
작가는 소설 속 이야기가 얼마나 현실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를 향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낯선 세계를 탐독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전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큰 매력으로 느껴질 것이다.
■■■ 지은이
김동하 서스펜스가 강한 소설을 쓰고 있다.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천스토리창작과정을 거치면서 장르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소설 『달고나 여행사』 『운석사냥꾼』 『피아노가 울리면』과 성장소설 『독대』, 역사전쟁소설 『한산: 태동하는 반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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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난파선
공유신체
후드티를 입은 소녀
아빠의 방패
사라진 기억과 달고나
불량식품
AI와 삐삐
걸리버
주지육림(酒池肉林)
820: 즉시 탈출
소녀와 인형
내가 봤어
작가의 말
“젊은 사람이 달고나를 알아?”
순간 여자의 눈이 커졌다. 무슨 이유에선지 얼굴에서 당혹감이 번졌다.
“몰라요. 제가 얘 이름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여자가 수열에게 향했던 시선을 달고나로 옮기며 말했다. 그러나 수열의 시선은 여전히 여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닌데. 아까 분명 아는 것처럼…….”
“글쎄 모른다니까요.”
수열이 뭔가 더 캐물으려 했으나 여자는 반강제로 할아버지라 부르는 젊은 사람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아고고. 인석아, 할애비 무릎 나간다.”
젊은 사람은 늙은이처럼 짧은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젊은 사내의 몸을 대여하고 있다지만 오래된 습관까지 바꿀 순 없었다. 17~18쪽
다른 사람의 인생을 누리세요.
이보다 정확한 설명이 있을까. 공유신체란 한마디로 정리하면 돈으로 타인의 시간을 사서 쓰는 개념이었다. 그렇다 보니 윤리적인 반발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26쪽
수열은 그날의 사고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설사 그가 기억하지 못한 부분 중에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어쨌든 그로 인해 손녀가 6년째 의식불명인 건 뼈아픈 사실이었으니까. 31쪽
‘설마!’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 들었다.
‘도희가 깨어났다고?’
로비에서 본 도희를 닮은 소녀의 모습이 다시금 눈앞에 어른거렸다.
수열은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곧장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하강 버튼을 누른 뒤 유리창으로 다가가 병원 정문 쪽에서 회색 후드티를 입은 소녀를 찾았다.
후드티 입은 소녀가 도희라면……. 43쪽
가은은 의식을 잃기 전 기억을 동시다발로 떠올렸다. 도희가 사라졌고 그녀는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곳으로 달아나 왔고 그러다 마약 금단증상으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도희의 공유신체 재활치료 과정을 지켜보는 건 짜릿했다. 도희를 움직이는 게 치료사의 의식임을 알면서도 희열을 느꼈다. 움직이는 도희는 그 자체로 가은의 머릿속을 마비시켰다. 비록 지금 도희를 움직이게 하는 건 치료사지만 머지않아 도희가 직접 움직일 거라는 희망의 싹이 얼어붙은 땅을 들썩였다. 62쪽
“그건 그렇고 아들내미한테 선물 하나 들려 보냈는데. 불량식품을 애가 먹어도 되려나 모르겠군.”
“뭐?”
순간 홍성익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앞서 본 달고나의 이미지에 전혀 다른 달고나의 이미지가 섞여 들었다.
“이 개새끼가!”
홍성익은 냅다 아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익이 손에 들린 달고나가 하익이 혀에 닿아 있었다.
“아빠, 이거 맛이…….” 107쪽
“두 분 모두 동의서에 서명하셨으니 아실 테지만 한 번 더 주의 사항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접수를 돕던 공유신체 코디네이터가 손에 든 패드의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녀는 자신의 설명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두 사내 때문에 아침부터 진이 빠졌다.
“공유신체란 게스트가 임대한 호스트의 신체를 약정 기간 동안 점유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호스트의 의식은 일종의 동면 상태에 빠진다고 보시면 돼요. 저희는 이 상태를 의식 동면이라고 부릅니다.” 127쪽
수열의 머릿속에서 별장에 잠입할 방법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가은의 말대로라면 별장은 비밀리에 마약 클럽이 운영되는 장소일 것이다. 저 정도 은밀한 장소에서 마약 클럽을 운영하는 거라면 소수의 VIP만을 상대한다고 봐야 했다. 따라서 가은의 몸을 대여한 게스트도 그 VIP 단골 중 한 명일 거다. 152쪽
수열을 지금껏 살려둔 이유가 제보자와 접선한 일과 관련이 있는 거라면? 애초에 놈들의 목적은 수열의 목숨이 아니라 수열이 제보자에게 넘겨받은 증거일지도 몰랐다. 수열 또한 지난 6년간 제보자가 넘긴 그 증거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제보자에게 받은 걸로 추정되는 증거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열에게는 없는 그 증거물이 놈들에게는 존재하고 있을지 몰랐다. 놈들에게 있어 그 증거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수열뿐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사고로 수열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문제 요소가 사실상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204쪽
수열도 딱히 미련은 없었다.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도 아쉽긴 했다. 가은과 도희, 그리고 하도훈이 함께 있는 그림을 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가게에 있는 필름 카메라로 가족사진도 하나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라면 지금만으로 족했다. 그저 세 사람이 무사하면 되었다. _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