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냄새와 함께 찾아온 엄마의 사랑은 과연 진짜일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선주 작가의 따뜻한 성장 소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2권이 출간되었다. 『단지 커피일 뿐이야』는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기존의 가족을 허무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아, 주인공 산에게 갑작스럽게 새아빠가 생긴다. 새아빠의 이름은 브랜든.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집에서도 매일같이 커피를 내리고, 산은 새아빠의 등장 이후 온 집 안에 퍼진 커피 냄새가 역하기만 하다.
어느 날 산은 술을 마시고 브랜든의 카페 유리문을 부수고, 벌로 브랜든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산은 브랜든이 엄마와 카페 건물을 공동 소유했음을 알게 되고, 브랜든이 엄마에게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커피 냄새가 내게 찾아왔다
『단지 커피일 뿐이야』의 주인공 산에게는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새아빠가 생긴다. 새아빠의 이름은 브랜든. 아빠가 살아계실 적 자주 갔던 카페의 사장이다. 브랜든은 집에서도 매일같이 커피를 내리고, 산은 브랜든이 집에 함께 살게 된 이후 커피 냄새를 역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산은 커피 냄새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한다. 숨을 참아보기도 하고, 다른 음료에 커피를 섞어 마시기도 하고, 직접 커피를 내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산은 커피 냄새를 극복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커피 냄새가 자신에게 불편하다는 사실을, 역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커피 냄새’로 형상화되는 트라우마나 고통은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더 용기 있는 방식의 ‘극복’임을 작가는 산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고통은 인간의 존재 조건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고통 따윈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원고를 쓰는 동안 고통을 주시되, 고통을 받아들일 용기도 함께 달라는 기도문을 떠올렸다.
산이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용기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_작가의 말 중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청소년의
현실적이면서도 솔직한 감정들을 말하다
『단지 커피일 뿐이야』는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새로운 길과 함께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기존의 가족을 허무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산과 산의 엄마, 그리고 브랜든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는, 어른과 아이 모두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과 함께 성장하는 인물 중 산의 친구인 재범의 사랑 이야기는 소설에 밝은 분위기를 더해주면서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이성 관계에 있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 볼 여지를 주기도 한다.
“어제 연락 씹었더니 전화만 30통 가까이 왔어. 쟤 사이코지?”
오로라가 침을 삼켰다.
“쟤 전 여자친구한테도 막 집착하고 그랬어? 나 무서워서 나왔어.”
오로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 재범이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도끼 들고 쫓아오면 어떤 여자라도 넘어간 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_본문 중
또 브랜든의 전 여자친구, 문제의 블로그 ‘아무리 마셔 봤자’의 주인 등 잠깐씩 등장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존재감도 이 책을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이들은 잊을 만하면 등장해 때로는 산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산이 브랜든에 대한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브랜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랑도 트라우마도, 청소년들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일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을 겪을 때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실수들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안감을 『단지 커피일 뿐이야』를 통해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고 마침내 산과 재범처럼 한 발짝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선주
『창밖의 아이들』로 제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 소설 『맹탐정 고민 상담소 1,2』 『열여섯의 타이밍』 등과 동화 『아미골 강아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실종 사건』 『할머니와 나의 이어달리기』 등이 있다. 『마구 눌러 새로고침』 『열다섯, 그럴 나이』를 포함한 여러 편의 청소년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단지 커피일 뿐이야
작가의 말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일 년도 안 됐을 때 아빠의 단골 카페 사장과 결혼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이 농담이 아니었듯이 엄마의 재혼도 농담이 아니었다. 어어어, 하다 보니 새아빠, 브랜든과 한집에 살게 됐다.
아빠가 자주 앉아서 움푹 들어간 소파 자리엔 이제 브랜든의 재킷이 놓여 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던—아니, 인지하지 못했던—우리 집에 브랜든이 내린 커피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커피란 브랜든 그 자체가 됐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모든 게 달라진 생활이었다.
_8쪽
만약 아빠가 길을 잘못 들어 런던 커피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런던 커피에 갈 일도 없었겠지. 그럼 브랜든이 엄마를 위로해 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생전 안 하던 산책을 하고, 생전 안 잃어버리던 길을 잃어버려 런던 커피까지 오게 된 건 운명일까? 그럼 아빠가 죽은 건? 엄마가 브랜든과 재혼한 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따위 운명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어떤 우연은 인생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생각은 커피 냄새처럼 내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_33쪽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일 년 만에 엄마가 재혼했고, 나는 그 슬픔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는 게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 취향의 이성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그럼 슬픔은? 슬픈 와중에도 똥을 싸고 학교를 가고 밥을 먹고 이성을 보며 침을 흘린다. 그렇다면 슬픔도 별것 아닌 거 아닐까? 내가 너무 슬픔을 확대해석하는 걸 수도.
그런데 나 정말 슬픈데?
_45쪽
“내 생각엔 말이야.”
여자가 따라 일어섰다.
“브랜든이 사기꾼이 아니란 걸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 아니야?”
“아니요, 아닌데요? 브랜든은 사기꾼이에요! 그 새끼는 사기꾼이라고요!”
마지막에 소리를 빽 질렀다. 가게 안에 사람이 많았고 그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는 것도 알았지만, 목소리가 제멋대로 나갔다. 순간 카페 안에 있는 커피들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냄새로 나를 거미줄처럼 옭아매는 듯했다. 내가 벗어나려 할수록 거미줄은 나를 더 감아왔다.
벗어나야 해, 벗어나야 해.
그러나 나는 안다. 벗어날 수 없음을.
_96쪽
컴컴한 밤, 땀이 날 정도로 골목길을 뛰니 가슴이 후련했다. 내가 살았던 골목골목을 지나 아빠와 함께했던 골목, 재범이와 함께했던 골목, 그리고 브랜든의 카페가 있는 골목을 지났다. 아빠와 함께했던 골목을 지날 땐 아빠가 바람이 되어 나와 함께하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 골목들이 그대로일지 모르겠지만, 먼 훗날에도 이곳을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마음속에 자라났다.
_117쪽
“왜요?”
브랜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 왜요?”
“똑같아서.”
“뭐가요?”
“……너랑 네 아버지랑. 그 자리, 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자리였잖아. 젠틀하셨어. 나를 존중해 주는 기분이었어. 왜, 그런 손님들 많잖아. 내가 돈 냈으니까 너는 커피나 내려라, 그런 거. 근데 네 아버지는 내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한 장면도 안 놓치려고 하셨어. 그럼 막 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그래서 네 아버지 오시면 원두도 더 신경 쓰고 그랬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커피를 드려서 다행이라고, 아직도 생각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브랜든이 아빠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무엇보다 아빠 이야기를 먼저 꺼내서 놀랐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나를 비롯한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은 아빠에 대해 말하길 꺼렸다. 상처였기 때문에 밴드를 붙인 후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처에는 공기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가끔은 약을 바른 후 밴드를 붙이는 대신 공기를 통하게 해 줘야 한다.
_130쪽
“만약 네가 지금의 커피 냄새를 이겨 내도 어디선가 또 다른 커피 냄새가 불어올 거야.”
“무슨 소리예요?”
브랜든이 다 내린 커피를 고양이가 파란색 물감으로 그려진 도자기 잔에 따랐다.
“내 이야기를 하는 거야. 뭔가를 극복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 만약에 그걸 극복했다고 해도 또 다른 시련이라고 할까, 그런 게 찾아오기도 하고. 인생이 그래.”
“거창하네요.”
“거창한 게 아니야. 내가 인생을 더 살았다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아니고. 커피 냄새 같은 걸 늘 가지고 다니는 게 인생 같더라고. 그건 절대 없어지지 않아. 없어진 것 같더라도 조금만 방심하면 뒤에서 슬쩍 나타나서 나 여깄어, 하는 거지. 나도 그런 거 있어. 커피 냄새 같은 거.”
_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