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지금도 어디에선가 신드롬은 시작되고 있다
다섯 작가가 선보이는 ‘신드롬’ 테마 앤솔러지
‘YA!’ 시리즈 스물여덟 번째 책으로 『너무 길지 않게 사랑해줘』가 출간되었다. ‘YA!’에서 선보이는 첫 앤솔러지 작품으로, 우리 사회를 둘러싼 익숙하면서도 섬뜩한 현상인 ‘신드롬’을 다룬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 속에서 각기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드롬은 현 세태를 면밀하게 조명하고 독자에게 미래를 예측해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뉴스에서 다음과 같은 소식이 연일 보도된다고 가정하자. ‘○○ 신드롬, 전국민적 열풍’. 가족과 친구들, 학교나 회사 앞의 풍경도 하루아침에 뒤바꿀 만큼 거대한 유행이 도래한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일상을 뒤흔들 만큼 유행이 사회에 깊게 스며든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직은 상상 같기도, 한편으로는 이미 현실에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한 신드롬이 이제 다섯 편의 이야기로 탄생해 독자의 눈 앞에 펼쳐진다.
■■■ 지은이
강지영
장편소설 『인간보다 인간적인』 『죽지않고 어른이 되는 법』 『굿 드라이버』 『살인자의 쇼핑몰』(1, 2권) 『페로몬 부티크』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하품은 맛있다』 『프랑켄슈타인 가족』 『엘자의 하인』 『심여사는 킬러』, 소설집 『살인자의 쇼핑목록』 『개들이 식사할 시간』 『굿바이 파라다이스』 등이 있다.
민지형
소설가, 드라마 작가. 중학생 때 시험 기간이 끝난 교실에서 친구들과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후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그 세계를 오래오래 산책하는 중.
장편소설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와 TV 드라마 〈레버리지: 사기조작단〉의 각본 등을 썼다.
배예람
앤솔러지 『대스타』에 「스타 이즈 본」을 수록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물 밑에 계시리라』, 소설집 『좀비즈 어웨이』, 에세이 『소름이 돋는다』 등을 펴냈다. 느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쓰는 삶을 목표로 한다.
양은애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시나리오를 써왔다. 2021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23년 청소년 소설 『기억을 넘어 너에게 갈게』를 출간했다.
최세은
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써 내려간 소설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여전히 쓰고 있다. 장편소설 『세벽』을 썼다.
■■■ 차례
배예람, 「사랑보다 까눌레」
민지형, 「너무 길지 않게 사랑해줘」
최세은, 「오차범위는 작게」
강지영, 「1나노그램만큼 사랑해」
양은애, 「시크릿 캔디」
■■■ 책 속에서
장기 연애 휴식자는 국민 연애 관리공단에 ‘일 년 이상 연애하지 않았음’으로 등록된 사람을 의미한다. 한번 장기 연애 휴식자로 분류되는 순간, 국가의 엄중한 관리가 시작된다. 틈만 나면 날아오는 우편물, 끝없는 전화와 문자, 국민 연애 관리공단 앱에서 보내는 알림. 그 모든 것들이 주영의 연인을 찾아주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안달했다. (배예람, 「사랑보다 까눌레」) (12~13쪽)
주영은 심드렁하게 물었다.
“난 어디가 잘못된 걸까요?”
“잘못되었냐고요?”
“인간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고작 연애 좀 안 했다고요?”
“그게…… 좀 다르다니까요. 설명을 못 하겠네.” (배예람, 「사랑보다 까눌레」) (31쪽)
‘쇼츠’라 불리는 이름의 짧은 영상이 세상에 처음 나온 지도 어느덧 오십여 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 템포와 리듬, 길이에 완벽히 익숙해졌다. 모든 것이 짧고 간명한 시대였다. 그보다 길고 복잡한 것, 구구절절한 것은 견디지 못했다.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16부작 드라마, 세 시간짜리 영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였다. (민지형, 「너무 길지 않게 사랑해줘」) (58쪽)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요?”
“네.”
이수에게는 정원의 그 말이 무척 알쏭달쏭하게 들렸다. 시간이란 건 항상 때우는 것이거나, 아끼는 것이 아니었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뭘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이수는 정원을 앞에 두고 여태 해본 적 없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민지형, 「너무 길지 않게 사랑해줘」) (83쪽)
선택지 신드롬.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불렀다고 한다.
게임 같은 UI. 내 일상과 연관되는 질문과 선택지. 선택지에 따른 누적 가산점. 더 나은 인생으로 방향을 정한다는 메인 키워드. 빅데이터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탄생한 일상 알고리즘은 부르기 쉽게 ‘선택지 신드롬’이 되었다. (최세은, 「오차범위는 작게」) (109쪽)
민우 형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그 순간에 나온 선택지였다.
앞으로의 공격에 대해
- 피하면서 다리를 접질린다. (전치 2주)
- 피하지 않고 공격한다. (상해 2주)
“뭐야?”
남의 선택지를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민우 형의 떨리는 음색이 바로 귓가에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왜 이래? 고장 난 거야?” (최세은, 「오차범위는 작게」) (134쪽)
댓글을 보고 깨달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회피형 인간이라면 내가 그렇게 특별한 찌질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신병도 아니고 태어나 보니 이런 기질이라는데 어쩌란 말인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 살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눈 뜬 자였다. 나는 회피형 인간 수십만 명의 얼굴이 나와 닮았을 거라 생각했다. (강지영, 「1나노그램만큼 사랑해」) (146~147쪽)
나는 부엌과 거실을 잇는 벽에 매달린 앤티크 벽시계를 바라봤다. 홈 캠이 새카만 더듬이처럼 부엌을 향해 움직였다. 갑자기 각도가 바뀐 걸 보면 엄마가 실시간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회피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강지영, 「1나노그램만큼 사랑해」) (167~168쪽)
국정감사 당일,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단연 파피랜드였다. 현재 청소년 사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파피캔디 때문이었다. 고작 알사탕을 만든 식품 회사가 이렇게 국정감사까지 나와야 할 정도인가 싶지만, 파피 캔디를 빼고는 현재 청소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선풍적인 유행이기에 국정감사에 파피랜드 대표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의견이었다. (양은애, 「시크릿 캔디」) (183쪽)
“중고 거래 앱에서는 얼마 정도 해?”
“개당 만 원 정도요.”
유주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수현의 눈이 커졌다. 이천 원짜리 사탕 한 봉지에 든 사탕 한 개가 만 원에 판매되는 건 엄청난 폭리였다. (양은애, 「시크릿 캔디」) (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