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오늘은 밤을 새워 보자.
모든 것이 새로워질 내일을, 미래를 기다리면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1권, 『내일이면 다시 태어나는 거야』가 출간되었다. 『내일이면 다시 태어나는 거야』는 『3월 2일, 시작의 날』 『한 여름 방학의 꿈』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에 이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 속 시리즈,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12월 31일, 섣달그믐이라는 하나의 시간적 배경에서 19살 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신비롭고 혼란스러우며 가끔은 희한한, 하지만 언제나 다정한 짧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는 청소년과 성인에게 있어 ‘특히 의미 있는 날’,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날’에 벌어지는 일들을 판타지, SF, 리얼리즘 등 다채로운 장르로 경험해볼 수 있는 신선하고 색다른 기획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독자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도록 청소년문학 작가와 성인문학 작가가 한 주제에 함께 참여하는 구성 방식을 택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에서 나온 앤솔러지들은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앤솔러지와도 명확한 차별점을 두었다. 2024년 한 해 동안 사계절을 바탕으로 3월 2일(봄), 여름 방학(여름), 9월 모의고사(가을), 섣달그믐(겨울)을 주제로 한 네 권의 앤솔러지가 출간되었다.
#앤솔러지 #섣달그믐 #무한루프 #리얼리즘 #판타지 #트라우마 #사이비종교
■■■ 지은이
문이소
2017년 「마지막 히치하이커」로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주의 집』 『마구 눌러 새로고침』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으니』 등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고 단편집 『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경장편 소설 『다꾸의 날』을 펴냈다.
소향
202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 소설 『화원귀 문구』, SF 소설집 『모르페우스의 문』, 장편 동화 『간판 없는 문구점의 기묘한 이야기』가 있다. 『촉법소년』 『빌런은 바로 너』 등 여러 앤솔러지에 작품을 수록했다.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이도해
제12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도 말과 글이 서툴러, 작가라고 불리기 부끄럽다. 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은 반드시 통할 것이라 믿는다. 지은 책으로 『우리 반 애들 모두가 망했으면 좋겠어』 『터치!』가 있다.
하유지
산과 고양이, 탄수화물과 각종 형태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독고의 꼬리』 『3모둠의 용의자들』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 『우정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내 이름은 오랑』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새벽의 방문자들』 『나를 초월한 기분』 등이 있다.
황모과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2021・2024년 SF어워드를 수상했다. 소설집 『밤의 얼굴들』 『스위트 솔티』, 중편 소설 『10초는 영원히』 『노바디 인 더 미러』, 장편 소설 『서브플롯』 『말없는 자들의 목소리』 『그린 레터』 등을 출간했다.
■■■ 차례
또다시, 섣달그믐_하유지
모서리의 파수꾼_소향
쌀식빵으로 할 수 있는 열세 가지 모험_문이소
홍대에는 갈 수 없어_이도해
꼴찌를 위한 계절_황모과
■■■ 책 속으로
“민지섭 너, 나한테 고백하고 하루도 안 지났는데 어떻게 내 앞에서 이래? 양다리야? 미쳤어?”
“고백? 헤어진 지가 언젠데 너야말로 왜 이래? 자꾸 이상하게 굴래? 아영이도 있는데 저 목도리를 하고 나오질 않나…….”
“헤어져?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겨우 이틀짼데 뭘 헤어져?”
“은채야, 너 3월부터 재수 학원 다닌다고,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다면서 지섭이한테 이별 통보 했잖아. 그때 지섭이 엄청 힘들어했는데 왜 또 이래.”
3월? 지금 1월인데? 재수 학원? 나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이별 통보? 말했다시피 이제 겨우 시작이거든?!
_23~24쪽
은채는 오십구 분 오십구 초에 잠들어 버려서 작전에 실패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말도 안 되지. 그럴 리가 없어! 앞으로도 열흘 동안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몇 분을 버티지 못할 리가.
잠들지 않았는데 내년 12월 31일로 건너뛰는 상황도 가정해 보았다. 그때쯤이면 아영과 지섭은 결혼이라도 했으려나? 나는 졸업하기 무서워서 한 학기를 마지막 물 한 모금처럼 남겨 놓고 또 휴학했을지도?
_38쪽
며칠만 있으면 스무 살이 된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나를 아이와 성인으로 가르게 될 그 날은 살면서 올라섰던 그 어떤 경계선보다 높아 보였다. 여느 날과 똑같은 해가 뜰 테지만, 12월 31일 자정이 지나면 마법처럼 성인이 되는 것이다. 낮과 밤의 경계, 계절이 바뀌는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에 이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는 경계의 날을, 나는 애써 외면하고만 싶었다.
_48쪽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후가 나에게만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지후의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내게 뭔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참 괜찮은 너에게라는 말처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은 낮이 짧아 다행이었다. 한낮이었다면 붉어진 얼굴을 들켰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낮과 밤을 가르는 경계의 시간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_73쪽
액괴가 울룩불룩 움직이자 선생님이 걸치고 있던 옷가지와 반지, 목걸이, 크록스가 후두둑 떨어졌다. 선생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액괴는 비명을 지르며 실습실 뒷문으로 뛰어가던 현지 패거리도 꽁꽁 감쌌다. 곧 바닥에 실내화와 실습복과 휴대폰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였다.
다른 애들은 도망도 안 가고 멍하니 서 있었다. 민아도 그랬다.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_81쪽
긴 하루가 끝났다. 열아홉 살도 딱 하루 남았다.
민아는 한강이 훤히 보이는 503호에 들어갔다. 창밖에 희끗희끗한 싸라기눈이 분분히 날렸다. 왕언니랑 아저씨는 집에 도착했을까. 민아가 케이구에게 넌지시 물었다.
“있잖아, 넌 사람을 삼키면 먹고 싶지 않니?”
— 사람에 따라 다르지. 친밀한 관계의 개체라면 당연히 먹고 싶지 않네. 사람도 마음을 주고받은 동물은 먹지 않잖나.
_104쪽
오늘은 청소년 딱지를 떼기 만 하루 전날이다. 내 친구들은 진작부터 설레고 있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12월 31일에 우르르 모여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홍대로 가고 싶지 않은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분명하고, 적당히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내 친구들에게, 그러니까 보통의 열아홉에게 설명하기 힘든 구질구질한 이유 말이다.
_120쪽
“죽상 하지 말고 웃어. 아버지 나으실 테니까. 원래 살아 있다는 건, 항상 변할 가능성이 있단 뜻이야. 죽으면 끝나지만, 살아 있으면 나아질 수도 있어.”
하민의 손끝은 따듯했다. 그때 진심으로, 나는 이 애의 손끝이 항상 따듯하길 바랐다.
“어른이 되어도 그럴까.”
“당연하지. 어른이 평생 어른일려구? 나이 더 들면 노인도 되고, 울고 싶을 땐 애로 돌아가서 땡깡 피우기도 하고 그런 거지. 그러다 깨달음을 얻어 득도하면 부처나 예수 뺨치는 성인도 되는 거고. 어른이 어떻게 어른이라는 한 모습으로 고정되겠어?”
정하민은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내 입꼬리를 계속 위로 밀어 올리면서.
_143쪽
“모두가 1등이지만 1등이라는 순위는 사실 아무런 변별력을 갖지 않아. 아예 무의미하다고. 근데 취업할 땐 분명한 격차가 있어. 같은 1등을 해도 원스타 회장 아들, 학교 이사장 손자는 진입부터 처우가 다르지. 애초에 많은 자원을 가진 가정의 자녀들만이 선대의 재산을 불리거나 유지하는 일에 복무하는 거야. 그러니 아무리 1등이어도 예외 없이 패자가 존재한다고!”
_155쪽
치밀어 오르던 감정의 종류가 조금씩 바뀌었다. 남의 데이터를 함부로 빼간 삼일을 향한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중요한 걸 박탈당한 것 같은 상실감도 사라졌다. 부모님께 돌아가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느낀 패배감과 민망함도 희미해져 갔다.
그래, 세상은 원래 이랬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룰과 규칙을 거부하고, 누군가에 의해 저장 장치를 강탈당한 덕에 창 너머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존재했지만, 당연하게 보지 못하고 있었던 풍경이었다.
_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