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김진경 ‧ 김탁환 ‧ 반디 ‧ 공지영 ‧ 정유정 ‧ 정호연 ‧ BTS의 번역가
한국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1세대 번역가 임영희의 고군분투 번역 에세이!
『나는 파리의 한국문학 전도사』는 번역가이자 기획가인 임영희가 25년간 프랑스에 한국 작품 250여 권을 번역‧소개하며 경험한 고뇌, 환희, 절망, 기쁨의 나날들의 기록이다. 번역가 임영희의 이력은 다소 순탄하지 않다. 저자는 교육학을 전공하기 위해 프랑스에 유학을 떠났다가, 박사학위를 위한 7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급작스레 한국문학 번역가로 인생의 항로를 변경한다. 유럽에 동양인이 드물었던 1990년대 프랑스에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교육가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한국 작품, 한국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삶은 180도 전환되었다.
앵코럽티블 문학상, 카멜레온 문학상 수상작 번역
프랑스 필립 피키에 출판사의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부장을 맡다
김진경 작가의 『고양이 학교』가 프랑스 학생들이 직접 투표하는 유서 깊은 앵코럽티블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18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김탁환 작가의『방각본 살인사건』이 프랑스 독자의 선택을 받아 카멜레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곳에는 임영희가 있었다. 저자는 뛰어난 감식안과 문학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으로, 꾸준히 한국문학을 소개하기 위해 프랑스 출판계를 두드렸다. 프랑스의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한국문학 컬렉션을 론칭하며 그 기획부장을 제의해올 정도로, 저자의 열정은 대단했다. 번역한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하고, 저자를 프랑스로 초청해 직접 독자들과 만나는 기쁜 날들과 고심해 고른 번역 작품이 정치적 문제로 비난을 받던 날들이 25년의 하루하루를 꼬박 채웠다. 그러나 어떤 좌절이나 실망에 굴하지 않고, 저자는 꾸준히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 열정으로 지금까지 프랑스에 소개된 한국 작가는 조정래 ‧ 황석영 ‧ 김탁환 ‧ 공지영 ‧ 정유정 ‧ BTS 등에 이른다. 이는 변방의 한국문학이 중심으로 들어오기까지, 번역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해온 저자의 공력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
25년간 프랑스에 한국문학을 번역‧소개하며 경험한 현장들
문학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번역으로 ‘먹고사는’ 이야기
번역가의 삶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쉽지 않다. 저자는 끊임없이 ‘전업 번역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립한 몇 가지 실무적인 방법들을 알려준다. 각기 다른 두 언어가 가진 특징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 나라의 문화・사회적인 이해와 시각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특히 단어나 문장 표현의 반복을 싫어하는 몰리에르의 언어로 매끄럽게 옮기는 일이란 여간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이 아니다.”(188쪽) 또한 번역자는 번역할 책에 관해 누구보다 깊게 알고 있어야 한다. “좋은 번역이란 작가의 의도, 정신, 영혼을 배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원문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를 취해 보다 매끄럽고 유려한 현지어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단어들에 집착하지 않고 문장이나 문맥의 뉘앙스를 보다 잘 살리는 번역이다.”(191~192쪽) 이는 기획가이자 번역가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문학 번역가들에게 주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쓰는 법, ‘열정’으로 하는 문학번역이 결코 열정에서 끝나지 않는 법, 주관을 가지고 책을 골라 소개하고 번역하고 홍보하는 법, 무엇보다 타국에 어필할 만한 한국문학의 포인트를 선점하는 법에 대한 자신의 팁을 건넨다.
“나의 삶은 간단하다. 읽고 쓰고 번역하고 소개하는 삶.”
임영희 번역가가 25년 동안 꾸준히 쌓아온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과거 제3세계 문학으로 여겨졌던 한국문학이 프랑스 출판계에서 어엿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꿰뚫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한국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현지에 살며 경험한 번역가의 진단은, 한국문학 번역가와 기획가를 꿈꾸는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하는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1세대 번역가의 이 놀라운 도전기를 통해, 한국문학과 ‘K-컬쳐’의 미래를 살펴보고, ‘한국문학 전도사’의 진정성 넘치는 유쾌함에 빠져보시기를 바란다.
■■■ 지은이
임영희
한국 대학에서 교육사-철학을 강의하다가 1988년 프랑스로 유학 왔다. 학문의 길을 걷기 위해 파리 제5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한국문학 번역가의 길로 전향했다. 현재 파리에서 한국문학 번역가 및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필립 피키에 출판사 내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을 담당하고 있으며, 여러 프랑스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성인 및 아동문학에서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 번역해오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장 파리에서 한국문학의 전도사가 되다
방황의 늪에서 길을 찾다 / 고배의 잔을 마시다 / 희망의 불씨 /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 나를 도운 한 귀인 / 전업 번역가가 되기 위한 첫 행보 / 앵코럽티블 문학상과 프랑스 전국 순례 / 나를 행복하게 한 일들 / 필립 피키에 출판사의 한국문학 컬렉션을 맡다 / 논란 그리고 작은 승리감 / 지적인 비평이 아닌 이해관계에 얽힌 감정적인 비난 / 결국은 세계가 알아준 작품 / 카멜레온 문학상과 김탁환 작가와의 재회 / 옥세르 국제 도서전과 공지영 작가의 프랑스 방문 / 사엘라 만화 출판사와의 인연 / 몽펠리에 한국문화 축제 / 방탄소년단과 아미와의 인연 / 한국문화, 프랑스를 물들이다
2장 운명의 방향
박사학위 / 첫사랑과 프랑스 / 절망 속에서 울린 한 통의 전화 / 첫 강의에서 겪은 신선한 충격 / 불만족스러운 안일함인가 위험을 무릅쓴 전진인가! / 프랑스 대학의 발견 / 살아 숨 쉬는 지식 유한한 생명을 지닌 지식 / 언어장벽과 끝없는 시행착오 / 세미나와 우울한 나날들 / 높디높은 분석의 담을 넘어 / 또 다른 벼랑 앞에 서다
3장 한국문학 번역가의 일상과 과제: 현재와 미래
프랑스의 한국문학 현장 /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프랑스 작가들의 등장 / 번역의 난제들 / 기쁨과 실망감 / 한국문학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 아동문학 작가의 길 / 작가라서 행복한 나날들 / 나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번역가의 일상 / 혼자만의 시간, 그리고 친구들과의 시간
에필로그
■■■ 책 속에서
학위논문을 마친 후, 나는 그동안 밀쳐두었던 한국 인문과학 및 문학작품 들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으면서 이 책들을 프랑스에 한번 소개해봤으면 하는 막연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프랑스 출판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내겐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너무도 막막하기만 한 길이었다. 그런 내게 그 공고는 어두운 길을 반짝 밝혀주는 한 가닥 빛줄기와도 같았고,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16쪽)
2007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필립 피키에 출판사 대표님이 내게 피키에 출판사 내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을 담당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것은 좋은 소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선 한 출판사의 기획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번역 일거리를 찾지 못할까 봐 늘 전전긍긍하는 프리랜서의 불안감을 조금은 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내가 검토해서 선택하는 작품들을 번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번역가로서는 뭐랄까, 일종의 특혜를 받는 위치에 서게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45쪽)
맛있는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공 작가의 번역 차기작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기회다 싶어 이미 한번 소개한 바 있는 『도가니』를 적극 추천했다. 처음 소개했을 때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꺼려했지만,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고 온갖 종류의 성폭행 사건 고발이 잇달아 난무하는 프랑스의 당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볼 때 『도가니』가 동떨어진 딴 세상의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필립 대표님은 흔쾌히 출판하겠다는 승낙을 했고, 이 작품은 2020년 9월에 『침묵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81~82쪽)
프랑스에서 소위 한국 ‘현대문학’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벌써 30년이 넘는다. 한국문학이 프랑스 및 프랑스어권 독자들과 진정으로 만나게 된 것이 1990년대 초부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 작품들에 대한 프랑스 출판사들의 관심이 이후로 점차 높아졌는가 묻는다면, 내가 보기엔 그 관심도가 경제 사이클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1990년대 초, 특히 프랑스의 두 출판사 악트쉬드와 필립 피키에가 한국 현대소설 출판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상업적으로 별 성과가 없자 악트쉬드는 출판 속도를 늦추었고 피키에는 출판을 거의 멈추었다. (181~182쪽)
한국어에도 프랑스어처럼 현재, 미래, 과거, 반과거, 대과거 등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에서는 이러한 시제들을 프랑스어만큼 엄격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 작가는 현재에 일어난 일을 과거 동사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표현할 수도 있다. 대과거나 반과거 동사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주 드물게 사용한다. 따라서 한국어 독자는 사건의 시간을 동사의 시제와 관계없이 주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추측한다. 더욱이 프랑스어 문어에는 한국어에는 없는 단순과거가 있어서 어떤 사건이나 행동이 일시적이고 단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때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반면 한국어 문어의 경우, 단발적인 것이나 반복적인 것을 모두 현재완료형 과거 동사 하나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188~189쪽)
번역에서 또 하나의 난제는 원문과의 충실성 문제다. 원문에 아주 충실한 번역이 나을까 아니면 원문으로부터 좀 더 자유를 취한 번역이 나을까? 첫 번째는 직역이 될 우려가 있고 두 번째는 작가의 의도나 정신을 배반할 위험이 있다. 훌륭한 번역가란 이 두 극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말했다. 번역에서 충실성이란 단어와 단어가 아닌, 세계와 세계를 충실하게 옮기는 것이며, 번역가란 단어의 무게를 재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의 무게를 재는 사람이다, 라고. (191쪽)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고 향상시키는 것은 결국 번역가들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단어와 씨름하는 번역 작업은 거의 중노동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20년 넘게 한국문학 번역계에 몸담아오고 있는 나는 이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자부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번역 지원금을 출판사 구좌가 아닌 번역가에게 바로 지급해야 하는 이유를 번역원에 누누이 설명하고 강조해서 한동안 그렇게 시행되었다. (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