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저자 장아미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행일 2025년 4월 11일
분야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가격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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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서른한 번째 안내서. SF, 호러, 판타지, 청소년문학 등 다양한 분야와 소재를 넘나드는 장아미 작가의 첫 번째 연작소설집이다.

 

장아미의 탁월한 상상력과 세련된 서사 전개를 살펴볼 수 있는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세 편의 소설 모두 한국적인 요소가 담긴 변신담으로, 인간과 (귀)신의 영역이 공존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두 세계가 어떻게 다르면서도 유사한지, 그 간극을 다정하게 포개는 사랑과 우정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토록 애달프게 흐느끼고 있는 건 누구일까.

짐승일까. 귀신일까. 아니면 도깨비일까.”

 

사랑을 시험받는 혼란한 틈새에서

서로의 믿음을 견고히 만드는 애틋한 변신담

 

첫 번째 소설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의 주인공 은비는 함께 사는 검은 고양이 ‘포’를 따라 창밖을 보다가 선약이 있었단 걸 뒤늦게 떠올리며 급히 약속 장소로 향한다. 일 년만에 만난 재희는 이전과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은비는 그 사실을 애써 회피하고, 재희와 동네를 거닐며 옛 기억을 나눈다. 그들 사이에 긴장감 섞인 설렘이 오가던 중 마을 뒤편 산모퉁이에서 깜빡이는 불빛과 희미한 웃음소리를 발견한 은비가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가려 한다. 이상함을 느낀 재희가 이를 만류하다가 오래전 은비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은빛 방울 키 링을 건넨 후 홀연히 사라진다.

은비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금줄을 넘어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기이한 야시장이 펼쳐져 있고, 주변을 오가는 이들은 마치 축제를 즐기는 듯 북적인다. 광대의 묘기를 구경하던 은비는 주사위 놀이를 하는 이들 틈에 선다. 곁에 있던 한 할머니가 은비에게 주사위 놀이에 참여해볼 것을 권유하는 순간, 갑자기 낯선 여자애가 나타나 은비의 팔을 붙잡으며 그동안 자신을 찾아다녔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살아 있는 인간이 쉽게 갈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을 배경으로, 기묘한 분위기 속에 예상치 못한 순간을 계속 잇는다. 금줄을 넘어 들어간,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곳에서 은비는 인간인 자신을 노리는 이들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혼란한 상황 속에 은비 앞에 다시 나타난 재희는 은비에게 자신을 믿는지 다소 뜻밖의 질문을 해온다. 반가운 만남도 잠시 은비는 고양이로 변신하게 되는데…… 앞으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 발짝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떨고 있을 때 은비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아주 가까운 어딘가, 심지어 은비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33쪽)

 

 

두 번째 소설 「산중호걸」에는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삵이 등장한다. 저녁이 시작된 어느 신도시, 어수선한 인파에서 떨어져 나온 삵은 생선구이집 근처에서 떠도는 ‘귓것’들을 무구로 쫓아낸다. 삵의 정체는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닌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으로, 직녀 뜨개방의 주인인 ‘직녀’와 깊은 인연이 있다.

백운은 뜨개방으로 돌아와 직녀에게 다정하게 인사한 뒤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신인 ‘개화’와 시원한 바다를 몰고 온 ‘파도’까지 한데 모인다. 그들은 매년 백운의 생일마다 직녀의 뜨개방에 찾아와 서로에게 “안부”와 “생존 여부”를 나눈다. 일종의 신년회가 시작되려던 찰나 초대한 적 없는 어린 신 ‘도요’가 뜨개방에 방문하면서 오랜 친구 ‘운겸’의 부고를 듣게 된다.

예상치 못한 부고는 뜨개방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상실의 슬픔으로, 변해가는 세상을 체감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전능한 신의 죽음을 어느 누가 쉽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들은 급변하는 인간사에 따라 자신들의 “시대” 역시 끝나가고 있음을 가볍게 자각한다. 이내 멈췄던 잔치가 다시 이어진다. 새로운 섬의 주인이 된 어린 신과 저물어 가는 운명을 천천히 체감하는 신들의 흥겨운 말소리가 이어진다. 그 틈 속에서 각국의 신과 굶주린 귀들이 뒤섞여 생과 사의 묵직한 의미를 가벼이 뛰어넘는다. 서로를 향한 안녕과 사랑, 다정한 애도가 이어지는 동안 직녀가 짜는 편물의 무늬는 존재와 운명을 “잇고 또 지우”는 “번다한 궤적”을 아련하게 남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다가 허물어지길 무한히 반복할, ‘삶’이라 명명하게 될 것이다.

 

 

“손님 맞느라 수고 많았어요.”

백운이 미소 띤 얼굴로 직녀의 허리에 두 팔을 두르며 속삭였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무척 즐거웠어요.”

직녀의 손에서 흘러내린 편물이 흔들의자에 떨어졌다. 뜨개바늘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어떤 밤은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기억 속에 머물다 죽음으로 소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85~86쪽)

 

 

내가 얘기한 적 있던가요? 셀 수 없이 많은 꿈을

동시에 꿀 수 있다는 거 말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을 기꺼이 껴안을 때

새롭게 태어나는 사랑을 닮은 세계

 

마지막 소설 「능금」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던 ‘능금’이 어느 날 ‘해수’라는 의문의 남자를 만나며 시작된다. 능금은 옷이 갈가리 찢어질 만큼 부상을 입고 숲속에 쓰러진 해수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해준다. 해수의 심상치 않은 상처를 보며 익숙한 경계심을 느끼던 능금은 우리가 만난 적 있노라고, “당신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말한다. 두 사람에겐 어떤 과거가 놓여 있을까? 소설은 많은 말을 아낀 채, 코끝이 천천히 시려워지는 겨울 숲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어느덧 두 사람은 몸과 마음을 섞을 만큼 가까워진다. 앞으로 행복만이 남았으리라 믿게 될쯤, 해수는 자신이 인간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다움과 거리가 먼 신적인 존재로 변하며, 억제하지 못한 자신의 본성 때문에 타인을 해하기 전 스스로를 사냥하길 택한다. 능금은 낯설고 두려운 해수의 모습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해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시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해수가 과연 신인지, 괴물인지, 혹은 또 다른 존재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능금은 바스라지는 해수의 곁을 지키며 그를 깊이 끌어안는다.

인간과 초월적 존재 사이의 경계를 서정적인 분위기로 묘사한 「능금」은 극복의 대상이 아닌,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장아미가 펼쳐낸 비현실의 세계는 ‘나’와 타인 사이의 몰이해를 껴안는 방식으로 현실이 된다. 이제 우리는 그가 만든 세 편의 소설이 사랑, 죽음, 영원한 기다림과 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표류하는 이를 위한 다정한 응답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남긴 흔적들을 보았겠죠. 피와 살점 말이에요. 해가 지날수록 나 자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져요. 때론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려요. 손톱이 길어지고 뿔이 돋고 송곳니가 자라요. 그러면 살을 찢고 피를 마셔야 해요. 그래서 스스로를 사냥하는 거예요.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 전에, 내 배를 가르고 간을 터뜨리고 심장을 뜯어내 삼켜요.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는 치유되고 나는 다시 젊고 건강해지죠. 이게 신으로 변하는 과정이라면, 능금,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102쪽)

 

우리는 때로 사랑을 시험받는 물음을 받는다. 이래도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 그럼에도 상대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 약속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겪었음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겠다 말할 수 있는지. 질문 앞에 선뜻 긍정의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입술 끝에서 흩어진 ‘망설임’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끝내 그것을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장아미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이런 망설임을 마주하고, 더듬어 가고, 호명하는 것과 닮아 있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잠시 다른 것에 미혹돼 길을 잃더라도, 한 세계에서 영원히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때마다 있었을 ‘멈칫’의 순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멈칫’과 ‘망설임’의 조각이 모여 끝내 사랑으로, 따뜻한 애정으로 정의될 때 우리의 유한한 삶은 한 겹 더 두터워질 수 있음을 경험하게 만든다.

“꿈과 현실, ‘나’와 세계, 현재와 영원이 흐릿하게 엮이는 어스름”이 이어지는 장아미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멈칫’과 ‘망설임’을 기꺼이 사랑이라 감각할 때, 우리는 서로가 있는 곳을 향해 명확히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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