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찬란하게 빛나는 다른 차원의 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앨리스에게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콤팩트하게 선사하는 〈네온사인〉의 네 번째 책으로 『투명 공간 앨리스』가 출간되었다. 제3회 SF 어워드에서 장편부문 대상 수상으로 SF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노희준 작가가 새로운 이름으로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투명 공간 앨리스』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생명에 깃든 영혼을 ‘빛무리 몸’이라고 부르며 인간의 빛무리 몸을 노리는 외계 종족 ‘데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낸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을 통해 작가는 ‘나’와 타인 사이에 투명하게 얽혀 있는 연결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들 눈에 비친 빛무리 몸처럼, 찰나지만 강렬한 연대의 순간을 목도하기 바란다.
■■■ 책 내용
“모든 생명은 빛의 몸을 갖고 있다.”
빛의 몸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자들
육체에 포개진 또 하나의 몸, 육체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차원의 존재가 있다. 우리는 흔히 귀신, 유령, 이더(Ether), 영혼이라고 부르지만, 그 존재를 다르게 부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그 존재는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처럼 밝게 빛난다. 그래서 그들은 ‘빛무리 몸’이라고 부른다.
빛무리 몸을 볼 수 있는 것 외에도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유체 이탈 능력, 사물을 통과하는 능력 그리고 빛무리 몸을 소멸시키는 능력. 우연한 계기로 힘을 얻은 그들이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핍박을 견뎌야 했다.
“사람은 미움을 받으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뭘 잘못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무엇이 잘못이고 잘못이 아닌지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면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16쪽)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을 찾았다. 눈앞에 닥친 고난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의지할 곳을 찾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향하던 뭇매를 뒤로한 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빛무리 몸을 보거나 유체 이탈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구하면서 그들 스스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당신들이 괜찮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괜찮아졌어.” (63쪽)
사실 가진 능력과 별개로 그들이 처한 상황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똑같이 상처받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 단지 사람들은 잘 보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차등 없이 갖고 있는 ‘빛’을 알아볼 수 있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어쩌면 그들이 가진 진정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외계인도, 귀신도 아니었다.
단지 화를 낼 데가 없고, 몰두할 게 필요한 사람들일 뿐
『투명 공간 앨리스』는 외계 종족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쩌다 주인공 일행이 능력을 갖게 됐는지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과 친구들이 일상에서 부당하고 모순적인 상황을 겪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흐름은 그들이 소위 ‘퇴마’를 하면서 만나는 의뢰인들의 사연으로 이어진다.
“그 후로도 믐이 찾아낸 사람들은 대부분 빙의가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 엉뚱하게도, 우리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56쪽)
작중에서 사람들이 ‘빙의’라고 말하는 현상은 육체의 주인이 아닌 다른 빛무리 몸이 들어간 경우다. 보통은 착각인 경우가 많지만, 사람들은 절실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곤 한다. 그래서 몸 밖으로 꺼내주거나 몸을 통과하게만 해줘도 사람들은 말끔히 낫는다. 물론 주인공 일행이 쫓는 외계 종족 ‘데커’가 침입한 경우도 있었지만 데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투명 공간 앨리스』는 이렇듯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자들의 상처와 그들이 내리는 선택에 집중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돕고 보살핀다. 사람을 둘러싼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고자 하는 그들의 선택은, 모든 빛이 그러하듯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난다.
결국 외계인도,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도 아닌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척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서로를 구원할 힘은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서로가 빛나는 존재임을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추천사
상처와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자라 무엇이 될까?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상 손님을 골탕 먹이는 데 능력을 사용하는 이 발랄한 초능력자들은 때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때론 원한을 풀기 위한 복수를 감행하며, 때론 남몰래 세상을 구한다. 이들이 가진 진짜 초능력은 서로가 빛으로 둘러싸인 눈부신 존재임을 아는 것이고, 우리의 육체가 그 빛을 가두는 감옥인 동시에 서로와 만나기 위한 우주선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다른 차원의 힘을 갖고도 지구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선량함은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서로를 끌어당기기에 꼭 알맞은 체온이다.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자라 아이들을 구하는 이야기, 사람을 돕는 일이 곧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는 놀라운 치유가 되는 이야기, 자신의 뾰족한 무기가 실은 구원의 열쇠란 사실을 귀띔하는 이런 이야기가 이 세상과 투명하게 겹쳐져 있다는 믿음은 아무런 빛깔 없이도 우리의 마음을 환히 밝힌다.
-우다영 소설가
■■■ 네온사인 시리즈
새로운neon 장르로 보내는 다양한 신호sign
〈네온사인〉은 SF와 미스터리, 판타지 등 감각적인 소설을 빠르고 가볍게 만나는 새로운 신호입니다. MZ세대 독자들에게 밀도 높은 서사, 흡입력 있는 세계를 콤팩트하게 선사합니다. 강렬한 색으로 다양한 빛을 내는 네온사인처럼, 새로운 이야기로 비추는 우리의 신호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 지은이
로희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어서 SF를 쓰기 시작했다.
2016년 한국 SF 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았고, 2023년부터 로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작품으로는 『투명 공간 앨리스』가 있다.
곧 또 한 편의 장편과 첫 번째 SF 소설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 차례
빛무리 몸
빛의 무기
무지개 빗자루
데커
머리 모양 꽃씨
애플 밤
투명 공간 앨리스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우리는 차원과 차원 사이에 걸쳐진 존재 같았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굳어져버린, 능력을 갖게 된 게 아니라 능력에 붙들려버린 존재 같았다. _10~11쪽
“빙의는…… 우리가 잡을 수 있지 않나.”
거기까지만 해도 뭘 하자는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말에 반응을 좀 보여달라는 뜻이었겠지. 그러나 물이 튄 곳에는 꼭 뜨거운 기름이 있고, 뜨거운 기름이 튄 곳에는 꼭 맨살이 있게 마련이었다. 적어도 우리는 매번 그랬다.
“어떻게 잡냐? 볼 때마다 쫓아가냐?”
“우리라면…… 쉽게 쫓아갈 수 있지 않나.”
“카운터 보다 쫓아가냐? 고기 굽다 쫓아가?” _25쪽
자연스럽지 않은 건 우리를 대하는 여자의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그리고 흠결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고장 난 형광등처럼 깜박이던 여자의 빛무리 몸.
“아시고 왔겠지만, 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에요.”
남자가 화장실에 간 사이, 여자는 안방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말했다. 요원 역할이 제일 잘 어울리는 지나가 노련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_59쪽
어느새 여자가 우리 뒤에 와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소금 기둥처럼 서 있었다. 놈은 여전히 아이의 얼굴인 채였다.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번에는 텔레파시가 아닌 육성으로 말했다.
“내놓으랄 때 내놓았으면, 다 잃지는 않았을 텐데.”
여자가 말소리도, 숨소리도 아닌 소리를 냈다. 표정도 없이 얼굴근육이 요동치고 있었다.
“엄마, 사랑해.”
데커가 아이의 얼굴로 씩 웃은 다음 다시 말했다.
“라고 네 딸이 외치는군.” _87쪽
우럭 안에 있는 유이가 성질을 참지 못하고 섣부른 말을 꺼냈다.
“그래서, 형한테 다 덮어씌우겠다?”
광어는 우럭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재밌는 애를 데리고 왔네?”
“뭐?”
“장악 능력이 있는 모양인데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어?”
“…….”
“지금 너희 친구가 장악한 형은 여러 인격 중 하나일 뿐이야. 형의 주 인격이 바뀌면 너희 친구는 어떻게 될까?”
지나와 나는 거의 동시에 텔레파시로 외쳤다.
― 유이야, 당장 거기서 나와. _109쪽
미행이 길어져서 들킬 것 같기는 했다. 안 들킨다고 더 유리할 것도 없어서 대놓고 따라다녔지만 경호원이 와서 창문을 두들길 줄은 몰랐다.
“아, 네. 길 좀 찾느라. 차 빼겠습니다.”
믐이 대충 둘러대고 차를 출발시키려 하자 이번에는 여러 명이 차 앞을 가로막았다.
“회장님이 안으로 모시랍니다.”
잡아뗄 거면 회장님이 누구냐고 하든지. 믐은 당황한 나머지 “누굴요? 저를요?” 하고 말았다.
“네 분 다 안으로 모시랍니다.” _133쪽
“지금 나가!”
“예!”
어른 남자가 말하고 아이들이 답하자 내가 누운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에 어른거리는 빛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밝았다.
“오늘 너희는 악령이 비유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_154~155쪽
나는 기절하는 기분이었지만 곧 깨어났다. 내 머릿속에서 유이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레일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때그때 레일을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머릿속을 돌고 돌아 어느 순간 최초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궤적이 완성되며 유이의 손에 빛의 창검이 자라났다. 지나의 머리를 읽은 건 그렇다 치고, 빛의 무기를 쓰는 것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는 몰랐다.
― 어떻게 한 거야?
― 몰랐느냐? 이런 데선 내가 왕이다. _169쪽
■■■ 작가의 말
빛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비록 자라면서 능력을 잃게 되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이미 알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