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인가?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조선희의 소설 『거기, 여우 발자국』. <고리골>, <모던 팥쥐전>에서 특유의 상상력으로 전래 동화를 새롭게 해석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낯선 구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책 속에 있는 가상의 인물이나 공간을 현실로 불러내는 기이한 목소리의 여자 우필. 실체를 환상으로, 환상을 실체로 보는 남자 태주. 우필은 그로 인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들지도 못했지만 태주는 그저 자신에게 착각이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고만 생각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엉키고 교차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서로의 삶에 파고드는데….
조선희
저자 : 조선희
저자 조선희는 경북 안동 출생. 명지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중국사를 전공했다. 도발적이고 탁월한 상상력, 뛰어난 심리묘사, 뚜렷한 개성으로 출간하는 작품마다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펼쳐보이고 있다. 한국의 온다 리쿠로 불리는 그녀는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 수상작가 출신. 쓴 작품으로 『모던 팥쥐전』, 『고리골』, 『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 『아돈의 열쇠』 등이 있다.
거기, 여우 발자국
작가의 말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 수상작 『고리골』
『모던 팥쥐전』의 조선희 새 장편소설!
본 대로 믿을래? 들은 대로 믿을래?
보이는 대로 볼래? 아는 대로 볼래?
자, 이제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인지 골라봐.
『거기, 여우 발자국』은 『고리골』로 제2회 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모던 팥쥐전』에서 특유의 상상력으로 전래 동화를 새롭게 해석해 많은 독자들에게 새로움과 놀라움을 안겨준 조선희의 새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서사적 장치들과는 전혀 다른 낯선 구성으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큰 줄기의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낯익은 이야기들을 혼란스럽게, 그러나 철저한 계산속에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다.
존재가 불확실하게 명명된 독특한 캐릭터들과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잘 살아 있어, 이전 작품에서 조선희가 보여줬던 오싹한 공포 혹은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과는 달라진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독자들은 『거기, 여우 발자국』을 통해 타임머신 같은 장치 없이도 시공간을 비트는 놀라운 서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몽환적인 느낌의 “고상하고 우아한 환상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현실로 불러내는 여자 vs 실체와 환상을 혼동하는 남자
어둠 속이니 누구든 옷걸이를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다. 나로선 그런 식의 착각을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소정에게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아야 할 정도로 착각을 일으키는 정도가 심했다. 뜨거운 여름날 신호등이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붉은 이구아나로 보인다거나, 지하철 환승선에서 사람들이 개미 떼로 보이는 것은 다반사였다. 가끔은 파스타 면을 지렁이로 봤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고운 대팻밥 같은 가쓰오부시는 벌레로 보였다.
“하지만 제 목소리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을 불러일으켜요. 제 목소리가 누군가를 또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어요.”
– 본문 중에서
이야기를 현실로 불러내는 기이한 목소리의 여자, 우필과 실체를 환상으로, 환상을 실체로 보는 남자, 태주. 이야기는 태주의 ‘착각’과 우필의 ‘목소리’로부터 비롯된다. 우필의 목소리는 책 속에 있는 가상의 인물이나 공간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눈앞에 실체로 나타나게 한다. 그녀는 그로 인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도, 직장을 다니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한편 툭하면 사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하거나, 반대로 사람을 사물로 착각하는 태주에게는 사실 자신의 그러한 ‘증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착각들이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엉키고 교차하는 시점부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능력’들은 서로의 삶에 파급을 가져온다.
현실 속의 허구인가, 허구 밖의 현실인가
–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거기, 여우 발자국』을 읽으며 독자는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속의 ‘현실’과 ‘허구’의 시간과 공간이 엉켜버려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시점의 이야기가 현실의 이야기이고, 어느 시점의 이야기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지 판별할 수 없어 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두 개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잘 짜여진 하나의 이야기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면밀하게 이야기하면 『거기, 여우 발자국』에서는 우필의 세계가 현실인지, 태주의 세계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어느 쪽이 현실인지 그 답을 말해주고 있지 않다. 누구나 각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는 세상이 ‘무조건적으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있어야 나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나는 없는 것과 같다. 세상과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는 건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여야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과 이면의 서로 다른 재미 : 궁극적 쾌감
『거기, 여우 발자국』은 동화 『눈의 여왕』, 『별의 눈동자』, 영화 「큐브」, 둔갑술 등 다양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모티브와 이야기 속에 숨겨둔 장치들을 통해 조선희는 독자들에게 작품 속의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들에 대한 추측의 여지를 남겨 준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실존적 함정, 이야기를 일으키려는 말(言)의 의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외로움 등을 조선희는 이 작품에 새겨 넣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도는 이야기를 읽는 우필의 목소리가 그 이야기를 현실로 불러내는 현상, 태주가 겪는 무수한 착각들, 노라의 ‘둔갑’과 ‘복수’ 등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숨겨진 의도의 파악 없이도 각각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만으로 곱씹을 수 있는 재미가 있음은 말할 필요 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발자국이 있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남긴 발자국이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불러들일 수도, 쫓아 버릴 수도 있다.
옴짝달싹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건 아주 훌륭한 여행방법이다. 가끔 반란을 일으켜 자리를 벗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한 번도 본적 없는 발자국이 보이면 겁낼 필요 없이 발자국을 따라가 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