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
「하이브리드 총서」 제13권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라는 구호 아래 ‘통섭’의 학문하기가 한국의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총서이다. 제13권에서는 1980년대 포스트모던 비평가에서 세속적 비평가로 전회했고, 1990년대에 《트랜스크리틱》을 출간하면서 사상적으로 전회한 가라타니 고진을 살핀다.
저자 박가분은 이 책에서 가라타니를 외적인 방식으로 혹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박가분은 다만 가라타니가 스스로 충실하게 따른다는 마르크스의 개념과 체계에 정면으로 반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 《트랜스크리틱》을 중심으로 고진에 대한 비판적 논평과 의문을 제기하고, 《세계사의 구조》를 바탕으로 고진이 이론가로서 돌파해낸 지점과 한계를 언급한다.
박가분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블로그를 통해 인문학과 각종 사회문제에 관한 비판적 글쓰기를 해왔다. 2010년 그 동안의 블로그 글을 묶어『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를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무엇이 정의인가』(공저),『일베의 사상』,『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등으로 논의의 지평을 넓혀왔으며,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라는 평론으로『창작과비평』 제4회 사회인문평론상을 수상하였다. 이 글은 일본의 저명한 현대사상가 아즈마 히로키가 창간한『겐론』지에 번역 수록되기도 했다.
현재 경제학 석사를 졸업하고, 개인 블로그 ‘밝은 서재 blog.naver.com/paxwonik’에서 다양한 메타비평과 시사비평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주요 문제의식은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도대체 우리나라의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여러 정치철학 담론과 사회이론을 공부하던 중, 이른바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무능력이 ‘일베’라는 괴물을 낳은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 아래 일베 신드롬을 체계적으로 분석 한 최초의 책『일베의 사상』을 집필하였다.
『혐오의 미러링』은『일베의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는 ‘메갈리아 신드롬’을 분석한다. 메갈리아/워마드의 출현 배경과 실태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내세우는 ‘미러링’이라는 명분의 허구성을 폭로한다.또한 현재 인터넷에 만연한 젠더 혐오의 진정한 원 을 탐구하고, 건전한 인터넷 공론장의 회복 방안을 모색한다.
나아가 『포비아 페미니즘』에서는 무엇이 진보진영과 언론 그리고 여성계 일각으로 하여금 메갈리아발(發) 혐오발언과 낙인 프레임에 대한 정당화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를 파헤치며, 성별대립 프레임을 넘어선 사회적 진보의 방향을 제시한다.”
머리말 –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1부 고유명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
1장 이론적 맹아기 –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근대문학의 종언』을 중심으로
2장 이론가로서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 『은유로서의 건축』을 중심으로
3장 고유명과 타자의 문제 – 『탐구 2』와 『유머로서의 유물론』을 중심으로
4장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사
2부 트랜스크리틱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1장 『트랜스크리틱』과 칸트
2장 『트랜스크리틱』의 전후
3장 마르크스의 『트랜스크리틱』
3부 미완의 대작, 『세계사의 구조』
1장 세계사의 구조와 사적 유물론
2장 미니세계시스템
3장 세계제국
4장 세계경제시스템
5장 세계사의 구조 이후
맺음말 ? 고유명의 철학자에서 코뮤니즘의 사상가로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라는 구호 아래 ‘통섭’의 학문하기가
한국의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3권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하이브리드 총서는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의 ‘스펙트라’, ‘하이브리드’ 꼭지를 통해 연재된 인문, 사회, 과학, 예술 제 분야의 원고를 대상으로 펴내기 시작해 현재는 젊은 인문학자들의 옥고를 선별해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학자들의 야심 찬 학문적 실험과 매력적인 글쓰기가 한데 어우러진 국내에서 자체로 생산되는 보기 드문 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총서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원고의 주제에 따라 또는 저자의 글쓰기 취향에 따라 에세이, 자서전, 회고록 등 각종 문학적 글쓰기의 틀을 넘나들며 펴내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건조한 연구 보고서 형식이 아닌 연구 대상과 화자 사이의 밀착된 거리에서 친근하게 몰입할 수 있는 서술 방식이 하이브리드 총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크리틱』을 중심으로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비판적 논평과 의문을 제기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1980년대에 포스트모던 비평가에서 세속적 비평가로 전회했고, 1990년대에 『트랜스크리틱』을 출간함으로써 사상적으로 전회했다.
『트랜스크리틱』의 성취는 1990년대 이전에 가라타니가 주목한 코기토(고유명으로서의 ‘이 나’)의 기획이 공동체 바깥의 외부적 실존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론화했다는 데 있다. 가라타니는 그것을 ‘어소시에이셔니즘’이라고 부른다. 가라타니는 그것을 교환양식표의 제4사분면에 위치한 교환양식 X에 기초해서 설명한다. 그것은 도덕론적으로 보았을 때 “타인을 수단으로서만이 아닌 목적으로도 대우하라”는 칸트의 규제적 이념에 근거한다. 또한 『트랜스크리틱』에서 가라타니는 어소시에이셔니즘에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서 ‘추첨제’와 ‘대안화폐’라는 구성적인 원리들을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형태로 제안한다.
그런데 『트랜스크리틱』을 보면 가라타니의 방법이 ‘정말로 트랜스크리틱’하는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첫째, 가라타니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을 ‘가치체계의 시간적 차이화’와 같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범주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지니는 현실 비판적 의의를 퇴색했다. 둘째, 가라타니는 절대적 잉여가치를 엄격히 개별 자본 내에서만 생산되고 실현되는 것으로 오해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노동문제들을 이론적으로 주변화했다. 셋째, 가라타니는 이윤율의 저하와 같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지니는 현실 정치적 의미를 간과함으로써 마르크스가 분석하고자 한 자본주의의 구체적 동역학을 ‘반복강박’과 같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규정으로 환원했다. 넷째, 가라타니는 자본주의를 특정한 생산관계 또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특정한 교환양식으로 바라보며 잉여가치와 착취를 유통과정에서만 설명한다.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의 저자 박가분은 이 책에서 가라타니를 외적인 방식으로 혹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박가분은 다만 가라타니가 스스로 충실하게 따른다는 마르크스의 개념과 체계에 정면으로 반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세계사의 구조』를 바탕으로
가라타니 고진이 이론가로서 돌파해낸 지점과 한계를 언급한다
가라타니는 자본제 시장 이면에 있는 ‘가치형태’와 그것에 내재한 교환의 비대칭적 조건을 초월론적으로 발견한 마르크스의 방법을 따라서 ‘네이션’과 ‘국가’ 자체도 그 나름의 교환양식에 기초한다는 논점으로 나아간다. 자본, 네이션, 국가 간의 구조론적 접합이 성립된 역사적 과정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더 체계적으로 고찰된다.
『세계사의 구조』는 그동안 단편적인 ‘비평’의 형태로 제출된 가라타니의 교환양식론을 하나의 체계로 종합한 결과물이자 가라타니의 새로운 역사유물론적 체계를 보여주는 저작이다. 이 체계는 그 나름의 방법에 기초하며, 가라타니의 방법은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 입각해 ‘세계사의 구조’를 보여주는 데 있다.
가라타니는 원래 체계를 싫어하며 체계를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구성체를 교환양식의 상호부조적 접합으로서 보게 되자 체계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실제 이것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헤겔의 작업을 다시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가라타니가 『세계사의 구조』에서 가져오는 기획은 ‘역사유물론의 재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사의 구조』는 ‘보편사’에 대한 역사 서술을 지향한다. 그동안 그것은 서양의 역사에 대항해 동양의 역사를 쓰거나 또는 남성의 역사에 대항해 여성의 역사를 쓰며, 보편사를 해체하려는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분야였다. 가라타니는 이런 경향에 정확히 역행해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본래 역사유물론이 던진)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답한다.
가라타니가 자신만의 역사유물론을 개시하는 『세계사의 구조』는 자유=평등의 정신(발리바르)을 교환양식 D로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 헤겔의 관념론적 역사철학과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하나의 사상적 사건이었다면 가라타니의 ‘세계사의 구조’를 엄밀한 사상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가라타니는 교환양식 D가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대상에서 국가를 제외한다. 다시 말해 가라타니의 어소시에이션은 상품교환과 호수제를 지양하면서도 그것을 ‘종합’하는 경로를 보여주지만 국가에 관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부정되는 것 이상의 경로를 보여주지 못한다.
가라타니 고진, 고유명의 철학자에서 코뮤니즘의 사상가로
가라타니는 고유명의 문제를 현대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순수하게 ‘형식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실정적 대상’ 중 어느 하나로도 다룰 수 없다는 ‘딜레마’로서 고찰했다. 애초에 그것은 이론적인 차원에서 결판을 낼 수 없는 문제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주목한 것은 어쨌든 뭔가를 ‘다름 아닌 이것’이라는 고유명으로 부르는 원초적 사태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가라타니는 언어의 반복적 구조에서 ‘고유명의 이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끌어낸다. 고유명은 언어적인 관계구조 안에도 바깥에도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같은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타인들이 언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즉 각자 자신의 말을 ‘가르치고-배우는’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가라타니는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그리고 칸트와 같은 사상가들을 ‘고유명’으로 읽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기존 시스템 사이의 지점에 적극적으로 서고자 하는, 즉 스스로 고유명이 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의지’를 발견한다.
이 무의식적인 의지는 칸트의 ‘규제적 이념’에서 재발견된다. 규제적 이념이란 천상에 있는 숭고한 정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관습적인 일반명사로 불러온 사건이나 사물을 다시 한 번 ‘다름 아닌 이것’ 혹은 ‘저것’이라는 ‘고유명’으로 부르고자 하는 충동과도 같이 기존의 시스템이나 언어적 관습을 넘어설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암묵적인 논의의 초점이 되는 교환양식 D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교환양식 D는 교환양식 A, B, C로는 회수될 수 없는 개체의 개체성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이다. 그것은 호수제이든, 수탈과 재분배이든, 상품교환이든 기존의 교환관계 안에 파묻힌 한 개인의 고유명을 재발견하려는 충동, 그러기 위해 기존의 사회구성체와 절연하려는 윤리적 의지다. 다른 의미에서 교환양식 D란 쉽게 말해 ‘품앗이 정신’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인 경향이다. 물론 그것은 공동체 안의 품앗이(교환양식 A)와 다르다. 그것은 서로 얼굴을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언가를 증여하는 몸짓에서 나타난다. 그런 몸짓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인지하고 명명하는 데서 본연의 고유명이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가라타니에게 바로 그런 것이 ‘공산주의’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