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기억을 잃은 인간이 선택한 현재 인류의 마지막 행성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탄생! 문윤성 SF 수상작가 이경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두 번째 지구 타이드』가 ON 시리즈 서른아홉 번째 이야기로 출간되었다. 외계 행성 개척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기계화된 인간의 정체성과 선택의 의미를 치열하게 탐구하는 SF소설로, 차가운 세계관 속에서 빛나는 인간적인 관계와 깊은 사유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두 번째 지구 타이드』는 인류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외계 행성 ‘타이드’를 무대로, 기억과 신체, 선택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지구를 떠난 거대 성간 우주선 ‘애로우’는 장장 71년에 이르는 항행 끝에 행성 타이드에 불완전하게 착륙한다. 우주선의 일부는 점도가 높은 진흙 바다에 잠기고, 수많은 인명과 자원이 소실된다. 살아남은 인류는 이 적대적인 행성에서 다시 한번 문명을 시작해야 한다. 지구 멸망 71년, 낙원에 도착했으나 ‘인간’임을 잊었다! 동면 끝에 깨어난 프랑켄. 구원의 마지막 열쇠인가, 버려진 소모품인가 장기 인공동면에서 깨어난 주인공 아인은 동면 부작용으로 동면 이전의 기억을 전부 잃는다. 아인은 생존을 위해 신체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프랑켄’이며, 후발대를 이끄는 커맨더로 임명된다. 아인은 자신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인류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 작품은 묻는다. 기억이 없는 인간은 누구인가. 몸이 바뀐 인간은 여전히 인간인가. 그리고 인간에게 허락된 선택이란 무엇인가. 모두 살거나 모두 죽거나.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타이드에서의 생존은 시간과 자원의 문제다. 우주선 ‘애로우’는 손상됐고, 생명 유지 자원은 급격히 고갈되어간다. 모든 인류가 동시에 안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 이 세계에서 선택은 윤리이자 전략이며, 동시에 인간다움을 증명한다. 『두 번째 지구 타이드』는 영웅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집단과 개인이 함께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무게를 차분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문학성과 하드 SF의 결합 이 작품은 장기 인공동면, 기계 신체 변환, 외계 행성 환경과 테라포밍이라는 하드 SF적 설정 위에 문학적인 사유와 감정선을 촘촘히 쌓아 올린다. 장기 항행에 따른 폐쇄형 생명 유지 시스템 설정,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질문, 개인의 내면과 집단의 운명을 함께 다루어, 한국 SF 장편에서 보기 드문 깊이 있는 세계관과 문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문장은 후발대의 선언이자,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제다. 과거를 잃어도, 몸이 바뀌어도, 선택의 책임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두 번째 지구 타이드』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선택뿐이다.” |
■■■ 지은이
이경
2022년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 부문에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장편소설 『두 번째 지구 타이드』, 소설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중편소설 『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 등이 있다.
■■■ 목차
- 리본
- 베이스
- 애로우
- 라이브러리
- 주사위
■■■ 책 속에서
타이드 착륙 이래 애로우 승조원 전원이 한자리에 집결한 날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한 단 높은 단상에서 드넓은 광장을 꽉 채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계 폐가 밀어 올리는 숨이 막힐 정도로 벅찼고, 한편 이유 모를 불안으로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자리에서 비로소 애로우의 대규모 인구를 처음 실감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위축됐던 것 같다. 한데 모인 8천여 명이 웃고 떠드는 음성과 몸짓이 단상 위로 해일처럼 밀려들었는데, 그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16쪽)
우리는 황금 리본에 손을 얹고 애로우의 총의로써 커맨더의 직위를 받아들임을 공표했다. 그 순간부터 나와 라이에게 애로우의 의지를 받들어 3800명 후발대원과 그들이 건설할 베이스를 지휘할 권한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
각자 준비한 짧은 수락 연설을 마친 후, 나와 라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 공동체를 향해 몸을 돌려 나란히 선 다음, 최초의 후발대 선언을 소리 높여 외쳤다.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27쪽)
‘글쎄, 지구엔 운석이 떨어져서 대멸종이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일어났다잖아. 타이드에도 대멸종이 있었다면 이 염병할 폭풍이 원인이었을 게 분명해. 이쪽이 더 악질적인 건 뭐냐면, 지구에는 운석이 몇천만 년 만에 한 개씩 떨어졌다는데 이곳의 폭풍은 몇십억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거야. 지구 시간으로 계산한다 치면 1년 8개월마다 120일에서 140일씩 꼬박꼬박 대멸종의 칼에 난도질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어떤 생명이 이따위 땅에서 살아남았겠어?’ (58쪽)
보급 제한, 사망보다 적은 출생 그리고 인체의 한계선까지 시도된 단기 인공동면. 우주선의 폐쇄 순환 시스템을 유지하는 수식은 늘 위태로워 보였다.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상쇄하는 것, 균형을 맞추는 것, 현상 유지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우주선과 동화된 사람들이 종사한 위대한 과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 긴 시간을 마치 없던 것처럼 건너뛰어 ‘부활’한 3800명이 사방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그들이 지켜온 세계에 침입한 이방인 또는 애로우의 항상성을 깨뜨리는 불안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75쪽)
싸늘한 정적이 이어졌다.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는 건지 멀어지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아무도 거기 있어선 안 됐어, 아인. 그러나 모두 거기 있었지.”
한참 후 돌아온 화신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의 얼굴이 도감에 기록된 멸종 생물 표본처럼 무감해 보였다. (91~92쪽)
“아이고, 우리 커맨더, 매니저 노릇 하느라 늘 수고가 많네.”
나는 그의 능글거리는 태도에 넌더리가 나 고개를 저었다.
“종 노이, 제발. 폭풍이 멈춘 게 겨우 어제 일이에요. 애로우한테도 숨 돌릴 틈은 주고 폭탄을 던지든 뭘 하든 해야지………… 타이밍이 좋지 않아요.”
그러자 종 노이가 팔짱을 끼더니 크게 웃었다.
“애로우 물이 진하게 들었구나, 아인. 꿈 깨렴. 뭘 하든 좋은 타이밍 같은 건 없어.” (117쪽)
헤드기어의 고글을 내려 쓴 아이샤가 내게 노바 건을 내밀었다. 자주색 탄환이 장전돼 있었다. 필요할 때 클립을 밀어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조준한 다음 방아쇠를 당기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격렬히 거부하는데도 아이샤는 내 손에 노바 건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총을 든 채 망연해진 나를 보고 아이샤가 다시 한번 다짐받았다.
“지금부터 당신이 만날 화신은 동료가 아니라 애로우의 적대자입니다. 명심하십시오.” (140쪽)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의장은 한순간은 진흙이 밀려오는 아주 먼 뒤에서, 다음 순간은 동강 난 대형 수송기 안에서 그리고 터널을 덮은 천장과 때론 고막이 성한 오른쪽 귓가에 서서 말을 걸어왔다. 내 동선을 따라 채널이 아직 열려 있는 음향 기기를 물색해 스피커 대용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그는 이 아래를 제 손바닥처럼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의장은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겠지? 화신이 레드라인을 넘는 순간도 보고 있었겠지? (240~241쪽)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응?”
“선택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여기 온 거야.”
“그래그래. 머리가 아픈가 보네. 정신 좀 차려봐. 어디로 가고 싶어?”
엘리베이터 계기반에 한 손을 꽂아 넣은 제이드가 나를 돌아보았다.
“베이스.”
“오, 그것참 흥미로운 행선지네. 비록 이 행성에선 갈 데가 두 곳밖에 없긴 하지만.”
눈동자가 없는 눈이 웃고 계기반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26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