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엄마’라는 두 글자에 감춰진 끔찍한 민낯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김준녕 작가가 흡인력 강한 스릴러 소설로 돌아왔다. 네오픽션 ON시리즈 34권으로 선보이는 김준녕 작가의 『텔 미 모어 마마』는 서로를 미치도록 증오하는 모녀의 이야기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빼앗는 엄마에게 딸이 얼마 만큼 분노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먼저 읽은 박서련 소설가는 이 책을 두고 ‘사상 최대 규모의 모녀대전’이라고 표현할 만큼 독보적인 스케일과 긴장감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게다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엄마’가 딸에게 전하지 않은 말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엄마를 죽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텔 미 모어 마마』의 첫 문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엄마를 죽였다, 는 전언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기구하고 처절한 ‘나’의 가정사를 예고한다. 사실 ‘나’의 엄마는 신약 개발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대기업의 회장이고, 이 덕분에 ‘나’ 역시 상류층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부유한 집안에, 보장된 미래에도 ‘나’는 왜 엄마를 죽였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이야기는 엄마가 죽기 전, 그러니까 ‘나’가 어릴 때의 시간대로 되돌아간다. 하루 종일 엄마가 세운 계획표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나’는 보살핌과 사랑이 간절했던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엄마에게 외면당한다. 어쩌면 보모나 운전기사보다 못할 정도로 ‘나’를 차갑게 대하던 엄마. 그런 엄마가 딱 하나 중요시 여긴 것이 있다.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도 그대로 주저앉아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엄마는 문득 쫓기는 사람처럼 내 손을 강하게 붙잡고 말했다.
“아무도 널, 아니 우리를 몰라야 해. 알겠지?” (24쪽)
어떠한 영문인지 엄마는 ‘나’의 존재를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 양육자라는 역할에 걸맞는 보살핌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인정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엄마의 품에서 ‘나’는 조금씩 곪아간다. 대저택에 갇혀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만 반복하던 어느 날, ‘은희’가 찾아오기 전까지.
은희는 ‘나’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은희를 통해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이 가진 걸 내려놓아도 좋을 만큼 애정을 쏟는다. 결국 ‘나’는 은희와 이 대저택을 탈출하기로 약속한다. 지옥과 다름없는 곳에서 벗어나 새 삶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기도 전에, 엄마의 명령에 의해 은희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나’는 나중에야 은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날은 앞으로 ‘나’의 인생에 생길 모든 희망에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나’가 엄마를 죽이기로 결심한 첫날이기도 하다.
“미안해, 네가 아니라 나한테.”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
이야기는 시간 순서를 거스르며 엄마를 향한 ‘나’의 증오가 쌓여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 한 번도 딸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엄마를 보면 작품 밖에 있는 우리조차도 진력날 순간이 많다. 마치 정해진 규칙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나’의 삶은 엄마의 계획하에 비인간적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비록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닌 부모의 바람대로 사는 삶에 대해, 소설 속 ‘나’의 분노는 예리한 칼끝을 소설 밖 우리에게 겨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불구덩이 속에 엄마를 던져 넣는다. 엄마는 불에 타오르며 비명을 내지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다. (60쪽)
이제 엄마를 향한 ‘나’의 증오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나’의 시계는 오로지 엄마를 죽이는 날에 맞춰 흘러가고 자기 부정과 혐오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뎌낸다. 하지만 ‘양극단에 놓인 듯 보이는 두 감정은 사실 우리가 펼친 책의 양쪽 면과 같’(박서련 소설가)아서, 엄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마다 ‘나’는 자신 안에 내재된 엄마를 발견한다. 팔꿈치에 불퉁하니 튀어나온 켈로이드처럼, 부정할수록 도드라지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갈등은 단순 심리 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말로 치닫는 길목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의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미안해.”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듣기 쉬운 말이었다니. …나는 이 말을 듣기 위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죽였을까?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될 것이었다. 지독한 악연을 끝낼 때였다. 그 순간 엄마가 덧붙여 말했다.
“네가 아니라 나한테.” (277쪽)
작품을 읽은 박서련 소설가는 어디쯤에서 끊어야 할지 몰라 단숨에 읽고 말았다며 뛰어난 흡인력을 높게 치하했다. 그리고 결말부의 반전을 시사하듯, 몇 번을 다시 읽게 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반전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순간은 초반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단서들이 단숨에 무너지는 때인데, 사실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시간 순서를 재배치했기 때문에 그런 류의 정석적인 반전 서사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멈출 줄 모르고 직진하는 서사의 호흡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반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첫 문장에서의 충격만큼이나 도파민이 쏟아지게 될 마지막 문장에 가 닿기까지, 책을 편 독자라면 두 눈으로 직접 『텔 미 모어 마마』의 진실을 목도하기를 바란다.
■■■ 지은이
김준녕
2022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빛의 구역』 『붐뱁, 잉글리시, 트랩』 『텔 미 모어 마마』, 소설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등이 있다.
■■■ 차례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8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엄마를 죽였다. (9쪽)
사람들은 삶이 왜 이리 고통스러운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 고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알았으니까. (59쪽)
“그때도 이랬지. 이십 년 만인가?”
“정확히는 이십이 년 만이죠.”
“중간에…… 그래.”
엄마가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시간 참 빠르네요.”
한 사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이랬었는데.”
“그만하시죠.”
엄마의 목소리는 침착하면서도 냉랭했다. (81쪽)
“앞으로 네가 아는 기재는 없어. 넌 그것만 알면 돼. 이전과는 모든 게 달라질 거야.”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분노는 엄마를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쏟아졌다.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었다.
“기재는 나 때문에…….”
그다음에 엄마가 한 말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너한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 (154쪽)
당시 경찰관 증언으로는 김 기사가 화이트아웃이 찾아온 상황에서 기름을 넣으러 갈 멍청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김 기사는 매일 생글생글 웃으며 이웃들의 차나 기계장치를 정비해주었다고. 자살 가능성 또한 제기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자살할 사람은 아니었어요.” (176~177쪽)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권 상무는 책에 밑줄 치던 볼펜을 거꾸로 쥐고는 식탁을 두들겼다. 상념에 잠긴 것 같기도, 기억을 되짚는 것 같기도 했다. 볼펜 두들기는 것을 멈춘 순간 권 상무가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권 상무는 다시 책을 펼치고는 말을 이었다.
“아가씨가 계시니까요.” (267~268쪽)
엄마는 내 손길을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있는 힘껏. 그러나 엄마도 물러서지 않았다. 팔꿈치로 내 얼굴을 가격하고는 차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구해야 해……. 빨리…….” (317쪽)
“정말 영혼이라는 건 없는 걸까요?”
데이비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데이비드가 준 물건들을 떨리는 손으로 가만히 보았다. (360쪽)
내가 아는 한 사상 최대 규모의 모녀대전이다. 지칠 줄도 모르고 직진하는 주인공처럼, 나도 이 소설을 어디쯤에서 끊어야 할지 몰라 단숨에 읽고 말았다. 기이한 것은 서두에서 다짜고짜 패륜을 고백하는 주인공에게 어느 순간부터인지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 책을 덮을 때쯤 극대화된 나르시시즘과 초고도의 자기파괴 욕구가 서로 포개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둘로 짝을 이루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어 하나인 것. 양극단에 놓인 듯 보이는 두 감정은 사실 우리가 펼친 책의 양쪽 면과 같다.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첫 페이지로 되돌아갔다. 나는 이 소설을 몇 번 더 읽게 될 듯하다. 차마 우리 엄마한테는 이 소설을 추천할 수 없겠지만.
―박서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