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특별한 호두』 서동찬 작가 신작★
자발적 거리 두기 추구자 하준의
파워풀한 성장통 부수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4권 『깬다』가 출간되었다. 『깬다』는 『특별한 호두』로 제1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서동찬의 신작 장편소설로, 주변 환경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타인에게 벽을 치고 지내던 소년이 자신과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며 변화하고, 점차 사람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이야기다.
타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조차 짜증이 나는 ‘인간 싫어 인간’ 송하준.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자 하준의 태도와 성적에 대한 부모님의 간섭이 갑자기 심해진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에서는 반장 양희윤과 양아치 지훈이 하준에게 자꾸 관심을 가지고 툭하면 시비를 건다.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지겨움이 커져만 가던 하준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관성적으로 해오던 복싱에 더욱 집중한다. 그러다 같은 체육관의 기대주인 다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되고, 자신과 너무나 다른 다원의 속내가 점점 궁금해진다.
■■■ 지은이
서동찬
1984년에 태어났다. 2013년 『새장 속의 새들』로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우수상을, 2015년 『범인, 그들은 모른다』로 대한민국전자출판대상 작가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3년 『특별한 호두』로 제1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 차례
깬다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난 인간이 싫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과는 엮이고 싶지 않다. 내가 할 것만 하며 혼자 조용히 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안다. 바보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무인도에서 혼자 살고 싶다거나 아무도 없는 산속에 처박히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런 생활은 인간이 없다는 장점을 빼면 단점투성이일 테니.
_8쪽
“뭘 믿고 나대냐?”
내가? 내가 나댔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눈에 띄지 않으려고 그 누구보다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
놈의 옆에 서 있던 녀석이 날 보며 말했다.
“저 새끼 중학생 때도 저랬어.”
“복싱 좀 한다 이거냐?”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오히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막무가내로 시비를 거는 수도 있구나 싶었다.
“너 같은 새끼들이 제일 꼴 보기 싫어, 씨발.”
_21쪽
“하준아.”
어느새 관장님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어때? 쉽지 않지?”
관장님은 쪼그려 앉아 내 헤드기어를 벗겨 주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 스파링을 해 봐야 한다는 거야. 겨우 매스만 해도 이렇게 힘들고 어렵잖아. 센 사람이랑 풀 스파링도 해 보고, 시합도 나가서 자꾸 붙어 봐야 해. 맞아 봐야 때리는 법도 알게 되고, 아픈 줄 알아야 피하는 법도 배울 수 있어.”
_38쪽
“파, 파이팅!”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다원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 모습을 되새기며 링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다.
다원은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링 사이드로 스텝을 밟으며 틈이 날 때마다 상대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상대는 다원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번 라운드에 끝날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상대와 거리가 멀어지면 다원은 호흡 조절을 하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순간, 다원과 눈이 마주쳤다.
“파이팅!”
다시 한번 다원을 향해 크게 소리 질렀다.
_74쪽
궁금하다고? 나에 대해서? 아니면 내가 뭘 했는지가?
그냥 넘어갈까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도 알고 싶었다. 뭐가 궁금하다는 건지, 이렇게 계속 물어보는 이유가 진짜 날 좋아해서인 건지. 이 의문의 답을 확인하기엔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가? 시합이?”
“응, 그 뒤로 보이지도 않고 소식도 들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궁금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보이질 않아?”
“응, 다원이 오빠 말이야.”
“어? 다원이 형을 알아?”
_102쪽
“제 차 타고 가요.”
누나가 말했다.
“어차피 그쪽 지나가니까 그게 나을 거예요. 관장님은 거기 가셨다가 다시 체육관으로 가기엔 방향이 애매하잖아요.”
“그럴래, 그럼?”
두 사람이 동시에 날 쳐다봤다.
“예.”
새로운 사람과 좁은 차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하며 불편하게 가는 건 정말 싫은 일이다. 하지만 누나랑은 좀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다원 형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도 했고, 형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_127쪽
“왜? 할 얘기 있어?”
“아니요.”
“그래, 조심해서 가.”
관장님께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와 천천히 신발을 신고 체육관 문을 나섰다. 좁은 계단을 내려오니 점점 기울어져 가던 해가 모습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과 코앞의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학원과 내 옆을 지나치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잠시 그대로 서서 주변 풍경을 멍하니 보다 다시 체육관으로 올라갔다. 그러곤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 왜?”
내가 갑자기 들이닥치자 관장님이 깜짝 놀라며 날 돌아봤다.
“저, 제가 할게요.”
“뭘?”
“시합이요. 다원이 형 모금 시합.”
_155~156쪽
“복싱 당장 그만둬.”
“싫어. 시합도 나갈 거야.”
“지금 성적이 이렇게 나왔는데 계속 체육관을 다니고 아예 시합까지 나가겠다고? 너 복싱 선수 할 거야? ”
“여보.”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자 엄마가 말렸다. 하지만 아빠는 계속해서 날 몰아붙였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
갑갑하다. 세상이 하루 종일 나를 조여 오는 기분이다. 성적표를 받은 순간부터 스파링까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더 늦게 들어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_189쪽
“다원이가 누굴 만나도 자신감 있게 잘하는 이유는 자기 거리를 확실히 알고, 그 영역을 유지할 수 있어서야. 우리 사는 거랑 똑같아. 누구를 상대하든 내가 편안한 거리에 있으면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면 그때부터 힘들어지잖아. 복싱도 똑같아.”
분명 내게 편안한 거리가 있다. 민기와 스파링 할 때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많이 해 보는 수밖에 없어. 많이 상대하고 겪어 보면 ‘이 정도 거리가 내 거리다’가 점점 몸에 익으니까.”
_212~213쪽
판정을 위해 링 가운데로 갔다. 1라운드는 완전히 내어 준 것 같지만, 2라운드와 3라운드는 내가 훨씬 잘하지 않았을까.
“레드 승!”
분명 승이라는 말이 들렸는데, 내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어?”
나도 모르게 심판을 쳐다봤다. 상대가 내게 악수를 청해 와 악수를 하고도 링 위에 가만히 서 있었다.
_258쪽
“졌어요. 충분히 해 볼 만했는데, 1라운드 때 너무 밀려서 그랬나 봐요. 관장님은 긴장해서 그런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참, 형이 그날 관장님이랑 같이 시합장 가면 신경 쓰인다고 했었잖아요. 이제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저보다 관장님이 더 긴장해서 가는 내내 계속 같은 말만 하시더라고요.”
한 번 말문이 트이자 말이 줄줄 나왔다. 어쩐지 형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여름에 구 대회에 나갈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요. 같이 훈련하고, 시합도 같이 나가요.”
왠지 병실이 밝아진 듯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형이 일어날 것만 같다.
_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