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우주가 어두운 이유는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만으로도 입맛이 돋아나는 ‘우주’ 음식과 우리네 ‘이야기’로 우주 곳곳을 탐험시켜줄 서윤빈 작가의 『유니버설 셰프』가 〈네온사인〉의 열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오멜레토 컴보’는 우주 심야 식당을 운영한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떠나버린 ‘아내’를 찾는 ‘컴보’는 자신과 똑같이 결핌을 겪고, 언제 닥칠지 모를 우주의 위협에 몸을 사리고, 행성과 행성을 떠돌며 온기를 잃어가는 손님들에게 가장 따뜻한 맞춤 요리를 내어준다. 그 요리는 손님들의 하루를, 어쩌면 삶 자체를 달콤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과연, ‘컴보’를 찾아온 손님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가? 그리고 ‘컴보’는 실종된 ‘아내’를 찾을 수 있을까?
■■■ 지은이
서윤빈
「루나」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 『날개 절제술』을 펴냈다.
■■■ 차례
오멜레토 컴보의 노트:
다이어트를 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초무침
한니발 버섯
코그
차가운 알리오 에 올리오와 베이크드 번 토마토
베텔게우스 초콜릿
델피움
오멜레토 컴보의 노트:
우주에서 아름답게 먹기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아내는 우리에게 노후 대비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지적하면서, 결혼하기 전에 비해 내 몸이 복리이자처럼 비대하게 불어나버렸다고 결론지었다. (13쪽)
고향 별에서 지낸 시간이 아침 식사 정도에 불과하다면, 이제는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 입가에 묻은 고춧가루가 신경 쓰여 입가를 닦는다면 그게 치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4쪽)
초무침은 기억하는 대로였다. 물에 불린 듯 질퍽한 모양새와 미끈거리는 촉감과 쫄깃하다기보다는 타이어같이 딱딱하고 질긴 식감을 가졌지만, 새콤달콤한 맛 뒤에 남는 야릇한 달콤함에는 분명 거부하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다. (47쪽)
맛에 대한 추구에는 언제나 광기가 곁들어 있다. 그건 지구 탓이 아니라 인간 탓이다. 특히 지구 식자재를 사용할 수 없는 우주에서 그 광기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약해지지 않았다. (56쪽)
여론은 물기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기름에 넣은 해산물처럼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한 타블로이드지는 노인이 연쇄살인마이며, 죽은 사람들의 몸에 버섯을 키우고 있노라는 추측성 기사를 그럴 듯한 통계와 함께 발표했고, 다른 곳에서는 노인이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묶어놓고 그들의 배에 버섯을 길렀다고 주장했다. (69쪽)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말 한마디로 당신이 치유되지는 않겠죠. 마찬가지로 말 한마디로 사람이 몰락할 수는 없는 겁니다. 무언가 말 한마디로 이루어졌다면, 그 일은 예비되어 있던 겁니다. 무슨 채소를 넣든 카레는 완성되기 마련이죠. 설령 채소를 넣지 않았더라도요.” (78쪽)
그렇게 벌써 여자를 셋이나 떠나게 한 에스칼의 식습관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쓰레기를 먹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 쓰레기나 먹는 건 아니었다. 그가 재처리장의 미생물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것을 소화하겠는가. 그는 오직 음식물 쓰레기만을 먹었다. (125쪽)
“잘못 섞으면 독이 되는 식재료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요리사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조합을 피하도록 교육받죠. 하지만 모든 요리사가 훌륭한 요리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아무 자격증 없이 요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쩌면 시한폭탄과도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죠, 우리는.” (144쪽)
“당신한테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돼지 냄새가 나.” (147쪽)
이상하게도 범법자들은 법을 어기면서도 법이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리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158쪽)
“베텔게우스 초콜릿은 계속 작아지고 있다. 그것만이 진실인지도 모르지.” (174쪽)
그는 정말로 관에 들어갈 것이다. 가사 상태로.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관이 우주로 쏘아 올려질 무렵에는 목숨이 끊어지도록. 며칠이 지난 뒤에 죽음을 맞도록 해주는 독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어려운 건 찾아온 아내의 입을 여는 것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자비 라군이 장례식에 왔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181쪽)
마침내, 오멜레토와 펜 피 앞에 음식이 서빙되었다. 둘이 받은 음식은 달랐다. 오멜레토의 것에는 독이 들어 있었고, 펜 피의 것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양쪽 모두 별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