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내 안의 비밀스러운 마음이
어느 날 온전한 형체를 갖게 되자
바다의 냄새를 닮은 그들이 올라왔다
제11회 네오픽션상 우수상 수상작
바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올라와 인간의 욕망 혹은 소원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스릴과 흥미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인물은 생동감 있고 스토리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소설을 이루는 세 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긴밀하게 맞닿으며 수수께끼에 잠긴 ‘바다에서 온 존재’를 심연에서 끌어낸다.
— 김희선 소설가
문장력, 대화술, 소재 선택이 뛰어난 작품이다. 독특한 구성과 서술 방식으로 ‘그들’의 정체를 단단히 여몄다. 도움이 간절한 소녀의 삶으로 바다에서 온 ‘그들’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친구에게 지배당한 인물의 이야기로 ‘그들’의 질감을 드러냈으며, 죽은 연인이 ‘그것’이 되어 돌아온 마지막 이야기로 ‘그들’에 대한 미스터리를 키워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 강지영 소설가
독자의 마음에 고요한 파동을 일으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할 신인 작가가 탄생했다. 제11회 네오픽션상 우수상을 수상한 국지호 작가는 개성 있는 촘촘한 묘사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고찰, 미스터리한 ‘그들’의 정체를 흥미롭게 풀어나가 심사위원들의 큰 호평을 받았다. 『그들은 바다에서 왔다』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다와 바다에서 올라온 ‘그들’의 존재로 장편소설의 큰 틀을 이룸과 동시에, 삶의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삶을 보여주며 연작소설의 구성까지 갖추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소운’과 타인의 고통을 게임쯤으로 여기는 ‘연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진겸’, 연인의 폭력을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끌어안으려 한 ‘영의’의 이야기가 국지호 작가의 언어를 만나 수면에 떠올랐다. 이는 우리 사회에 약자라 불리는 이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고통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들이 저 깊은 심연 속에 진정 털어내고 싶은 마음의 짐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들은 어떠한 ‘그들’의 모습으로 나타날까. ‘나’의 삶이 가장 피폐해졌을 때,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비극적인 현실에 마음이 망가졌을 때 고개를 든 ‘나’의 욕망은 과연 무엇일까. 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처연하고 슬픈 결심에 아주 작은 희망이 응답한다면, 그들은 살아낼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소설을 펼쳐들고 ‘소운’과 ‘진겸’, ‘영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우리의 부름에 ‘그들’은 응답할 것이다.
울음빛이 저문 방파제에 나타난 ‘그들’에 대하여
어렸을 적 부모를 여의고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소운’의 별명은 백태다. 이 별명은 그 누구도 아닌 학교 보건선생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초등학생 ‘소운’이 깨끗한 옷을 입지 못하고 씻어도 씻은 티가 나지 않는 것에 보건선생과 담임선생은 철없는 어린아이가 할 법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그것은 곧장 동급생들의 놀림거리가 된다. 마치 길가에 덩그러니 남겨진 지렁이처럼, ‘소운’은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소운’의 소원은 단 하나, 그와 할머니를 지켜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방파제 위로 그림자 두 개가 올라오더니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한 ‘소운’은 깨닫는다. ‘그들’이 엄마 아빠라는 것을 말이다. 죽은 부모님이 살아 돌아온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소운’은 굳은 결심을 했고, 어느 날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보호를 받지 못해 삶이 좌절되는 고통을 겪는 건 「진겸과 연호」의 ‘진겸’도 마찬가지다. 단짝 친구라 여겼던 ‘연호’와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모든 걸 맞춰주는 쪽은 ‘진겸’이었다. 그러나 ‘연호’의 뜻을 한 번 거스른 순간, ‘진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폭력을 당하게 된다. 그 폭력이란 물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집단이 한 사람을 따돌리며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연호’의 괴롭힘은 ‘진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고, 가족에게까지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겸’은 어느 바다를 떠올린다. 한 아이가 실종되고 여태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이 존재하는 그 바다 마을과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다로 향하게 된 이유였다. ‘진겸’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방파제 끝에 걸쳐 선다. 그 순간 ‘진겸’은 바다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꼭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모습의 ‘나’를 목격함으로써 ‘진겸’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과연 ‘진겸’이 바랐던 것은 상황을 마무리시킬 유일한 방법인 죽음이었을까,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진 자기 자신이었을까.
바다에 빈 마음을 위해 모래처럼 부서진 ‘그것’에 대하여
「영의와 천주」 속 ‘영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연인 ‘천주’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 ‘천주’를 잘 알고 있기에 그가 쉽게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으며, 너무나 쉽게 그의 죽음을 믿어버린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영의’는 언젠가 ‘천주’와 가고 싶었던 바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바다 마을로 가 ‘천주’와 함께했던 삶을 홀로 지키고자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방파제에서 그토록 원하던 얼굴을 발견한다. 언제고 주저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천주’였다. 한없이 다정하고 온전한 사랑을 안겨주었던 ‘천주’가 돌아오자 모든 불행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비껴나가는 법이 없었고, 절대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영의’의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진짜’ 천주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폭력을 일삼고 한 마리의 짐승 같았던, 다정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진짜’ 천주가 돌아오자 또 다른 ‘천주’는 몸이 말라갔다. 그리고 ‘영의’를 지키기 위해 모래처럼 바스라진다.
이처럼 『그들은 바다에서 왔다』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 존재’를 다룬다. 소설 속 ‘그들’은 바다에 소원을 비는 이들의 마음에 따라 다른 형상을 갖는다. 국지호 작가는 “내 안의 비밀스러운 마음”이 정말 온전한 형체를 갖게 되었을 때 우리 앞에 나타날 ‘그들’의 모습을 여러 방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일어나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란 어떤 일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욕망이 눈에 보이는 몸을 덧입고 자기만의 마음마저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디까지 붙잡아둘 수 있을지를 말이다.
■■■ 지은이
국지호
2023년 제11회 네오픽션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차례
소운
진겸과 연호
영의와 천주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혼자는 언제나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소운이 생각 하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어린아이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징그러운 지렁이건……. (16쪽)
작은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빈 방파제 위로 유난히 짙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어딘가 다른 기이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 길고 긴 울부짖음이 서서히 잦아든 것과 거의 동시에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방파제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왔다. (26쪽)
거기에 방파제가 하나 있는데, 그 끝까지 걸어가서 발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바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널 찾으러 올라온다는 거야. (55쪽)
어쩌면 그것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서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 걸지도 몰라. 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순간 그게 곧, 바로 그들 자신이 되어버리는 걸지도. (56쪽)
연호는 게임처럼 이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버튼을 조작 하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 연호였다. 그리고 연호의 손가락이 내려앉는 곳을 따라 수많은 얼굴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무리 지어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는 딱 하나, 바로 진겸이었다. (74쪽)
누군가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만 같던 통증도 사라지고 나자 진겸은 마침내 찾아낸 완전한 고요 속에 가만히 떠 있는 기분이었다. (83쪽)
끝을 모르는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진겸은 이제야 비로소 알 것만도 같았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소원은 이미 이루어진 셈이었다. 다만 결코 원한 적 없는 모습을 하고 나타났을 뿐. (95쪽)
영의의 눈물이 천주의 뺨에 닿자마자 마치 무언가가 물기를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기쁨과 흥분으로 그리고 마침내 얻은 안도로 미칠 지경인 영의의 눈에 이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132쪽)
네가 나를 부른 거야. 그리고 난 널 절대 떠나지 않아. 약속해. (153쪽)
한때는 그 안에 오직 서로만을 담고 있으면서도 행복한 불안에 몸을 떨었던 두 쌍의 눈동자가 이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없는 협박을 내지르며 상대의 가장 연약한 살갗 위로 성난 발톱을 휘둘러댔다. (158쪽)
영의에게서 나는 천주의 냄새가 천주를 죽이고 있었다. 영의는 그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어쩔 줄 모르고 그저 울부짖는 천주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186쪽)
핏줄이 모두 터져 나가 붉게 물들어버린 눈을 하고서 영의는 마지막으로 천주를 생각했다. 이제 영의에게 천주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와 똑같은 눈이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남자는 한때 자신을 향했던 영의의 그 기이한 사랑을 영영 알 수 없을 터였다. (194쪽)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 위로 투명한 물 같은 무언가가 조금 고여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공기 중에 반짝거렸다. (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