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대한민국 족벌 기업의 추악한 민낯과 욕망,
몰락의 과정을 해부하듯 들여다보는 ‘한국형 기업 이야기’
드라마 〈연모〉 〈또 오해영〉 〈금수저〉 송현욱 감독 추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꾸준하게 비춰온 사회파 소설가 주원규의 신작이 ON시리즈 스물세 번째 이야기로 출간됐다. 『열외인종 잔혹사』 『서초동 리그』 『반인간선언』 『특별관리대상자』 『메이드 인 강남』 『크리스마스 캐럴』 등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을 첨예하게 조명해온 작가의 눈이 이번엔 ‘기업’을 향했다. 기업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삼 남매의 암투를 비추며, 돈과 명예와 인격과 권력이 서로를 타격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기업과 조직, 핏줄과 가족의 이야기지만 그것들을 이루는 인간 낱낱의 이야기이자 인간 본성 자체의 이야기기도 하다. 가장 선명한 어두움을 다루는, 문제적 사회를 가장 오락적으로 그릴 줄 아는 작가의 밀도 있는 시선을 따라가보자.
■■■ 출판사 리뷰
한순간 저문 제왕의 시대,
새로운 권자를 향한 형형한 눈빛들
소설은, 거대한 회의 테이블이 놓인 대기업의 한 회의실에서 시작한다. 삼호그룹의 회장 장대혁이 임원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손에는 이 그룹의 시작, 구두가 들려 있다. 장대혁은 구두 수선공에서 시작해 ‘삼호제화’라는 기업을 건설하고, 그것을 필두로 금융과 건설, 엔터테인먼트로까지 사업을 확장해 그룹사를 일군 ‘삼호그룹’의 살아 있는 역사다. 수십 년간 그의 제왕의 위치는 굳건하디 굳건했다. 그날,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별안간 회의 테이블 위에 구두를 던져 올린 장대혁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잭했고, 급기야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벗어 던지고 말았다.
이 충격적인 사태로 삼호그룹 일가는 난리가 났고, 이 상황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용을 쓰는 사이 장대혁 회장은 치매 판정을 받는다. 80세 노인이 치매에 걸렸다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이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생 역전의 판을 짜고 자신이 건설한 제국에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왕위의 권력을 누려온 그에게 있어 ‘당신도 연약한 노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정은 모두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제왕의 빈 자리를 바라보는 삼호그룹 일가의 눈가엔 슬픔보다 욕망이 가득 차 보인다.
한 핏줄이란 이유로 남매가 된,
저마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세 인물
장대혁 회장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 대학교 경제학 교수 자리에 있는 첫째 장명진, 삼호그룹 본사 기획본부장인 둘째 장명은, 삼호그룹의 계열사 삼호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셋째 장명우.
장명진은 애초부터 기업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 장대혁이 본인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처럼 자신을 다뤄온 세월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교수라는 직업을 비하하는 막말을 아버지로부터 늘상 들으면서도 장명진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치열한 기업인으로는 살 수 없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해왔다.
장명은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는 기업의 실세다. 능력과 욕망이 비례하는 아름다운 균형을 갖춘 기업인이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대내외 좋은 평가를 받는 재벌가 자녀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 흠이라면, 유명인이기에 가십이 되고 마는 이혼을 했다는 것뿐이랄까.
장명우는 이 집안의 이단아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고 무엇이든 거침없이 하는, 아버지의 후광을 있는 힘껏 누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 나쁘게 말하면 망나니. 별명답게 신문의 연예면과 사회면을 골고루 장식한 적이 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아버지, 가장 큰 차이점은 어머니다. 재벌가의 배다른 형제에게 우애란 기대하기 어려운 건 일종의 국룰인 듯하다.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권력 쟁탈전
피보다 짙은 욕망으로 채워진 게임판
장대혁의 빈 자리를 가장 먼저 차지하겠다고 나선 이는 서열상 1순위인 장남도, 암암리에 후계자로 점쳐지는 장녀도 아닌 막내 장명우였다. 어느 것으로 보나 대기업을 이끌 수장의 자리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지만, 묘하게도 수완이 좋다. 그간 접대해온 실력으로 주주들을 매수하고, 장대혁의 (공식적) 네 번째 부인 오성은까지 구워삶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장명은은 기업이 위태로워지는 꼴을 볼 수 없다며, 차기 대표 자리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우습게 치워버릴 수 있으리라 예상한 장명우의 활약이 거세지자 장명진에게까지 도움을 구하며 고군분투하던 장명은은 급기야 이혼한 전남편까지 찾아가 협조를 요청한다. 그런데 장명은의 전남편 김예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장명은의 위기를 십분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장명은 역시 이를 느끼지만 금융감독원이라는 배경을 등에 지고 있는 김예훈을 뿌리칠 수 없다.
어느덧 진흙탕이 되어버린 후계 구도판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이는, 이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장명진이다. 체면의 알을 깨고 욕망으로 덩어리진 속내를 숨기지 않기로 한 그가 한 자리를 차지하자 그야말로 다채로운 야욕으로 가득한 룰렛판이 완성된다.
과연, 이 왕좌의 게임에서 이기고 왕관을 차지할 이는 누구일까?
■■■ 지은이
주원규
2009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장편소설 『열외인종 잔혹사』 『벗은 몸』 『서초동 리그』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특별관리대상자』 『반인간선언』 『메이드 인 강남』 『나쁜 하나님』 『크리스마스 캐럴』 『기억의 문』 『너머의 세상』 『광신자들』, 청소년 소설 『아지트』 『주유천하 탐정기』, 에세이 『황홀하거나 불량하거나』, 평론집 『성역과 바벨』 등을 펴냈고,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를 번역했다. 2017년 tvN 드라마 〈아르곤〉 극본을 집필했고, 『반인간선언』이 2019년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로 방영됐으며, 『크리스마스 캐럴』이 2022년 동명의 영화로 상영된 바 있다. 2024년 하반기 디즈니+에서 방영될 드라마 〈강남 비-사이드〉 극본을 집필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차례
파국의 시작
폭풍전야
악연과 필연 사이
균열의 시작
정의의 가면
생존 원칙
협박 그리고 거래
삼 남매 이야기
제국의 사생활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장대혁의 몸은 그저 노인의 알몸일 뿐이었다. 목에는 짙은 보랏빛 넥타이가 민망하고 쓸쓸하게 달린 채 천장에 매달린 모빌처럼 흔들렸다. (파국의 시작, 11쪽)
장대혁을 대신하는 그 자리에 자신이 앉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현재 기획본부장으로 있는 자신만큼 삼호그룹을 효과적으로 통솔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이 가족기업을 향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경영권을 행사하고 싶은 것인지는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폭풍전야, 40쪽)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통하는 사업, 그게 바로 족벌 기업이고, 1인 체제이고, 주술과 운과 인맥에 기반을 둔 사업이었다. 장명진과 장명은의 공통분모인 아버지 장대혁은 2024년에 이른 지금까지 그렇게 사업을 끌고 온 것이다. (폭풍전야, 46쪽)
운도 정도 모두 즉물적인 것이 휘발된 무의미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장명은이 배운 경제의 논리는 그것들과 정반대였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고, 거기에 적절하고 절묘한 의미와 목표 의식이 스며든 사업 지향점이 수립된 상황을 학습해왔다. (폭풍전야, 48쪽)
“대한민국에서 원칙과 상식대로 기업 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 아니,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야. 그 우습고 허약한 원칙을 고수하는 기업이 전 세계 어디에 있냐고.” (균열의 시작, 86쪽)
“넌 왜 자라질 않냐?”
“허, 그러는 형은? 왜 쓸데없이 조숙하게 늙어빠져서 이 지랄인데? 애새끼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결같이 꼰대처럼 왜 그러냐고, 씨발. 미친 늙은 아빠처럼 말이야.” (정의의 가면, 115~116쪽)
“장대혁, 그 인간이 치매에 걸린 건 천운이야.” (생존 원칙, 129)
장명은은 지금 이 순간, 김예훈이 자신에게 뭘 요구하고 뭘 뜯어갈지 신속하게 계산해야 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엘리트와 엘리트로 만나 나름의 선을 지키며 우아한 경계선에 서 있던 과거와 달랐다. 급변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움직이는 판세에서 고상을 떨 수는 없었다. (생존 원칙, 136쪽)
“그렇지. 형 말처럼 우린 모두 장대혁의 씨야. 죽었다 깨나도 거역할 수 없는 한 핏줄이란 말이지.” (협박 그리고 거래, 153쪽)
삼 남매에게 아버지 장대혁이 안겨다준 진실은, 세상은 가장 원초적이고 예측 불허한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비극으로 펼쳐질지, 희극으로 펼쳐질지 가늠하는 것 역시 당사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역시 삼 남매가 감당하고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었다. (제국의 사생활,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