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생활기록부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어요.”
잘못 기록된 한 줄이 일으킨 나비효과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사람들의 고군분투
늘 새롭고 거침없는 이야기로 독자를 매료시킨 설재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이 〈YA!〉 시리즈 스물네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은 ‘생활기록부’라는 소재에서 착안해 청소년과 성인 구분 없이 극한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어덜트 소설이다.
소위 ‘MBTI 논쟁’이 그 힘을 잃어가던 즈음, 일각에서 서서히 대두되던 ‘생기부 다시 보기’ 움직임을 기억할 것이다. 비슷한 성격 유형을 나누어 서로를 알아가던 행태가 유행처럼 번져, 현재의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과거의 생기부를 다시 들춰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모두가 재미처럼 보고 지나친 자신의 생기부 한 줄. 설재인 작가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작품 전반의 배경을 그려낸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은 언제 어디서든 상대의 생기부를 조회할 수 있는 ‘전 국민 생애 궤도 추적제’가 도입된 세상을 그린다. 이런 세상에서 쌍둥이 남매 다함과 다정은 절대 남들 눈에 튀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쓰러지고, 두 사람은 병원비를 벌기 위해 생기부 수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의뢰인이 생기부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보며 두 사람은 생각에 잠긴다. ‘정말 생기부에 적힌 내용이 이 사람의 전부일까?’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이 시대, 과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는지에 대해 유쾌한 해답을 듣고 싶다면 지금 ‘정성다함’ 쌍둥이 남매에게 의뢰하라!
■■■ 출판사 리뷰
이제 MBTI 대신 생활기록부다!
완전무결한 생기부를 책임지는 쌍둥이 남매의 등장
‘전 국민 생애 궤도 추적제’의 지침으로 입시는 물론 취업과 결혼에도 생활기록부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과거의 잘못을 감추고 떵떵거리며 사는 몇몇 유명인을 떠올리며, 생기부를 공개하는 것에 사람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물론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근데 아빠는 궁금한 게 있다? 다함이는 안 그러잖아. 다정이 너랑 똑같이 다 아는데도, 잘 숨기고 백등 안쪽으로 들어가질 않잖아. 그런데 우리 다정이는 왜 자꾸 욕심을 낼까?” (13~14쪽)
그런 세상이라면 생기부 한 줄 한 줄이 소중할 텐데, 오히려 남들 눈에 띄지 않고 가늘고 오래 사는 게 목표인 고등학생들이 있다. 쌍둥이 남매 성다함, 성다정은 비범한 두뇌를 갖고 태어났지만 가진 능력을 절대 티 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현실 조언에 누구보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 다정이 실수 아닌 실수로 전교에서 유일한 수학 시험 백 점을 맞아 주목을 받고, 이를 나무라던 쌍둥이의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쓰러지게 된다.
원무과에서 영수증을 받아 든 다함과 다정은 직접 병원비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좌절한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그들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린다. 바로 억울하게 적힌 생기부를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의뢰를 받는 것. 의뢰인의 생기부를 고치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쌍둥이의 천재적인 능력 그리고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이라는 이름뿐이다.
‘기록도 편견이 될 수 있다’
올바르게 누군가를 이해하는 법
의뢰를 해결하는 다함, 다정 남매의 스펙터클한 모험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의 생기부도 고칠 데가 있는지 한 번쯤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뢰인들의 생기부를 보며 기함할 수도,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해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는 한편 혈액형부터 MBTI까지, 그동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나눴던 대화 주제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너는 ~ 라서 그렇구나’ ‘나는 ~ 니까 이런 게 더 좋아’. 그렇게 수많은 기준과 유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잘 오해해왔을지도 모른다.
“비협조적, 신경질적, 이기적, 불손.”
다함이 소리 내어 의뢰인의 생기부에 형광펜으로 칠해진 글자를 읽었다. 마주 앉은 의뢰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다정은 빠르게 다른 학년의 내용을 확인했다. 너무 평범해서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영혼 없는 칭찬뿐이었다. (27쪽)
다함과 다정의 세계는 생기부를 마치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처럼 상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이에게는 생기부가 단순한 기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과거에 내 모습이 그랬다고 지금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오해에 가깝다. 정말 몇 줄의 기록이, 몇 가지의 유형이 현재의 우리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혹 쉽게 판단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은 생기부라는 연령 불문 친숙한 소재만으로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오갈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이 현실의 진짜 ‘생기부’에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밥 먹듯 생기부를 봐야 하는 학생들에게, 나의 옛 모습이 한 번쯤 궁금해진 어른들에게 누군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되어줄 것은 분명하다.
■■■ 지은이
설재인
소설집 『사뭇 강펀치』 『내가 만든 여자들』, 장편소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 『그 변기의 역학』 『별빛 창창』 『소녀들은 참지 않아』 『캠프파이어』 『범람주의보』 『딜리트』 『내가 너에게 가면』 『강한 견해』 『우리의 질량』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붉은 마스크』 『세 모양의 마음』, 연작소설 『월영시장』,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가늘게 사는 사람들
나쁜 일일까
첫 번째 의뢰인: 어떤 종류의 용기
두 번째 의뢰인: 나비효과
막말하는 사람들
세 번째 의뢰인: 승자의 역사
네 번째 의뢰인: 바보도, 남도 아닌
피할 수 있는 방법
다섯 번째 의뢰인: 어느 실패
애프터서비스
백두산 나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
에필로그
■■■ 책 속으로
“아빠, 성다정 사고쳤대요!”
칠이 벗겨진 철문을 열면서부터 다함은 소리를 빽 질렀다. 일층 주인집 내외의 귀가 거의 먹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득달같이 혼났을지도 모를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9쪽)
한지명은 출석부를 들고 대답 없는 여원의 허벅지를 탁탁 두드렸다.
“정 마음 맞는 사람이 없다면 선생님이랑 먹자, 급식.”
“네?”
“으으, 최악.” 다함이 속삭였다. (33쪽)
소문은 쌍둥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회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주로 성적 최상위권의 자녀를 둔 부모들로 구성된 집단이었으니 지금껏 쌍둥이의 이름을 주목할 일은 전혀 없었다. 호형 씨가 쓰러지기 전날 다정 혼자 전교에서 유일하게 수학 시험 백 점을 맞은 탓에 달갑지 않은 주목을 받게 된 셈이었다. (72쪽)
다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크게 목청을 틔워 당당하게 반말로 외쳤다.
“그러는 당신은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내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지금 지껄이는 거야?”
다정의 생각대로 상대는 목이 꽉 막힌 듯 얼버무리는 소리만 내다가 전화를 끊었다. 다정은 방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어디선가 조금 열려 있던 방문이 쿵, 하고 닫혔다. 누군가 다정의 통화를 엿듣고 있었다. (107쪽)
“내가 정말로, 세상 최고였다고. 최고였단 말이야. 내가 지금 백두 살이거든? 그땐 나처럼 똑똑한 사람이 한국 땅에 하나도 없었어.”
그러자 갑자기 병실 사람들이 끼어들어 비꼬는 말들을 던졌다.
“그놈의 백두 살. 나이는 절대 안 까먹어요.”
“그래서 백두산 할아버지잖아.” (135쪽)
공개수업은 지역을 불문하고 어느 학교에서나 부자연스럽고 연극적인 이벤트인 모양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학교에서는 청소를 학생이 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일까. 쌍둥이네 학교에서는 때 빼고 광내느라 전교생이 몰두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청소업체 직원들이 초과근무를 했다. (161쪽)
“나도 꼭 이런 문제를 내보고 싶었어. 개념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기계적인 풀이만 익힌 애들은 절대로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풀 수가 없어. 진짜 어디서 난 문제지?”
선생님이 내신 건데요, 다정은 속으로 대답했다. 겉으로는 대충 주워섬겼다. “어, 제 친구네 학교 기출문제라는데…….”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