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숫자 ‘40’과 추리/미스터리의 예측 불가능한 만남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자극하는 일곱 가지 이야기
한국추리작가협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숫자 40과 관련된 추리/미스터리 앤솔러지를 선보인다. 1983년 설립된 한국추리작가협회는 계간 『미스터리』와 『올해의 추리소설』을 발간하고 있다. 또한 한국추리문학대상, 황금펜상을 매년 개최하며 추리 소설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굴하고 있다.
숫자 40과 추리/미스터리의 만남,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아리송하면서도 막상 들여다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가능하구나’라며 고개를 절로 주억거릴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10원짜리 네 개에 생과 사가 갈리는 짜릿한 추격전을 그린 「40원」, 건물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과 그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는 「40피트 건물 괴사건」, 실종 8년 만에 40개의 뼈로 돌아온 효재와 용의자가 된 가족들의 심리를 그린 「40개의 뼈」, 중소기업의 어느 팀이 산장으로 여행을 떠나 갑작스러운 살인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 40일 안에 한 재소자의 가석방을 막아야 하는 또다른 재소자의 이야기 「40일」,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사고와 한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 「40선(死靈線)」, 생방송 중 갑작스럽게 살해당한 BJ의 사연과 탐정의 분투기를 담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 일곱 가지 이야기는 어찌 보면 잔인하게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면서도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내어 씁쓸함을 자아낸다.
“가끔은, 귀찮은 것들 전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정답보다는 이해를 요구하는 따뜻하고도 잔인한 단편들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는 현란한 추리의 스킬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답을 요구하는 추리/미스터리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사건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심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정답보다는 이해를 요구한다. 물론 사건의 진상 자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상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이야기, 한숨을 자아내는 안타까운 이야기 등을 버무려 추리/미스터리 소설에 거리감을 느끼던 사람들도 선뜻 가까이할 수 있는 무게가 완성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복권을 내 복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 강명훈만 사라지면 되는 문제였다. 강명훈만 사라지면 그 누구도 내가 당첨된 로토 1등 번호가 강명훈의 로토 번호라는 걸 알 리 없었다. 강명훈이 어딘가에 적어놓은 로토 복권 번호가 가족들이나 형사들에게 발견된다고 해도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면 내가 그의 로토 복권을 탈취했다고 주장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내가 로토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숨기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조차 알기 어려울 것이다.
_P.32
내가 죽으면 효재는 누가 돌봐줄까, 시댁 식구들과 현우는 못 믿겠고 효민에게 효재를 맡겨야 하나, 근심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다. 나중에 효민의 예비 시댁이 중증 자폐아인 동생을 문제 삼지나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래서 인서는 결심했다. 평생 행복하게 지내다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면 효재와 함께 죽으리라.
_P.114
“웃어? 골이 비었냐? 지금 상황이 웃겨?”
“어, 그렇게 말해도 돼요?”
“뭐?”
“만에 하나 내가 살인범이면 어쩌려고?”
그러자 과장이 입을 다물었고, 대리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오직 팀장만이 차가운 표정으로 신입을 쳐다봤다.
“야, 장난이 좀 심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 그래야겠냐?”
“장난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전 살인범은 아닌데, 이 중에 누가 살인범이건 간에 썩 마음에 듭니다.”
“너 진짜 미쳤어?”
_P.137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잔잔하고, 감동적이면서도 인류애를 떨어뜨리는 끔찍함을 동시에 간직한 소설이 읽고 싶다면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지친 여러분에게 가볍게 시작하기 좋은 추리 소설이 될 것이다.
“탐정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추리/미스터리 장르의 생명력을 느끼다
소설가이자 한국추리작가협회장 한이는 “언젠가 탐정 소설도 끝에 이를 때가 올 가능성이 확실히 있어 보인다”라고 했던 도로시 L. 세이어즈의 말을 인용하여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를 이렇게 평가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 시기는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앤솔러지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에 실린 작품들에서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미스터리 장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트릭을 파헤치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것만이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본질은 아니다.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가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 ON 시리즈
오리지널(Original) 네오픽션(Neofiction) 시리즈 ‘ON’은 자음과모음의 장르문학 시리즈입니다.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SF 등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소설을 소개합니다. 허구 속 재미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사회의 빛과 어둠을 담아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복기합니다.
■■■ 지은이
황세연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염화나트륨」이 당선되어 데뷔. 장편 추리소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로 PC통신 문학상, 『미녀사냥꾼』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단편 추리소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과 「흉가」로 황금펜상을 2회 수상했다. 근래 발표작으로 장편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삼각파도 속으로』 단편 「흉가」 「고난도 살인」 「냥탐정 사건 파일: 천사의 심장」 「내가 죽인 남자」 등이 있다. 소설 외에도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연재한 추리퀴즈를 모은 『IQ 추리퀴즈 프로젝트』 『EQ 추리퀴즈 프로젝트』, 동화책 『셜록 홈순 탐정단: 도깨비 광산의 비밀』 등을 출간했다.
김영민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회색 장막 속의 용의」로 2019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수상. 본격 미스터리와 일상 미스터리, 괴담과 추리의 결합을 좋아한다. 즐거운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
한새마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엄마, 시체를 부탁해」로 2019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죽은 엄마」로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 걸』을 집필했고 『괴이한 미스터리: 저주 편』 『여름의 시간』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김범석
「찰리 채플린 죽이기」로 2012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했다. 단편 추리소설을 발표해왔으며, 발표한 작품으로는 「역할 분담 살인의 진실」 「일각관의 악몽」 「오스트랄로의 가을」 「휴릴라 사태」 「고한읍에서의 일박이일」 「범인은 한 명이다」 「시골 재수 학원의 살인」 등이 있다. 현재 장편 웹소설과 단편 추리소설을 동시에 준비 중이다.
여실지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번역도 하고 소설도 쓴다. 「호모 겔리두스」로 2022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필명 ‘여실지’는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지혜를 말한다. 이야기를 읽고 쓰는 몰입의 즐거움을 통해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깨닫고 싶다. SF,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 장르를 넘나들며 재미와 의미를 담는 작품을 쓰고자 한다. 발표한 작품으로는 단편 「로드킬」 「40일」 「꽃은 알고 있다」가 있다.
유재이
1989년생.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검은 눈물」로 2022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했다.
조동신
2010년 단편 「칼송곳」으로 제12회 여수 해양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제1회 아라홍련 단편소설 공모에서 가작, 2017년 제2회 테이스티 문학상 공모에서 우수상, 2017년 제3회 부산음식 이야기 공모전에서 동상, 2018년 제4회 사하모래톱 문학상에서 최우수상, 2019년 제주신화 콘텐츠 공모전에서 우수상, 2019년 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을 수상했다. 발표한 작품으로 『까마귀 우는 밤에』 『내시귀』 『금화도감』 『필론 의 7』 『세 개의 칼날』 『아귀도』 『수사반장』 『칼송곳』 『백수의 크리스마스』, 인문서 『초・중 학생을 위한 동양화 읽는 법』 『청소년을 위한 서양화 읽는 법』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다.
■■■ 차례
황세연 40원
김영민 40피트 건물 괴사건
한새마 40개의 뼈
김범석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
여실지 40일
유재이 40선(死靈線): 영혼을 죽이는 선
조동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 책 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 복권을 내 복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 강명훈만 사라지면 되는 문제였다. 강명훈만 사라지면 그 누구도 내가 당첨된 로토 1등 번호가 강명훈의 로토 번호라는 걸 알 리 없었다. 강명훈이 어딘가에 적어놓은 로토 복권 번호가 가족들이나 형사들에게 발견된다고 해도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면 내가 그의 로토 복권을 탈취했다고 주장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내가 로토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숨기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조차 알기 어려울 것이다.
_「40원」 중에서
드론이 천천히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드론에 부착된 카메라는 연직 아래 방향을 향해 있었다. 나와 정아는 조종기 위에 끼워놓은 휴대폰으로 드론이 송출하는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입구 주변의 외벽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다. 곧 건물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고 외벽과 마찬가지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사다리가 달려 있었다. 내벽의 사다리는 나름 멀쩡해 보였다. 내부 바닥에는 통조림과 녹슨 깡통, 수갑, 요강처럼 생긴 철제 항아리, 누렇게 변색된 이불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상의가 찢겨 배가 훤히 드러난 중년 여자 한 명이 팔과 목이 기괴하게 꺾인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꺄악!”
은서가 비명을 지르는데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_「40피트 건물 괴사건」 중에서
실종 8년 만이었다. 숲에서 발견된 건 고작 40개의 뼈뿐이었다. 뼈는 등산로에서 한참 떨어진, 산기슭의 커다란 바위 아래서 발견되었다. 버섯을 캐는 약초꾼들에 의해서였다. 100개가 넘는 나머지 뼈들은 여름 폭우 때마다 근처 계곡으로 쓸려 내려갔다는 게 경찰 쪽 의견이었다.
희디흰 한지 위로 옮겨지는 수골을 보며 인서는 생각했다. 도대체 그 산속에는 왜 들어간 것일까.
_「40개의 뼈」 중에서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저번처럼 싸움이 나겠지. 그러니 바비큐 파티 때 내가 조용히 얘기해볼게.”
“아니, 팀장님. 아직도 그런 말씀이십니까? 약속 안 지키면 비리를 폭로하겠다, 하고 그냥 확 밀어붙이시죠!”
“어허, 그건 정말 최후의 카드 아닌가? 비리를 폭로하면 회사도 망할 것이고…….”
팀장과 대리가 옥신각신할 때, 막내인 신입이 2층 계단 문을 째려보며 중얼거렸다.
“사장 새끼, 심장마비로 그냥 죽어버렸으면.”
그 말에 팀장과 대리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다.
_「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 중에서
“이 사람의 가석방을 막아주면 됩니다.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하, 돈 줄 테니까 누구 반병신 만들고 토껴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그 ‘반병신’은 이수연 씨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무례하고 거침없었다. 수연은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대범한 척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저씨,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나 본데,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전 재심 필요 없거든요.”
_「40일」 중에서
어휴, 냄새! 아니, 내가 나중에 빨려고 남친 몰래 숨겨놓은 게 있는데 오래 뒀더니 냄새가 확 나네. 내가 집 나올 때 입었던 옷. 안 되겠다, 그냥 버려야겠어. 싸구려 옷이니까 아깝지도 않아. 아니지, 괜히 버렸다가 들키면 어떡해? 하, 비린내가 진동하네. 아, 아니야, 그냥 혼잣말하는 거야.
_「40선(死靈線): 영혼을 죽이는 선」 중에서
— 아니, 뒤에 분 누군가요?
— 아라비아 여자들 입고 있는 거랑 비슷한 거 입고 있는데?
— 부르카라고 하죠, 아마?
김기문이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부르카를 입은 사람의 손에서 초승달 모양의 단도가 빛났다. 짧은 순간 김기문은 그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입한 사람은 재빠르게 목장갑을 낀 손을 뻗어 김기문의 앞머리를 잡아당겨서 고개를 들어 올리게 한 뒤, 단도로 그 목을 찔렀다.
“헉!”
_「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