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박에스더 작가의 두 번째 청소년 소설 『정원의 계시록』이 〈YA!〉의 열여덟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동화 〈미카엘라〉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지난해 장편소설 『영매 소녀』로 청소년 독자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 박에스더 작가가 ‘SF오컬트’라는 신선한 장르적 융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전능한 산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도시로 오게 된 사유. 혼수상태에 빠진 동생을 구하기 위해 사유는 산의 힘을 빌리려 한다. 그러나 사유의 눈앞에만 펼쳐지는 알 수 없는 광경에 사유는 산의 실체를 의심하고, 그런 사유에게 도시인인 여래는 사유가 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과연 산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 책 내용
“그건 산의 거룩한 말씀이자 일종의 계시였다.”
SF의 신비로움과 오컬트의 기이함이 만나다
『정원의 계시록』은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산은 정원이라고 부르는 네트워크를 통해 도시를 보호하고, 상처를 가진 사람을 치유해 주는 독보적인 존재다. 도시의 모두가 믿고 따르는 유일무이의 신. 그 앞에 쌍둥이 자매 사유와 여울이 나타난다.
“조금만 더 참아. 내가 널 깨워 줄게.” (36쪽)
혼수상태에 빠진 동생 여울을 구하기 위해 사유는 산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연히 만난 도시인 여래는 그런 사유에게 산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사유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사유는 점점 산의 실체에 가까워진다.
이야기 속 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달리,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숭배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렇듯 『정원의 계시록』은 기존 SF에서는 볼 수 없던 기이한 분위기 위에 근미래의 첨단 기술을 올려놓는다. 두 장르의 다채로운 재미와 흡입력 강한 이야기 덕에 청소년은 물론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성인 독자도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도시를 지배하는 산, 산을 추앙하는 사람들
그리고 산의 실체를 알고 있는 소녀
산과 가까워질수록 사유는 왠지 모를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외지인인 자신에게 들리는 산의 노래, 사고가 나기 전 여울이 꾸었던 꿈, 괴이한 산의 모습까지. 도시의 모든 사람이 받들어 마지않는 산에 사유가 조금씩 의심을 품던 그때, 어디선가 여울이 눈을 뜨게 된다.
“언젠가는 언니도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여울이 고개를 휙 돌리자 사유의 고개도 함께 돌아갔다. 그러자 저 하늘에 닿을 것처럼 길게 뻗은 지혜도시의 고요한 도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 도로 위로 커다란 자동차가 여울이를 향해 달려 내려왔다. (105쪽)
모두가 숭배하는 존재에 대한 진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선연한 공포인지 느끼며, 사유와 여울 그리고 여래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가까이할수록 더 숨을 옥죄는 산. 그에 맞서는 소녀들의 박진감 넘치는 사투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 지은이
박에스더
기억에 남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편소설 『정원의 계시록』 『영매 소녀』 『미카엘라 1~5』 『D클럽과 여왕의 여름』, 웹소설 『뉴월드』 등을 썼다. 〈미카엘라〉 시리즈로 비룡소의 마시멜로 픽션 대상을 수상했다.
■■■ 차례
산
산의 노래
정원을 빠져나가는 법
대초원에서
진노의 날
신록의 비
■■■ 책 속으로
사람들이 창문 쪽으로 몰려갔다. 진짜 산을 볼 수 있다는 게 다들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유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산의 기운 때문에 쳐다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산에 홀릴 것만 같았다. _11쪽
사유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너도 그 꿈을 꾸었을까?”
분명 꿈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아직 손바닥의 감촉도 생생했다. 어쩐지 사유는 여래도 자신과 똑같은 꿈을 꾸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사유가 여래의 얼굴을 떠올렸다. 과연 내일 우리는 어떤 얼굴로 마주할지. _32~33쪽
“너에게 빨리 나머지 노래들도 전부 알려 줄 생각이야. 나도 곧 여기를 떠날 때가 올 것 같거든.”
사유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림자들이 너에게 연락한 거야?”
여래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았어.” _62쪽
사유와 여래가 중앙 정원으로 가기 전, 이화 역시 갑작스러운 나팔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산의 부름이 있을 거라 예상한 이화로서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정원지기들에게 모두 중앙 정원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_91쪽
“여울이를 죽이려고 한 건, 나다.”
“뭐라고요?”
옆에 있던 여래 역시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파란을 바라보았다. 파란은 얼굴빛 하나 달라지지 않고 다시 말했다. _137쪽
“그럼 당장 모두에게 이걸 알려야…….”
“알리면? 내가 그걸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아?”
파란의 말에 사유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도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어. 정원지기도, 도시인들도 전부. 난 지혜도시를 망하게 하려는 그림자잖아. 사유, 너였다면 어땠을 것 같아? 네가 도시인으로 살았을 때, 누군가 갑자기 이런 소리를 했다면.” _161~162쪽
“도대체 너의 생각이 뭔지 한번 들어 보자. 그치만 네 마음대로 지혜도시의 종말을 가져올 순 없을 거다.”
“저기 있다!”
정원지기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여기서 잡히면 뭣도 되지 않았다. 파란은 재빨리 가지고 있던 디바이스를 꺼내 들었다. _194쪽
스쳐 지나가는 바람, 그건 중앙 정원에서 느꼈던 바람과 달랐다. 그렇다고 대초원의 바람처럼 건조한 것도 아니었다. 신선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사유를 끌어안았다. 온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결과 함께 구름이 밀려들어 왔다. 동시에 엄청난 빗방울이 지혜도시를 강타했다. 대초원 위에는 처음으로 쏟아지는 비였다. _231~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