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제 맘대로 세상을 초기화할 수가 있어요? 그래도 돼요?”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이 세상은 여름 양의 우주인걸요.”
여름은 무슨 이유로 초기화를 반복해 왔을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6권이 출간되었다. 106권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는 세상을 초기화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중학생 여름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 하는 할머니 테리의 이야기다.
이 세상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초기화 권한을 소유한 채여름. 여러 생에서 크고 작은 이유로 초기화를 반복해 왔기에 어른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삶의 즐거움과 친구라고는 노랑둥이 고양이 머쓱이뿐. D-바이러스가 창궐한 이번 생에서는 머쓱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머쓱이와 똑 닮은 겨자가 같은 반 설아네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한편, 여름처럼 초기화 능력이 있는 테리는 어느 생부터인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초기화 때문에 자꾸만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어서 잔뜩 화가 나 있다. 여름과 설아, 여름과 테리 사이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 지은이
하유지
장편소설 『집 떠나 집』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3모둠의 용의자들』, 소설집 『독고의 꼬리』가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이번 생은 해피 어게인』 『앙상블』 『새벽의 방문자들』이 있다.
■■■ 차례
- 테리: 프롤로그
1부
- 여름: 팝콘나무와 코스모스 그룹
- 여름: 다비드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여름: 그건 진심이 아니었는데
- 테리: 인생이 아름답기만 한 날
- 여름: 0의 제왕
- 테리: 누군가 또 있다
- 여름: 설원에서 만난 여름
2부
- 여름: 설아와 겨자, 우주 카페
- 테리: 옥수수밭의 할머니와 도시락 가게의 윈터
- 테리: 테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 여름: 우리는 달의 뒷면처럼
- 여름: 다비드호를 타고
- 테리: 제목 없음
- 여름: 다시 시작
- 여름: 에필로그
외전: 여름이 들려준 이야기
작가의 말
■■■ 출판사 리뷰
걸핏하면 우주를 초기화하는 ‘프로 리셋러’ 여름,
더 이상 초기화를 원하지 않는 할머니 테리.
과연 우주는 누구의 것일까?
8월 8일, 한여름에 태어난 주인공 채여름은 세상을 초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기화를 하는 방법은 열두 살 생일 이후 떨어진 운석을 찾아 꾹, 밟는 것. 다비드호에서 만난 꿀벌 선장이 가르쳐 준 방법이다. 여름은 초기화를 할 때마다 열두 살 생일에 매번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다시 초기화를 하곤 했다. 사랑하는 고양이 ‘머쓱이(머스터드)’가 너무나도 아파 죽어가는 삶, 거대 메뚜기가 출현한 삶,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삶, 꿀벌이 멸종해 지구가 멸망해가는 삶 등을 차례차례 초기화하며 더 좋은 삶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테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할머니에게도 우주 초기화 능력이 있다. 이쪽은 토끼 선장이 다비드호에 초대해 꿀벌 선장과 똑같은 말을 하며 알려 주었다. 테리는 초반에는 많은 초기화를 했지만 이제는 그저 노년을 편안하게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테리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때에도 ‘초기화 당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꼬이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 테리는 누가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지 밝히기 위해 운석이 있는 설원에서 오래도록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왜 자꾸 내가 하지도 않은 초기화가 반복되는 거지?
덩굴처럼 끈질긴 의문이 머릿속을 파고들며 독서를 방해했다.
테리는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책을 덮었다. 이 세상은 테리의 우주다. 초기화는 테리의 고유 권한이라고, 다비드호에서 만난 토끼 선장이 매번 말해 주었는데 대체 왜.
이번 생만큼은 초기화 없이 끝까지 가고 싶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다. 생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겠으나 몰라서 더 의미가 깊었다. 다른 생명들처럼 그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테리는 자신의 마지막이 어떤 빛깔과 냄새일지 궁금했다.
_본문 중
“이제까지 난 거꾸로 된 렌즈에 눈을 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보여, 세상이 고장 났어, 중얼거리면서.”
여름은 지금의 삶에서 반 친구 설아의 발표를 통해 설아가 키우는 고양이, 겨자를 알게 된다. 사실 겨자는 여름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머쓱이와 같은 고양이다. 머쓱이와의 기억을 잊지 않은 여름은 아픈 겨자의 치료비를 내주고 설아와 함께 겨자를 돌보는 등 겨자에게 애정을 듬뿍 쏟는다. 그 과정에서 설아와 점차 친해지게 되고, 설아를 통해 우주 카페의 주인 레아 등과 인연을 맺으며 점점 이번 삶에 정을 붙인다.
그렇게 초기화에서 멀어지고 있던 여름은 어느 날, 설아의 소원이 건강하고 행복한 할머니, 몸과 마음 모두 평화로운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아의 소원을 들은 여름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 소원이 초기화를 계속해서 반복해 온 자신의 지루한 인생을 관통하는 큰 줄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설아의 소원을 들어줄 자신만의 방법을 생각해 낸다. 바로 초기화 버튼인 운석을 없애는 것이다.
“죽지 마!”
설아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너한테 이런 풍경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해도 무엇을 원치 않는지는 분명했다. 내가 도무지 원치 않는 한 가지는,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설아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아리송하던 마음에 갈피가 선다.
_본문 중
어찌 보면 쉽지만, 여름에게 있어서는 가장 어려운 결정이기도 하다. ‘프로 리셋러’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한 생을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여름은 설아의 소원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설아와 함께 행복한 할머니가 되는 것. 이제 여름은 설아, 겨자와 함께 미래를 꿈꾼다.
과연 여름은 운석을 없앨 수 있을까? 설원에서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테리는 누구이고, 이 우주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는 끝까지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독자의 시선을 마지막 마침표로 이끌어간다.
누구나 세상을, 인생을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히 다시 살 수 있다고 해도 완벽한 인생을 살 수는 없다. 테리의 말대로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지금의 삶을 “없애고 싶은 페이지”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미래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냈으면 한다. 이 우주는 여름과 테리의 우주이자, 우리 모두의 우주이니까.
■■■ 책 속으로
끝. 윈터와 소피아는 물론이고 테리도 이 유적지의 끝까지 가지 못한다. 활을 쏘지도 못하고 정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오래된 도시를 바라보지도 못한다. 지금, 이 세상에 끝이 들이닥쳤다. 머지않아 세상이 닫히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휴대폰에서 ‘전원 끄고 다시 시작’을 누르듯이.
이번 초기화는 테리의 작품이 아니었다. 결단코, 절대로.
“말도 안 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_12쪽
“여기가 어디……예요?”
“말씀 드렸다시피 이곳은 다비드호랍니다.”
우리 동네 근처의 바다를 도는 유람선 이름이 다비드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여기는 유람선이 아니라 우주선이다. 창밖의 저 푸른빛이 푸른 별 지구가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제정신이라면.
“하지만 전 코스모스 그룹을 찾아온 건데요?”
“코스모스 그룹은 다비드호로 건너오는 통로예요. 다비드호는 여름 양에게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소고요. 우주의 초기화를 도와주는 곳이지요. 그렇지, 말 나온 김에 이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코스모스’는 바로 우주란 뜻이랍니다.”
_38쪽
나는 0의 제왕,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들거나 기분이 언짢아지면 곱셈 우박을 퍼부어 초기화를 했다. 어떤 수든 0과 곱하면 0이 되듯 초기화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거나 첫 출발선으로 되돌렸다.
초기화를 거듭하는 나에게 인생이란, 신어 보지도 않고 산 신발 같았다. 뒤꿈치가 빠져나오며 벗겨지려 하는 신발처럼 헐렁헐렁, 나와 겉돌았다.
_76쪽
“내 우주에서 할머니가 왜 난리냐고요!”
그쯤 해 두라니까! 이건 내 우주거든? 테리는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최대한으로 양보하자면, 최소한 테리의 우주‘이기도’ 했다. 토끼인지 꿀벌인지 이 사기꾼들, 대체 몇 명한테 우주를 팔아먹은 거야! 저 메뚜기 소녀는 기껏해야 중학생쯤 되어 보이고 테리는 예순이 훌쩍 넘었다. 속아도 테리가 먼저 속았고, 주인공이란 간질거리는 자리에 먼저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쪽도 테리다. 그러므로 이 운석은 테리의 것이었다.
테리는 젤리 벽으로 몸을 내던졌다.
_95쪽
테리는 옥수수밭에서 할머니가 해 주었던 이야기를 불현듯 떠올렸다.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도 어찌 보면 우주와 같단다. 누군가를 알게 되어 가까워질 때 둘 사이에 새 우주가 생겨나. 별 두 개뿐인 우주여도 무한히 넓고 큰 시공간이지.’
설원에서 만난 여름이, 그 아이가 이번에도 태어났을지 테리는 궁금했다. 태어났다면 이 우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여름이는 이번에도 초기화를 할까?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_151쪽
“난 다른 세상 말고 여기 있을래. 완벽하진 않지만 너랑 겨자도 있고, 지금이 좋아. 그리고 레아 언니가 그랬거든.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고.”
레아 언니가 그 말을 설아에게도 했구나. 그래,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으니까.
“다이어리 쓰다 보면 망할 때 있잖아. 글씨가 이상하거나 스티커를 잘못 붙였거나. 처음엔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다 뜯어 버렸는데 이젠 안 그래. 그냥 놔둬. 나한테 다이어리는 하루하루 완성해 가는 책 같은 거거든. 아쉬운 데가 있다고 뜯어내면 책 내용이 끊기잖아. 인생을 그런 식으로 편집하는 건 아닌 거 같아, 난.”
어딜 가든 지니고 다니는 미니 다이어리에 이토록 심대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니. 나도 다이어리를 써 봐야 하나.
_191쪽
“그렇게 자꾸 다시 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도 아프지 않고 슬프지도 않은 세상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겠지?”
그 말에 오히려 설아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이 좋다던, 망친 페이지를 뜯지 않는다던. 겨자가 병을 못 이겨 잘못되었다 해도 그건 설아에게 없애고 싶은 페이지가 아니겠지. 완벽하지 않은 삶의 일부일 거야.
“나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어. 하지만 잊지 말라고, 채여름. 결국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말이야.”
_211쪽
“아 참, 나중에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할머니가 되길 바란다고 전해 달래.”
나는 생뚱맞은 시점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테리의 안부 인사를 전했다. 역시나 설아는 어리둥절해한다.
“누가? 레아 언니가?”
“아니. 있어, 그런 사람.”
테리는 젤리 벽을 지나 자신의 우주로 잘 돌아갔겠지? 오래된 도시락 가게와 후계자로 점찍어 둔 윈터가 있는 세상으로.
_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