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시와 소설을 한 권으로 만나다
2021년 봄부터 시작된 ‘시소’ 프로젝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한 권으로 올해의 좋은 시와 소설을 만나고,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단행본으로 기획되어, 2022년 『시소 첫 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이 출간된 바 있다.
올해도 이어진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은 세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간다. 하나, 시와 소설을 함께 담는다. 둘, 계간 『자음과모음』 지면에 매 계절 다른 외부 선정위원과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을 실어 독자와 작가에게 공개한다. 셋,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작가 인터뷰, 선정 과정 등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은 계절의 시와 소설을 차례로 읽으면서 마치 시소 위에서 오르고 내리는 것처럼, 다양한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소설을 쓴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더욱 깊고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계절을 꼽아 선정한
임솔아 윤혜지 문보영 주민현의 시와 이미상 전예진 최진영의 소설
‘봄의 시’로 선정된 임솔아 시인의 「특권」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망해가는 것도 특권이라는 말을/친구는 들었다”라는 시어를 우리에게 내민다. 이 시는 친구와 두 사람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간결한 상황을 묘사하는 듯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세상에 관한 태도들을 보여준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될 수 없을지라도 순간과 과정의 편안함에 관한 시”인 동시에 “불편하거나 복합적인 감정 속의 평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선정되었다.
‘여름의 시’로 선정된 윤혜지 시인의 「음악 없는 말」에는 물가에서 물을 바라보는 사람을 등장시킴으로써 물가에서 벌어지는 작은 행동들을 묘사한다. 이러한 행동은 누군가의 생과 사가 담긴 풍경처럼 “바다와 모래, 탐색과 멸종,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그리고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시작과 끝을 떠올리게 하는 자연의 풍경을 통해서 시의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라는 사회적 문제로 가닿는다.
‘여름의 소설’로 선정된 이미상 작가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모험 서사와 소설 작법에 관한 두 이야기가 겹친 새로운 서사의 형태를 취하면서 “돌봄에 관한 기존의 서사를 해체하고 전복하면서 재구성해나”간다. 겹쳐진 서사의 종횡무진 속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험 서사 안에 변형된 돌봄 서사가 숨겨져 있어서, 처음에는 신나는 모험 서사로 두 번째는 틀에서 벗어난 돌봄 서사로, 두 번 읽어볼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을의 시’로 선정된 문보영 시인의 「지나가기」는 시 안의 원이 먼저 독자를 주목하게 한다. 이 원은 연작으로 이어지는 시의 궤적이나 “잔상의 연속체”로 남는다. 시적 주인공인 게오르크의 심정 변화와 함께 이어지는 원의 모습은 “감은 눈의 잔상과 그림자로만 그 테두리를 그리게 되는, 그런 존재에 대한 상상”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방적으로 선사하는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가을의 소설’로 선정된 전예진 작가의 「베란다로 들어온」은 ‘도시 괴담’을 주제로 쓰여진 소설이다. 이들은 귀신의 존재를 통해 그들이 외면하고 있던 과거와 현재를 듣는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한 이상한 일. 바꾸어 말하자면 일상의 불안정성, 현실의 비현실성”으로 둘러싸인 이 소설은“ 귀신들에게 베란다를 내어주는 따뜻한 괴담” 같으면서도 “삶과 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신화”로 펼쳐진다.
‘겨울의 시’로 선정된 주민현 시인의 「밤은 신의 놀이」는 “시 쓰기란 바로 그 모두가 바라보는 아름답고 밝은 면과 함께 그 한 겹 아래의 어두운 면을 모두 바라보는 작업”이라 생각하는 시인이 “어둠을 응시하고 작은 것들의 연결에 주목하는” 화자를 통해 신이 인간을, 또 인간이 신을 어떻게 사유하고 감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독특한 상상을 보여주는 시다.
‘겨울의 소설’로 선정된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은 암에 걸린 후 자신이 머물 집을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시간은 발산한다’는 사유를 통해 일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관념을 전복시키고 미래를 과거처럼 가지고” 온다. 이때 그가 살아가려 하는 집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겹친 공간이며, 시간을 뛰어넘어 평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공간에서 작가는 “우리에겐 이런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준다.
*’시소’는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고 함께 읽고 나누자는 취지에 따라 각 선정 작가 7인의 이름으로 대안 학교, 작은 도서관, 마을 공동체 등 도서가 필요한 곳에 일부 기증됩니다.
문보영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등이 있다.
윤혜지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미상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이 있다.
임솔아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를, 2015년 『문학동네』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 등이 있다.
전예진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어느 날 거위가』가 있다.
주민현
2017년 한국경제신문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킬트, 그리고 퀼트』가 있다.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이다.
최진영
소설가.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일주일』,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짧은 소설 『비상문』 등이 있다.
봄
시
임솔아 특권
인터뷰
임솔아 × 노태훈
이상한 평화로움 속에서
여름
시
윤혜지 음악 없는 말
인터뷰
윤혜지 × 김나영
이상한 좋음, 말 없는 음악
소설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인터뷰
이미상 × 안서현
끝나지 않는 독자의 모험
가을
시
문보영 지나가기
인터뷰
문보영 × 조대한
쓰고 지우다 지나간 것들
소설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인터뷰
전예진 × 안서현
이 불안이 우리를
겨울
시
주민현 밤은 신의 놀이
인터뷰
주민현 × 김나영
어둠을 바라보며 걷기
소설
최진영 홈 스위트 홈
인터뷰
최진영 × 노태훈
아직은 사랑보다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방에 들어온 햇빛만 펄럭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햇빛이 집 안을 너무 자주 걸어 다녔다.
― 임솔아, 「특권」
평범한 것들이 마음에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
등 뒤에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사건을
― 윤혜지, 「음악 없는 말」
어떤 기억은 통으로 온다. 가슴을 빠개며 기억의 방이 통째로 들어온다.
―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게오르크 어제보다 더 갔다
미래가 두려워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와본다
― 문보영, 「지나가기」
앞으로는 아저씨도 그런 얘기를 보고 듣게 될 거예요.
바람에 느티나무가 흔들렸다. 성긴 눈이 내렸다.
―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비가 너무 많이 온다면
그 모든 곳이 연결될 거야
― 주민현, 「밤은 신의 놀이」
나는 그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거나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 그 집에 살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을 기억한다.
― 최진영, 「홈 스위트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