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고리골』로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과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로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조선희 작가의 신작이 네오픽션에서 출간되었다. 새 장편소설의 제목은 『소금 비늘』. 기묘한 소재와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자극하는 심리묘사로 뛰어난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을 써온 조선희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인어에 대한 독특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 스코틀랜드 전설 속 셀키,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를 비롯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어져오며 영화와 게임에서 다채롭게 변주되었던 인어. 이번 장편소설에서 선보일 조선희의 인어는 우리가 처음 상상하는 특별한 인어로, 기묘한 소금 비늘을 지녔다. 그것은 사람의 주름처럼 백어(인어)의 몸에서만 자라난다는 비늘 모양의 진귀한 소금. 백어는 주기적으로 민물에 몸을 씻어내 비늘을 녹이고 자신을 감추며 인간세상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훔치면 무시무시한 불운을 당한다는 경고를 무릅쓰고도 비늘을 탐하는데……. 한편 진실의 수만큼 소금 비늘을 모으면 비밀을 알려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오감을 찌릿하게 자극하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미스터리 판타지.
조선희
저자 : 조선희
장편소설 『고리골』로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전 2권) 『아돈의 열쇠』(전 7권) 『거기, 여우 발자국』 『404번지 파란 무덤』 『루월재운 이야기』(전 2권), 소설집 『모던 팥쥐전』 『모던 아랑전』 등을 냈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로 2015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백어도
한마리
살인 도구
소금 도둑
염린등
환영
바퀴 없는 자동차와 낯선 고래
물고기가 백아흔한 번 몸을 뒤집으면
그믐밤 비밀의 광경
진실의 수는 사백아흔……
단고바위 형제들
제물
차갑고 무서운 밤
집으로
작가의 말
소금 비늘,
도둑의 목을 뎅강 자르는 무시무시한 칼
혹은 오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그림
백어도는 예로부터 숱한 미신을 품고 있는 섬이다. 특히나 백어석, 즉 백어의 소금 비늘이 나던 곳으로 전해지는데 순하의 어머니이자 백어인 남정심의 묘가 있다. 순하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다. 순하의 아버지인 최동수가 소금 비늘에 홀려서 남정심을 죽인 것. 지금 그의 아버지는 제정신을 잃은 채 감옥에 갇혀 있다. 그 상처를 묻어두고 순하는 어머니인 백어의 마음을 깊이 새긴 채 살아간다.
“자라면서 그는 어머니가 마을의 다른 여자들과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 피부는 늘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 빛은 가끔 그에게 한낮의 눈부심과 저녁의 불그레한 그림자를 오가며 모호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 그것은 백어의 비늘이 지닌 빛이었고 그러므로 어머니는 백어였다.”(114쪽)
한편 도시에서는 백어인 한마리가 살아간다. 그녀는 벽화를 그리는 예술가. 소금 비늘로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소금 비늘의 다채로운 오묘한 빛으로 유명해서 한마리는 바다 작가로 통한다. 한마리의 남편인 용보는 사회에 절은 무심한 회사원. 용보는 어느 날 소금 비늘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그게 엄청난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금기를 어기고 한마리의 비늘을 훔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백어의 비늘은 백어가 처음 한 번만 주는 거야. 그것만 행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운을 가져오지.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화가 난 백어가 자기 비늘로 소금 도둑의 목을 뎅강 잘라.” (63쪽)
소금 비늘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
강렬하고 매혹적인 미스터리 판타지!
준희는 용보의 친구이자 한마리와 용보를 이어준 인물이다. 그의 조상인 황씨 가문은 대대로 소금 장사를 해왔고 여러 문헌에 기록된 소금 비늘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왔다. 백어의 비늘을 훔친 자들은 익사하거나 목이 잘렸다. 하지만 황씨들은 백어의 비늘을 제 손으로 훔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다. 수백 년간 그들에게 후환이 없었던 것은 언제나 남의 손을 빌려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아온 소금 비늘. 준희는 이제 선조의 유산을 이어받아 일을 완수하려 한다. “흰 비늘 세 개가 모이면 짝을 이루나 온전한 빛이 아니다. 온전하지 않은 빛에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다. 섣불리 시험하지 마라.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리면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온전한 진실의 수는 사백아흔…….”(87쪽) 그러니까 진실의 수만큼 소금 비늘을 모으면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것. 하지만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인어의 흰 비늘이 붉은 석양의 빛을 발할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아라. 오래전에 죽은 그림자들이 돌아와 너의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같은 쪽) 한마리의 스케치북에서도, 오래된 문헌들에서도 발견된 저 문장이 향하는 건 무엇일까. 인간의 욕망과 금기에 대한 탁월한 대서사시이자 흡입력 있는 미스터리 판타지가 펼쳐진다.
“나는 명수(暝水)에서 왔느니라. 그곳에서 어떤 이는 등불이 되고 어떤 이는 그림자가 되었지. 그리하여 나는 처음과 끝을 모두 보았노라. 또한 한 세상을 모두 보았노라.”(413쪽)
작가의 말
말이 전하는 온기와 상처, 말이 가진 무게, 약속의 소중함, 행운과 불운을 향한 선택, 그 밖의 이런저런 입장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소금 비늘은 물질적으로는 한 생명의 피와 살과 땀이며 정신적으로는 남겨진 꿈이자 자아입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낯선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베지 말아야 하는 나무 같은 것이고 한 세계가 숨을 쉴 수 있는 숲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고, 너와 너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나와 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를 합니다. 때론 후회할 것을 알면서 후회할 일을 선택하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