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숨겨진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난징의 굿맨!
한 희극적 인간이 목도한 비극적 사건에 대한 기록!
2009년 화제의 영화 「존 라베」의 원작
이 책은 1938년 난징대학살 당시 중국에 머무르며 25만명의 중국인들을 보호했던 존 라베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놀랍도록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술된 라베의 일기는 후대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밝혀주는 특급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라베는 난징을 떠나라는 본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난징에 잔류하여 25만명의 중국인들과 함께 할 정도로 인간에 대한 큰 사랑과 책임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1937년 겨울, 일본군이 난징에 입성하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국 사회의 상층 계급들이었다. 정부 관계자들과 군인, 경찰 등등. 그들은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가장 안전하고 먼 곳으로 도망쳤다. 남겨진 것은 가난한 민중들뿐이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외국인이었던 존 라베는 안전구를 만들어 폭력과 강간의 위협에 노출된 수 십만의 사람을 보호한다. 나치의 동맹국인 일본에 맞서 히틀러의 이름으로 중국인을 구한 나치당원 존 라베의 이야기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존 라베의 행동 때문에 당시 중국인들은 존 라베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렀다.
1997년 독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4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 책은 2009년 독일의 오스카상 감독인 플로리안 갈렌베르거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25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난징대학살에 대해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고 왜곡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존 라베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난징대학살에 대한 역사적인 진실을 담고 있어서 그 가치가 더 크다고 하겠다.
존 라베
▶▶ 저자
존 라베(JOHN RABE)
1882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908년부터 1938년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그는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 의장으로서 25만 명의 중국인들을 보호했다. 중국인들은 그를 ‘살아 있는 부처’라 칭했다. 나치주의자였던 그는 1938년 비밀경찰 게슈타포로부터 난징대학살에 대한 침묵을 명령받았으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탈(脫)나치화 신청이 거부되기도 했다. 그는 1950년에 베를린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 편저자
에르빈 비커르트(ERWIN WICKERT)
1976년~1980년까지 중국 주재 독일 대사를 지냈으며, 1982년에는 『내부에서 본 중국』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는 1936년 난징에서 처음 라베를 만났고, 1945년 이후부터는 독일 외무부 문서고에 있는 라베의 일기와 서류들을 조사하여 그의 일기를 시대사적 배경 속에 자리매김하는 작업을 하였다.
▶▶ 역자
장수미(張秀美)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으로 석, 박사과정 수료.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방송영화학, 미술사, 교육학으로 마기스터 학위 취득. 괴테-인스티투트에서 GDS(독일어 최고 과정 자격증) 취득. 영남대, 경원대, 대진대 등 출강.
이 책에 대하여
프롤로그
존 라벤의 난징일기
학살의 전조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결성
공격을 기다리며
잔학행위의 시작
크리스마스
새해
외교관들의 귀환
지멘스 난징 지사의 폐쇄
안전구 폐쇄
살아있는 부처
작별
독일에서의 존 라베
존 라베의 베를린 일기
에필로그
1937년의 독일과 중국
히틀러가 평화의 전령?
존 라베는 나치였나?
폴라 타 데이나
존 라베의 마지막 몇 해
일기의 발견
부록
기록물
주
옮긴이의 말
20세기의 숨겨진 홀로코스트 난징대학살
1937년 12월, 중국의 수도 난징이 함락당했다. 3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 2~8만여 명의 여성이 일본군에 강간당했으며 칼로 목 베기, 산 채로 매장하기, 몸을 반쯤 구덩이에 파묻고 밖으로 나온 부분을 군견들이 물어뜯게 하기 등 각종 잔인한 방법들로 학살을 자행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한일병탄, 청일·러일전쟁 등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중국침략은 그러한 자신감만이 뒷받침해준 것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내재되었던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기아, 이민과 같은 충격적인 대내적 위기는 오히려 그들의 시선을 국외로 돌리게 만들어 일본의 급진적 민족주의자들로 하여금 대중국 침략 계획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1937~1938년의 끔찍하고도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당시도 그랬지만 아직까지도 난징대학살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주목을 받지는 못해왔다. 피해국인 중국조차 한동안 일본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이 집권한 중국이나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각자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무런 피해 보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있어 수십만 중국인의 목숨보다는 당시 동아시아의 역학 관계와 공산주의를 경계할 수 있는 일본과의 우호관계가 더 중요했다.
1937년 겨울, 일본군이 난징에 입성하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국 사회의 상층 계급들이었다. 정부 관계자들과 군인, 경찰 등등. 그들은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가장 안전하고 먼 곳으로 도망쳤다. 남겨진 것은 가난한 민중들뿐이었다.
그리고 몇몇 외국인들. 그들은 소위 안전구(安全邱, safety zone)라는 것을 만들어 폭력과 강간의 위협에 노출된 수십만의 사람들을 보호했다.
외국인들 중에서 특이하다 못해 가장 신비스러웠던 인물이 바로 ‘존 라베’일 것이다. 그는 나치당원이었다. 일본군의 폭격에 맞서 나치당기를 펼쳐든 나치였다. 그는 히틀러의 이름으로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나치의 동맹국이던 일본이었다. 가히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라베의 도움을 받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그가 펼쳐들었던 나치 깃발은 마치 부처님의 ‘卍’ 자와 같았으리라. 실제로 그는 학살 당시 수많은 중국인들로부터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도 어려웠던 시대에 라베는 인간 이상의 존재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독일로 돌아온 라베는 즉각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난징에서 보낸 문서와 일기가 문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국에서 그는 마치 유배자와 같은 생활을 지속하다 쓸쓸히 죽어갔다. 사람들은 라베를 잊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중국의 몇몇 사람들만이 그를 추모하며 애도하였다.
존 라베, 난징 그리고 잊혀짐
라베의 일기가 발견된 것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라베가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과 히틀러를 훌륭한 지도자로 믿고 있었음을 피력한 일기 부분들이 문제시되었기 때문에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편저자 에르빈 비커르트는 라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기의 발견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방대한 양의 일기들 중에서 라베의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를 전면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내용들을 선별하였다.
난징대학살 기간 일본군의 만행은 우리에게 인간의 속성과 전쟁에 대해서도 무거운 질문을 던져준다. “현대전은 지상의 지옥이다”라고 라베는 썼다. 1929년의 세계적 공황 이후 만주사변, 중일전쟁, 히틀러로 확대된 제2차 세계대전은 수천만의 목숨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전후의 열전 및 냉전을 거쳐 아직 그 연장선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현대전의 의미와 평화의 기반에 대한 질문은 이 책이 던지는 또 다른 화두일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이 전쟁범죄의 진실에 대해 알게 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의 비행을 일본 민족의 죄로 짐 지우고, 일본 민족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면, 그러면서 동시에 그런 잔학행위는 일본인들만의 문제라고 결론지어진다면 그것은 이 책의 목적한 바와 전혀 동떨어진 결론이 된다.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특별한 경향이 있다고 얘기되는 몇몇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만이고 독선일 것이다.
영화
“Wer ein Leben rettet, rettet die ganze Welt.”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사람은, 세상도 구할 수 있다”
의 개정판은 2008년 10월과 2009년 3월에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1997년의 초판은 독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동시(영어는 1998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네덜란드에서도 번역되었다. 라베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는 오스카 수상 감독인 플로리안 갈렌베르거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독일, 중국, 프랑스 3개국 합작으로 제작되어 2009년 4월 2일 독일, 4월 28일 중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10월에 있을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될 것으로 보이며,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도 곧 개봉할 예정이다. 독일의 유력 언론인 슈피겔(Der Spiegel)은 영화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유럽에서 파괴를 일삼던 나치의 깃발이,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러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이 책과 영화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존 라베는 수많은 역경 앞에서 좌절했지만, 끝내 휴머니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은 어떤 종교나 이념의 발로로서가 아니라 단지 양심에서 나온 인간애의 구현이었기 때문이다.” 슈피겔Der Spiegel
독일인들에게 나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상징들은 하나의 터부와 다름없다. 그리고 존 라베는 나치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빨리 그를 잊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독일인들은 커다란 충격 앞에 서게 되었다. 정상적인 나치들이 자신들의 깃발 아래 타인의 목숨을 이용하였다면, 이 비정상적인 ‘나치’는 타인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깃발을 이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언론 사이트인 에 따르면 영화 의 일본 개봉이 결국 무산되었다고 한다. 25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적 비극인 난징대학살에 대해 가해국인 일본은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왜곡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우익들은 영화 에 출연한 일본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있으며, 그것은 을 쓴 미국의 여류 작가 고(故) 아이리스 장(Iris Chang)에게 그랬던 것과 유사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리스 장은 그녀의 책을 출간하고 난 후, 심한 정신적 압박감과 협박에 시달려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