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환 평론가의 신작 평론집 『정공법의 문학』. 핵심을 에두르지 않는 정확한 비평,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필치로 신망받는 저자가 2007년 《공감과 곤혹 사이》 이후 7년 만에 펴낸 평론집이다. 총 4부 33편의 글을 수록하였다. 자본에 대한 욕망이 인간다움의 가치를 잠식하는 시대, 여전히 도전하고 치열하게 꿈꾸는 우리 문학작품들의 진면모를 ‘정공법의 시선’으로 드러내고 있다.
고인환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부분을 통해 등단하였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제7회 젊은평론가상(2006)을 받았다. 제8회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2014)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결핍, 글쓰기의 기원』(2003), 『말의 매혹: 일상의 빛을 찾다』(2005), 『공감과 곤혹 사이』(2007), 『한국문학 속의 명장면 50선』(2008), 『한국 근대문학의 주름』(2009), 『정공법의 문학』(2014), 『문학, 경계를 넘다』(2015), 『문학의 숨결』(2016) 등이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구
중심의 담론을 벗어나는 학문적 풍토를 마련하기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서구세계의 문화 담론을 공부하고 있다. 2015년 2월 말 ‘경희대학교 범-아프리카문화연구센터’를 개소하여 센터장을 맡아 비서구 세계의 소통과 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7년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학 아프리카연구센터의 초청으로 한 해를 방문교수로 지내며 연구했다.
제1부 연대와 갱신연대의 문학을 위하여 / ‘새로운 윤리의 길’과 노동소설의 서사적 자의식 / 현실주의 서사의 자기 갱신 / 서사의 힘 / 의도의 과잉과 형상화의 미흡 / 젊은 소설의 존재 방식 / 이성의 붕괴와 안주의 불가능성 / ‘독립’을 향한 지난한 ‘혁명’ /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조국을 위하여
제2부 리얼리즘의 속살‘그대’에게 가는 길 / 농촌/농민의 속살 보듬기 / 새로운 가족의 탄생 혹은 아버지의 ‘경이로운’ 귀환 / 삶의 무게를 견디는 추억의 서사 / ‘끝없이’ ‘그리운’ 그 ‘뜨거운 가슴’ / ‘프렌칭’ 도시 인간 생태학 /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 박제된 일상을 유영하는 ‘백야’의 언어 / 저공비행, 혹은 “품위 있는” “소멸”을 위하여 / ‘착한 소설’의 역습
제3부 ‘속울음’의 시학‘분노’를 넘어 ‘공감’으로 / 생태주의 시와 사회학적 상상력 / ‘아름다운 노동’을 위하여 / 서정의 길을 여는 부활의 ‘백비(白碑)’ / ‘목숨을 걸고’ / ‘저녁 6시’, 시 이전 혹은 시 이후의 시간 / ‘저항’과 ‘서정’, 혹은 체제와 이념의 장벽을 넘어 / ‘속울음’의 시학
제4부 ‘시쿰한’‘생’의 언어“11월” 혹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 “시쿰한” “生”의 언어 꿈꾸기 / 언어가 숨을 쉬는 순간 / 지독한 그리움의 서정 / 동화와 풍자의 서정 / ‘물’과 ‘사막’의 ‘퀼트’
날로 거세어지는 자본의 힘은 인간에게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점차 앗아간다. 현대인들의 노동은 소외당하고 있으며, 무의식까지 상품으로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대, 과연 문학에 효용이 있는가, 문학은 시대의 요구에 뒤처지지 않고 제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이 책에서 고인환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에둘러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돌파하고자 한 우리 문학작품들을 들여다본다.
우선, ‘정공법’의 의미가 궁금하다. 책의 내용을 토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거짓 없이 정직하게 말하기, 문제의 핵심을 에둘러가지 않기, 무작정 새로움만을 좇아 ‘지금-여기’ 발 딛고 선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이러한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공법正攻法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휩싸는 자본의 그물망으로부터 인간 자신을 구원할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럴 때,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자본에 포박된 근대적 일상이 발 딛고 살아갈 실존의 장이 되며, 또한 그러할 때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수사학은 어느 순간 구원의 서사로 한 단계 몸을 바꾼다는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문학작품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자 자신의 글쓰기 방법 또한 ‘정공법’ 그대로이다. 저자의 글에 현란한 수사나 모호한 해설이 끼어든 대목이라곤 없으며, 단단하고 간결하다. 글을 읽어가다 보면 마치 맑은 물 한 잔이 몸을 관통해간 듯 청량하다. 독해하기 어렵고 모호한 비평언어가 난무하는 평단 현실에서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평론을 ‘정공법’으로 돌파하여 독자의 손에 쥐여주는 듯하다.
책의 구성과 내용
삶의 고통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문학의 연금술
제1부 ‘연대와 갱신’에서는 직핍한 눈으로 우리 문학의 현 주소를 들여다보고 진단한다. 소통과 공감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고자 하는 현실주의 문학의 고투가 필자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 타자의 고통과 연대하려는 문학적 실천 양상, 리얼리즘 문학이 직면한 서사적 자의식과 자기갱신의 고투, 근대적 일상에 응전하는 젊은 소설의 가능성, 우리의 현실을 되비추어보게 하는 비서구 문학의 양상 등이 다루어진다. 특히 우줘류, 누르딘 파라 등 대만?이란?소말리아 등 비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되비추어보며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 낀 한국 문학의 초상을 재발견하는 글이 이채롭다.
제2부 ‘리얼리즘의 속살’에는 ‘지금 여기’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끈 소설들의 표정이 포착되어 있다. 공감과 소통의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에서부터, 화려한 비상을 꿈꾸지만 저공비행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고뇌와 방황, 웃음과 울음이 뒤엉킨 동시대 농촌의 현장, 서정과 서사가 한몸으로 결합된 애틋한 내면풍경, 새로운 가족의 탄생 혹은 아비의 감동적인 귀환 장면 등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이 다채롭다. 동시대 리얼리즘 문학의 속살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계의 불의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시들의 다양한 양상을 추적하는 글들을 모은 3부의 제목은 ‘속울음의 시학’이다. 심보선, 김신용, 황규관, 하종오, 이승하 등,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자신만의 언어로 스스로의 영혼을 증명하고 있는 시인들의 고투를 소개한다. 분노와 공감, 절망과 희망, 문학사회학과 생태주의, 민중성과 서정성 사이에서 ‘지금 여기’의 어둠을 핍진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시편들의 ‘속울음’과 동행하고자 했다.
제4부 ‘시쿰한 생의 언어’에서는 전통 서정과 새로움의 서정 사이를 가로지르며 지금 우리의 시를 갱신하고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서영식, 이종섶, 공광규, 하재영, 김경인 등의 시 세계를 통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스며들어 외로움을 쓰다듬는 순간, 경쾌하고 발랄한 감수성이 삶의 무게를 거느리는 경이로운 풍경, 언어가 숨을 쉬는 순간을 길어 올리고 있는 장관, 지독한 그리움의 서정이 황폐한 현실을 몸에 담는 모습 등을 포착했다. ‘시쿰한’ 생의 ‘곰삭은 향취’를 웅숭깊은 시선으로 갈무리한 우리 시의 빼어난 결실이 이 지면에 음각돼 있다.
새로운 문학의 논리, 화려하게 보이는 남의 것을 좇아 비상하는 작품들보다는 현실의 고통, 현실의 자리를 부여잡기 위해 애쓴 문학작품들을 곡진하게 보듬는 저자의 애정이 이 책 『정공법의 문학』 전체에 녹아 있다. 이 밝고 맑은 글들이 ‘지금 여기’의 문학과 더불어 우리를 계속 꿈꾸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