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강은교의 산문 미학의 절정을 만나다!
시인 강은교의 산문선집, 『어느 불면의 백작 부인을 위하여』. 등단한 지 40여 년이 되어가는 여성 시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역추적할 수 있도록 산문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저자의 산문 속에 깔려 있는 고독과의 만남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인도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발표해온 산문 중 22편을 선별하여 총 4부로 구성했다. 제1부에는 소녀 시절을 추억하는 산문을 수록하고, 제2부에는 소소한 일상 중의 얻은 깨달음을 산문에 담아냈으며, 제3부에서는 살아오면서 경험한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등 저자 특유의 ‘순례자 의식’이 묻어나는 산문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는 시와 관련된 생각의 편린을 고백하는 산문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는 저자의 산문을 통해 그녀의 ‘순례자 의식’이 스스로 버려짐을 체험하며 얻어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는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저자의 개인적인 사진을 풍부하게 담아 그녀의 일상생활 속으로 초대한다.
강은교
강은교 – 1945년 함남 홍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 ‘순례자의 잠’ 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75년 제2회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으며 1992년에는 제3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바람 노래>,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그대는 깊디깊은 강>, <벽 속의 편지>, <어느 별에서의 하루>, <초록 거미의 사랑>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허무수첩>, <추억제>, <그물사이로> 등이 있고, 동화로 <숲의 시인 하늘이>, <하늘이와 거위> 등이 있다.
1부
잊을 수 없는 순간들
한밤중의 전화
아, 가을 그리고 열매
어느 불면의 백작부인을 위하여
낮은 것들을 위하여
솔방울
나의 언덕
투병기
2부
아파트의 심심한 아이들
바다에서의 성사
실을 풀며
말을 위하여
단편들
꽃의 비망록
동물원 이야기
3부
죽음들
기계들
4부
이름
시를 열던 시절
아버지와 엘리엇이 있는 습작 시절
기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강은교는 풀잎에 맺힌 물방울이다. 가늘디가는 바람 한 점도 놓치지 않고 파르르 떠는 이 물방울의 투명하고 예민한 감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가만히 웅크려 앉아 물방울을 들여다보면 존재의 심연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온 자의 서늘함이 보이고, 금방이라도 둑을 허물며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비애를 꾸욱 눌러 참고 있는 자의 견고한 의지도 보인다. 자신의 안을 향해 뭉쳐진 채 바깥을 향해 반짝이는 이 한 방울의 떨림 속에 수심을 알 길 없는 바다가 있고, 섬이 있고, 별을 품은 하늘이 있다. 비리데기가 생명수를 얻듯 시인은 고통의 극점까지 가서 한 종지의 이슬을 얻어 온다. 맑게 글썽이는 이 순도 높은 문장의 향연에 누가 목마른 뿌리를 적시고 싶지 않으랴. 감히 말하건대, 강은교는 하나의 축복이다. 이 산문 선집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고통이 풍경이 되는가를 엿보게 될 것이다.
손택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