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 소설집. [한국소설]을 통해 문단에 등단(1998년)한 강윤신 소설가, [월간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1998년)한 김서련 소설가,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2002년)한 김이은 소설가, [21세기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2000년)한 류담 소설가, [동서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2001년)한 방현희 소설가,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등단(1997년)한 신장편 소설가, [문학수첩]을 통해 문단에 등단한 윤성호 소설가 [라쁠륨]으로 문단에 등단(2002년)한 윤채연 소설가, [농민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1997년)한 이미경 소설가,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2003년)한 임정연 소설가, [한국소설]을 통해 문단에 등단(2001년)한 최옥정 소설가, [문학나무]를 통해 문단에 등단(2002년)한 정승재 소설가의 소설을 수록하였다. 신예 소설가 12인의 소설 12편을 통해 우리나라 소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책이다.
강윤신
임정연 1967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으며,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윤성호 1961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숭의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문학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신장현 1958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와 동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홍콩의 손거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방현희 1964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1년 《동서문학》 신인상에 <새홀리기>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02년 《문학 판》 장편소설 신인상에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가 당선되었다. <녹색 원숭이>, <날아라, fragile> 등을 발표했다. 류담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2000년 《21세기문학》으로 등단했다. 작품집으로 《사허의 아침》이 있다. 정승재 1959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문학나무》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밀레니엄의 커피나무>, <아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밥 굶는 남자> 등의 작품과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솟대문학 편집차장과 장안대학 강사로 활동 중이다. 김이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일리자로프의 가위>, <매직카페>, <빈이비니>, <진미식당 블루스>, <숑카 그리고 그녀의 花> 등을 발표했다. 김서련 1960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났다. 1998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나비의 향기>, <검은 오후>, <내 마음속 어딘엔가>, <동굴 속으로>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옥정 196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영문과와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한국소설》 신인상에 <기억의 집>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원의 중심>, <유실물>, <그의 지문>, <얼룩>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충북 영동 감고을레서 출생하였으며, 1997?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오라의 땅’이 당선된 뒤로 소설 공부에 매달렸다. 2002년 제6회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청수동이의 꿈’이 대상을 받았다. 현재 대전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재학중이다강윤신 1961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학 석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있다. 제97호 살풀이춤을 전수했으며, 한국소설작가회 부회장에 재직 중이다. <쉼표>, <소금창고>, <마른 장마>, <푸른 길>, <유리구두를 신은 발>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윤채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2002년 《라쁠륨》에 <발찌>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초콜릿 – 강윤신
흑모란모란앵두 – 김서련
외인출입금지 – 김이은
야만의 여름 – 류담
붉은 이마 여자 – 방현희
흰 바람벽의 고인돌 – 신장현
바리케이드 – 윤성호
그녀의 발 – 윤채연
도깨비바늘 – 이미경
동굴 – 임정연
WANTED – 최옥정
붉은 뇌 – 정승재
■소통을 통한 창작, 세상 한가운데에서의 글쓰기_비단길-서울 문학 포럼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영역 속에 침잠하여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사념과 고투하며 한 땀 한 땀 베를 짜듯 문장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스님들이 입산수도하기 전에 세상과 만나기 위해 유랑하듯, 소설가들 역시 속세(?)에 머물다가 어느 날 홀연히 세상과 스스로 단절하여 창작에 들어간다. 아무개 소설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면 지인들은 으레 ‘글 쓰러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몇 달(길게는 몇 년) 종적을 감추었던 소설가는 마치 해탈한 선승처럼 약간 초췌하지만 혜안을 얻은 표정으로 작품 하나를 들고 나온다. 사실이 그렇든 아니든 일반 독자들은 소설가를 ‘예술 하는 도사’쯤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 실제로 문학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비밀 결사처럼 음지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시대의 부조리를 반영하던 소설과 시가, 그릇된 시대의 위정자와 권력자들에게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무수히 생겨난 문학 모임과 대안학교, 문화센터의 문학 강연 등이 이 시대의 평화 무드를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인 것만 같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이 양지로 나오도록 이끈 이 시대의 현실 이면에는 여전히 우울한 현대인의 초상이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양지에 선 문학과 갈수록 음울해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 소설이, 소설가가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서 소통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접해야 하는 당위성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비단길-소설 문학 포럼>은 소설가 윤후명 씨와 그의 문하생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교환하며 우리 소설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문학 공간이다. 이들은 <한국소설학당>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작품을 교환해왔다. 《붉은 이마 여자》는 <비단길-소설 문학 포럼>이 내놓는 첫 번째 작품집이다. 여기에 실린 12편의 단편을 통해 소통과 나눔이 소설 창작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무너진 집에서 불륜을 꿈꾸다_류담의 <야만의 여름>, 윤채연의 <그녀의 발>, 정승재의 <붉은 뇌>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을 잃었을 때, 온 생을 기대었던 믿음이 무너졌을 때, 현실을 등진 자아는 이상을 좇거나 절망에 빠진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고 금이 갔을 때, 그것을 목격하고도 이혼이 불가능할 때, 당사자들 역시 이상과 절망의 길을 간다. 그래서 불륜은 이상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하다.
<야만의 여름>은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둔 여자를 다룬다. 식물인간 상태로라도 남편을 살려두고 있어야만 다달이 보상금이 지급되기에 여자는 ‘아내’라는 이름을 버릴 수가 없다. 간간히 떠오르는 남편의 건강한 영상이 괴로운 건, 그녀가 불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찜질방에서 다른 여자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녀는 불륜이 가져온 또 다른 불안에 괴로워한다. 남자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다.
<붉은 뇌>는 30대 중반에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뒤 집에서 사내아이 둘을 돌보며 고시를 준비하는 남자의 삶을 엿본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고시생으로 전락(?)한 남편을 격려하지만, 그는 아내의 격려가 속임수라는 사실을 눈치 챈다. 아내의 귀가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아들 둘이 다니는 유치원 여선생을 자신의 아내 자리에 옮겨놓고 달콤한 상상에 빠져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상일 뿐이다. 그는 아내와 헤어질 수가 없다. 그의 불륜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애 보는 고시생’도 어불성설이다.
위의 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륜을 통해서 현실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불륜 역시 뼈저린 현실의 다른 모습임을 깨닫는다. 돈과 경제적인 무능이 개입하는 순간, 불륜은 이상도 절망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발>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 소설은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들과 아내를 떠나보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에겐 일종의 관음증이 있다. 여자들의 발을 훔쳐보는 것. 이처럼 기이한 그의 행동은 오래전에 사랑했던 한 여자, 하지만 자신이 버린 여자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그 여자는 아름다운 발을 가지고 있었다. 관음증이 계속되는 동안 그 여자의 발보다 아름다운 발을 가진 여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이 안도감을 품기도 한다. 이 소설의 말미에서 결국 그 ‘아름다운 발’이 등장한다. 아이는 여전히 장애에 시달리고 있고, 이혼했던 아내는 약을 먹어버렸다. 예전의 아내를 찾아가는 전철 안에서 ‘아름다운 발’을 발견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발’을 쫓아간다. 언제나 땅(현실)에 기대고 있는 발과의 ‘불륜’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미지수다.
▶조각 난 기억 속에 숨은 판타지_김이은의 <외인출입금지>, 방현희의 <붉은 이마 여자>, 최옥정의
<외인출입금지>와 <붉은 이마 여자>, <그녀의 발>, 는 왜곡된 기억 속에 숨겨진 환상을 다루고 있다.
<외인출입금지>는 현실이 아닌 것이 분명한 기억의 한 조각을 현실로 받아들였거나, 또는 한 가지 사건에 상반된 기억을 가진 존재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미스터리 기법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소설은 끝내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지 않은 채 입을 다물어버린다. ‘외인출입금지’ 구역으로 기억을 유폐시킨 불안의 원인을 묻는 소설이다.
<붉은 이마 여자>의 여자는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처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여자가 넘나드는 환상의 세계는 앨리스가 경험한 것처럼 신비하지 않다. 끈적끈적하고 축축하다. 그 속에서 여자는 공격적인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관능을 강요당한다. 그 짧지만 긴 여행 속에서 여자가 얻은 것은 자아에 대한 확인이다.
는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월세방으로 들어간 여자가 점점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다가 집주인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을 혼동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억은 솔직하지 않다. 기억은 조작되기도 하고 은폐되기도 한다.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조작된 기억이 현실을 대신하기도 한다. 현대인의 불안은 동일한 현상을 목격한 사람들 사이에도 기억의 혼란을 불러온다. 그것은 해석의 차이일 수도 있고, 유리한 것만 획득하려는 이기심에서 오는 의도된 누락일 수도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될까_강윤신의 <초콜릿>, 김서련의 <흑모란모란앵무>
<초콜릿>과 <흑모란모란앵무>의 등장인물은 삶의 벼랑에서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초콜릿>의 여자는 자신의 어릴 적 친구와 여관방에서 약을 먹고, <흑모란모란앵무>의 주인공은 소통이 단절된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뱃속의 아이를 어루만지며 내일을 기약한다. 하지만 <흑모란모란앵무>의 주인공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초콜릿>에서 절망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일을 기약하는 의지가 반드시 희망적인 미래로 연결되지는 않으리라는 불안 때문에 자살과 기약이 동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숨은 자아_신장현의 <흰 바람벽의 고인돌>, 윤성호의 <바리케이드>, 이미경의 <도깨비바늘>, 임정연의 <동굴>
<흰 바람벽의 고인돌>과 <바리케이드>, <도깨비바늘>, <동굴>은 외부의 공격에 의해 또는 내부의 갈등과 충동에 의해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흰 바람벽의 고인돌>의 박사 부부는 아이를 유괴당한 뒤 ‘고인돌’이라는 단서만을 가지고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결국 아이는 뺑소니차에 희생된 뒤 학교 앞 가짜 고인돌에 묻혀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다. 박사 부부는 이제 삶의 무덤 속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바리케이드>의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모텔에 도달할 길이 막혀 있음을 깨닫고 어둠의 질주를 행하며, <도깨비바늘>의 두 남자는 한 여자를 훔쳐보고 있다. <동굴>의 남자는 완벽한 어둠을 목격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생래적인 습성이든 비극에 의한 충격이든 좌절에서 오는 울분이든 위 소설 속의 자아들은 어둠 속에서 자아를 목격하며, 어둠 속에서 타인을 분석한다.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온몸이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물론 위 소설들에서 보이는 어둠의 속성은 다르다. <흰 바람벽의 고인돌>의 어둠은 범죄를 상징하며, <바리케이드>의 어둠은 좌절한 자아가 선택한 벼랑을 의미한다. <도깨비바늘>의 어둠은 폐쇄성을, <동굴>의 어둠은 솔직한 자아와 대면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소통 부재의 현실에서 소통하는 글쓰기의 가능성
《붉은 이마 여자》에 작품을 실은 12명의 소설가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며 소설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왔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소설이 각기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단절, 어둠, 불안 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재의 다양성은 있으나, 주제의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망이 부재하는 현실의 중압감이 그만큼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단길-소설 문학 포럼>을 이끌고 있는 윤후명은 이번 작품집의 출간을 계기로 보다 새롭고 뜻 깊은 문학 가치의 창출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부디 이러한 시도를 시작으로 보다 풍성한 우리 소설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