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은 한국 사회에서 독특한 마이너리티의 위치에 있는 한 사내가 운명의 덫에 걸려 파멸하는 스릴러다. 또한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범죄라는 계기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내의 이야기다. 거대 투자 기업 HM캐피탈의 배후에서 조선족 밑바닥 세력과 한국 정치권을 오가며 여러 세력을 조종해 금융 범죄를 저지르는 엘리트 조선족 3세 제임스 리, 연변에서 쫓기듯 한국으로 넘어와 운명의 시험대에 선 조선족 불법체류자 정문환, HM캐피탈에 의해 가족이 몰살된 후 ‘보이지 않는’ 그들을 실체를 찾아내려는 기자 조성우. 끊임없이 쫓고 쫓기는 운명에 처한 이들의 슬픈 인연이 시작된다.
유현산
저자 : 유현산
저자 유현산은 1972년 서울 출생. 상도동, 신정동, 화곡동, 부천을 떠돌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뒤 11년 동안 시사주간지에서 일했다. 2010년 장편소설 『살인자의 편지』로 제2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받았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인데, 어찌 된 일인지 끔찍하고 무서운 것들만 쓰게 된다. 스티븐 킹의 표현을 빌리면 마음속의 그물에 그런 것들만 걸린다. 진정한 공포는 일상 속에 있다고 믿으며 스릴러 소설을 계속 쓰고 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편지』,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출간했다.
첫번째 날
살인의 이유
지옥의 문
다가오는 그림자
상실의 힘
비밀의 뒷면
추방
두번째 날
작가의 말
우리 안의 ‘다른 사람들’ 조선족
조선족 사회를 통해 우리 내부의 공포를 드러낸다!
신문사 기자인 조성우는 아내와 아들이 집에서 처참하게 살해되어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소설가인 아내는 최근 스토커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고, 그로 인해 르포를 쓰기 시작했는데, 조선족 범죄에 관한 르포를 위해 조사를 하던 아내의 부탁으로 조성우 역시 취재를 하고 있었다. 작가 하나가 조선족 범죄를 파고들 때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기자까지 나서서 취재를 하고 다니는 게 위협으로 다가왔던 걸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된 조성우 기자는 죽음의 배후에 있는 조직들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선족이 세운 회사 중 가장 돈이 많고, 구로와 영등포의 폭력배들을 움직인다는 소문의 고려행정사라는 회사를 알게 되고, 그 관리 하의 중국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남자아이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간 탓에 남자아이는 살해되고, 살해되기 직전에 조성우에게 보낸 ‘평화농장’이라는 문자메시지를 토대로 조성우는 다시 조사를 시작한다.
조선족 3세인 제임스 리는 한국에 투자회사인 HM캐피탈을 세웠는데, 조성우가 HM캐피탈의 자산 운용 구조를 조사하던 중에 정치인 성현범과 고려행정사라는 조선족 범죄 조직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평화농장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2001년에 터진 금융사기 사건, 이남상조신용 이사장과 직원들이 상조신용중앙회 전산망에 등록되지 않은 별도의 전산망을 만들어 읍내 고객 예금 800억 원을 관리하고 그중 100억 원을 빼돌린 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
한편 조선족과 함께 평화농장을 일군 박 장로는 이남상조신용에 거액의 돈을 넣어두었는데, 1980년대부터 마을 유지들이 마을 사람 돈을 이남상조신용에 넣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 장로는 이를 신고하지 않고, 마을 유지들을 불러 상조신용 돈을 농장에 투자하면 눈감아주겠다고 제안한다. 마을 유지들은 겉으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뒤로는 마을 청년들을 꼬드겨 평화농장을 때려 부수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의 이남상조신용 사건은 평화농장을 부수고 그것을 마을 주민들에게 넘겨줌으로 인해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2010년, 조선족 밀집 지역인 대림동과 가리봉동에 10여 년 전과 비슷한 구조의 상조신용이 생겼는데, 이는 제임스 리가 HM캐피탈을 통해 세운 것이었다. 조선족 우대 정책을 통해 그들의 돈을 관리하고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는 고려행정사가 찍어 누르는 식으로 운영하면서 조선족들의 예금을 이용했다.
그렇다면 제임스 리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제임스 리의 본명은 리진웅이다. 흑룡강성의 국경 마을에서 자라난 리진웅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중국 집체호처럼 공동체를 일구어 농장을 만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웃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다. 그곳이 바로 평화농장이었다. 하지만 평화농장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부서지고, 좋아했던 과자 삼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리진웅은 어머니와 함께 산으로 피신하지만, 마을 청년이 휘두른 칼에 찔려 산을 넘기 전 어머니는 죽게 된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오면서 평화농장의 장로와 결혼을 했고, 장로의 비밀문서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죽기 전 리진웅에게 자료를 넘겼다. 리진웅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와 그 돈을 가지고 유학과 공부를 마치고, HM캐피탈을 세워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조선족 조직 고려행정사와 한국의 정치권, 그리고 조선족들의 돈을 움직이며 조직적으로 금융 범죄를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뒤를 캐는 기자의 아내와 아이를 죽이게 된 것이다.
제임스의 명령으로 조성우 기자의 아내와 아들을 죽이게 된 정문환은 조선족 건달로 용정에서의 건달 싸움에서 사람을 죽이게 되면서 한국으로 건너와 불법체류자로 공장을 전전하며 13년을 살아왔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그는 제임스의 몇 가지 일을 처리하면 중국으로 돌아가 번듯하게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그렇게 조성우의 가족을 죽이게 된다. 하지만 제임스 측근에 있던 다른 조선족 건달의 배신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그 과정에서 제임스와 한국의 조폭 조직을 왔다 갔다 하며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된다.
지방 마을 사람들의 돈을 빼돌려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평화농장을 짓밟은 한국의 마을 유지들, 평화농장에서 살아남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조선족과 한국의 정치권을 오가며 금융 범죄를 저지르며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하고 달려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무너진 제임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 때문에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아야만 하는 정문환, 거대 투자 기업을 조사했다는 이유로 아내와 아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고,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다시 그 뒤를 캐기 시작하는 조성우 기자 등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쫓고 쫓기며 슬픈 인연을 맺고 있다.
이 소설은 사람들이 잘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 불편해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안의 ‘다른 사람들’인 조선족을 소재로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 내부의 공포와 그 공포가 분노로 발현되는 지점을 그려낸 것이다. 이 소설은 조선족을 폄하하는 소설이 아니다. 조선족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공포와 분노를 드러낸 사회파 스릴러 소설이다.